이스라엘 와디 지역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비교해 ‘실리콘 와디(Silicon Wadi)’로 불릴 정도로 세계 2위의 하이테크 창업 생태계를 자랑한다.
탈피오트(Talpiot)라고 불리는 엘리트 군사문화, 토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평등문화, 그리고 유태인 간의 특별한 네트워크 등 이스라엘이 기술기업 위주의 창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요인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다.
김일수 주 이스라엘 대사는 최근 <탈무드 창조경제>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이스라엘의 이런 문화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이스라엘 전문가다.
본지는 김 대사를 만나 이스라엘에서 소규모창업이 활발한 이유와 양국 기업 및 문화 전반의 차이에 대해 알아봤다. 김일수 대사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37년 간 외교부에서 일해 온 직업외교관으로서, 2011년부터 이스라엘 대사로 일해 왔다.
- 대사님은 최근 <탈무드 창조경제>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습니다. 혹자는 사울 싱어(Saul Singer)의 <창업국가>(Start-up Nation)’가 연상된다고 하는데, 간단하게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울 싱어 <창업국가>의 주제도 소규모창업인 스타트업(start-up)이었기 때문에 제 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탈무드 창조경제>는 한국 사람의 눈으로 봤다는 점에서 유태인의 시각과는 차별화됩니다. <탈무드 창조경제>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한국식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한국 대기업들이 이스라엘에 R&D센터를 설립해서 현지 스타트업 기업들과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도대체 스타트업이 무엇입니까.
스타트업의 정의는 ‘소규모 창업’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틈새기술이라고 볼 수 있죠. 기술 중에도 기초과학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융합기술, 첨가기술 같은 신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속성상 실패할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기업 속성상 실패할 아이디어에 투자를 하기가 어렵죠. 대기업 R&D센터가 중요하지만 R&D만의 영역이 있고 스타트업만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도와주는 역할도 하지만 중소기업을 탄생시키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문화
- 이스라엘은 개발된 기술을 미국 중심의 다국적 기업에 M&A 형식으로 파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한국은 생산 기반이 있기 때문에 그 같은 M&A를 할 필요가 없고, 또 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M&A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이유는 한국의 기업 생태계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업 환경은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제조업 중심입니다. 보통 대기업이 주도하죠. 반대로 이스라엘에는 대기업이 없고, 생산기반도 부족합니다.
한국은 독자적으로 설계부터 판매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M&A에 대한 인식이 기술 유출이라고 여길 정도로 좋지 않죠. 반면 이스라엘은 기반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세계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유리해요. 이런 차이 때문에 한국에 이스라엘 모델을 이식하기 어렵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 북, 구글 등 M&A를 한 기업들이 이스라엘에 R&D센터를 설립함으로써 스타트업 시장에 다시 투자가 되고 후속 기업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 이런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는 세계시장과의 연결입니다. 이 대목에서 유태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게 아닐까요?
그것도 하나의 포인트죠. 유태인들이 강력한 해외 디아스포라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태인 네트워크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情)’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와는 다릅니다.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경우 철저하게 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1990년대 초 이스라엘 요즈마 펀드가 생겼을 때 스타트업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국가와 민간 자본을 합쳐 2억 달러 정도로 시작했죠. 그러나 민간자본 중에 유태자본은 거의 없었습니다. 즉 사업과 기부를 철저히 나눠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수익성 없는 기술은 세계시장에 연결될 수 없죠.
이스라엘은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대기업을 키워낸 능력에 대해 경탄하고, 또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계시장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말할 때 보통 ‘후츠파(chutzpah) 정신’을 거론합니다. 후츠파 정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유태인들은 후츠파 정신을 자신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후츠파 정신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 창구의 직원이 불친절했을 때 유태인들은 그런 상황을 가리켜 ‘후츠파’라고 합니다. 즉 “무례하다, 저돌적이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반대로 ‘도전정신’이나 ‘실험정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특징, 후츠파 정신과 탈피오트
- 유교적 문화 요소가 강한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지낸 민족입니다. 국가도 없었고 계급도 없었기 때문에 출신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평등의식이 있죠.
그런 이스라엘의 역사가 자유로운 의사소통 문화를 만든 것이죠. 반면 한국은 유교 전통이 있고 연령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을 무조건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전정신과 말로 설득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 이스라엘은 군사문화도 독특하고 엘리트 부대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그리고 이런 군대 인맥이 스타트업에도 영향을 줬다고 하던데…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수평적 문화를 갖고 있는데 군대도 예외가 아닙니다. 연령이나 계급보다 능력을 중시합니다. 젊은 시기의 상상력을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스라엘은 군대에 ‘탈피오트’와 ‘8200부대’를 창설했습니다.
탈피오트의 경우 이스라엘의 이공계 고등학생 인재들을 선발해서 9년 정도 장기복무를 시켜 무기개발을 맡겼습니다. 실제로 탈피오트 부대가 이스라엘이 세계 7대 방위산업 수출국으로 올라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탈피오트 부대 탄생 10년 후 이스라엘에 일어난 창업 붐은 자연스럽게 탈피오트, 8200부대의 인맥이 모이게 되는 계기가 됐죠. 서로의 인맥도 있고 경험도 있으니 서로 뭉친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랍 보이콧의 허상
- <탈무드 창조경제> 서문을 보면 이스라엘 대사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3가지 바람을 가지게 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한 가지 바람에 대해서만 다뤘다면, 나머지 두 가지 문제는 이스라엘 시각에서 중동을 보고 싶다는 바람과 중동 평화 협상이라고 불리는 정치 과정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다는 희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중동에 위치하면서 주변국과는 이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주변국들은 이스라엘을 바깥에서 들어온 민족으로 여겨 배척하는 경향이 있죠. 현재 이집트와 요르단 단 두 국가와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이고 시리아, 레바논과는 적대 관계입니다. 항상 전쟁을 의식해 중동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합니다.
- 우리나라의 일부 실용주의자들은 중동의 석유 때문에 친아랍 정책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아랍국가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이스라엘과의 협력에서 아랍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70년대 ‘아랍 보이콧’이라는 것이 유명무실화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5∼6년 간 이스라엘에 방문한 장관급 인사가 없었습니다. 수교 50주년이 됐지만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도 없었죠.
반면 일본은 총리, 외무장관 등 장관급 인사들이 매년 방문을 하는데 아랍권의 반발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랍권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이스라엘과도 협력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랍권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무역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 혹시 대사님은 아랍권 국가를 방문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했습니다.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시각으로 중동 문제를 바라봤습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팔레스타인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두 국가 모두를 인정하는 '투 스테이트 솔루션‘(Two-state solution) 방향이 옳다고 봤습니다.
- 투 스테이트 솔루션 자체가 친 이스라엘적 접근법 아닙니까? 팔레스타인은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모두 투 스테이트 솔루션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단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있지 않죠. 그래서 하마스는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 하마스가 투 스테이트 솔루션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이 가능할까요?
물론 그런 문제가 있죠. 그러나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다른 정파와 협상 후에 하마스를 테이블에 앉히겠다는 생각이죠. 문제는 하마스가 현재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 한국이 이스라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신다면?
한국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죠. 이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기술을 기반으로 대외개방형 경제정책을 펼치지만 경쟁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수출 중심이고 이스라엘은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아웃소싱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의 기술을 한국의 제품공학능력과 융합해 세계로 진출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부분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스라엘과의 협력은 한국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것입니다.
인터뷰 / 황성준 편집위원 hwang@futurekorea.co.kr
정리 / 정용승 기자 jeong_fk@naver.com
사진 / 백승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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