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누군가가 돈을 만들어 내려고 하면 연방 정부는 코를 킁킁 거리며 그 자를 뒤쫓는다. E-Gold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완벽한 사례다.”
- 리차드 팀버레이크(Richard Timberlake)
전 조지아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11월, 1년 반 이상 끌어오던 재판 결과가 나왔다. 잭슨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죄명은 자금세탁 음모에 동조했다는 것과 정부 허가 없이 현금 송수금업을 했다는 것이다. 2001년 9.11 테러의 산물인 반테러방지법(일명 애국법 ‘The Patriotic Acts’)은 정부의 허가 없이 현금을 전송해주는 서비스를 잠재적인 테러행위로 보고 금지한다. 잭슨은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36개월의 보호감찰과 6개월 동안의 자택감금 및 감시(electronic monitoring)와 300시간의 봉사 처분이었다. 1200만 달러의 자산 압수에 더해 그의 두 회사 Gold and Silver Reserve 와 E-Gold Limited는 3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개인 화폐에 대한 꿈
1995년 인터넷 붐과 함께 디지털 화폐의 개념이 등장할 무렵 잭슨은 잘나가는 내과 의사였다. 잭슨은 경제학에 관심을 갖는 경제학도이기도 했다. 그는 대공황 시절의 경제학자 베라 스미스의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베라 스미스는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해 강한 문제를 제기하며 대공황의 원인은 국가의 통화 간섭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자유주의에 기초한 시각이었다. 잭슨은 1971년 달러가 금과의 연계를 끊어버린 시점으로부터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시 화폐를 금에 고정시킬 수 없을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 듯 보였다.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금을 보유하고 이에 근거해서 지불수단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이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유와 건강함을 금융제도에 선사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금에 기초하면 각국의 통화 관문을 지날 때마다 통행세(환율에 따른 거래비용과 금융기관의 수수료)를 생략할 수도 있고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유발로부터도 안전한 가치저장도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금을 직접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다. 금을 사고 산 금은 금고에 맡긴 상태에서 제3의 기관으로부터 인정받는 계좌를 통해서 거래했다. 이 계좌가 있으면 금의 진위 여부나 순도를 따지지 않고도 소유권의 이전을 통한 전송이 가능했다. 금 1온스에 대해서 계좌를 설정하고 그 계좌를 잘게 나눠 송금할 수 있기 때문에 금을 이용해서도 인터넷 소액결제를 할 수 있었다.
잭슨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서 E-Gold를 시작했다. 의사를 그만두고 퇴직연금까지 포함해 벌어둔 재산을 거의 회사에 투입했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터넷 쇼핑이라는 거대한 산업이 열리고 있었다. 게다가 각국의 통화절하 경쟁으로 인해 금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오르던 시기와 겹쳤다. E-Gold는 PayPal에 이어 전자결제로는 전세계 시장규모 2위에 오른다. 헤커들의 공격과 사기계좌 등 많은 우여곡절을 뚫고 사업은 번창했다.
고객들이 구입한 금은 런던과 두바이에 분산해서 보관했는데 시가 8500만 달러에 달하는 3.5metric ton의 금을 보유했다. 전세계 165개국에 걸쳐 계좌가 설정되었고 고객은 3500만 명에 달했다. 1000개의 새로운 계좌가 매일 개설됐다. E-Gold는 거래의 1%를 수수료로 떼었다. e-Bullion, GoldMoney, OSGold 등 유사한 서비스와 회사들이 뒤따랐다.
정부는 화폐 독점을 포기 안했다
미 연방정부는 뒤늦게 E-Gold를 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과 러시아의 갱들이 E-Gold에 계좌를 개설해서 자금세탁과 불법거래 지불에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잭슨은 자신의 회사가 헤커들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중단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언론을 통해 자신의 회사가 거론될 때마다 긴장하긴 했다.
주로 국제범죄조직들과 연결된 뉴스였다. 이때부터 잭슨은 서버에서 이상한 계좌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E-Gold에 계좌를 개설할 때는 이메일 아이디처럼 본인과는 무관한 아이디를 만들면 된다. 그리고 계좌를 통해 송금할 때는 형식적이나마 거래 품목이나 이유를 적게 돼 있다.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접속한 몇몇 아이디들이 남미나 일본에 거액을 보내면서 꽃값이라거나 컴퓨터 구입이라고 적은 의심 계좌들이 있었다. 잭슨은 비밀을 유지한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어기면서도 이런 자료들을 수사기관에 넘겨줬다.
이렇게까지 파격적으로 협력했던 이유는 자신의 사업이 불법적 수단에 쓰이기 위해 만든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당국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정보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법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현금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을 접고 E-Gold를 떠나주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잭슨의 도움을 받아 FBI나 관계 당국은 추적하던 조직들의 자금창구를 들춰내 체포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잭슨의 노력과 호의에도 불구하고 연방 정부는 잭슨과 그의 사업을 끝장내려는 계획에 착수한 지 오래됐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4월 미 법무부는 4년 동안의 수사를 종료하면서 잭슨을 기소했다. 잭슨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는 오히려 E-Gold가 불법 조직의 거래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로 활용됐다. FBI는 압수수색을 했고 모든 자료와 데이터, 서버를 봉인해버리고 잭슨을 자금세탁공모 불법금융사업 혐의로 기소했다. 10년 이상 유지하던 잭슨의 사업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청산됐다.
사업 초기부터 E-Gold를 관찰하고 자문해주던 리차드 팀버레이크 교수는 잭슨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의사였고 정직한 시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싶어 했던 약간은 낭만적인 벤처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E-Gold를 끝장내고 싶어 하는 연방 정부에는 쓸모가 전혀 없었다. 자금세탁이나 불법거래는 사실상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현금이 지하조직의 도구로 쓰인다고 현금 발행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인터넷을 이용한 거래는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범죄조직들도 인터넷을 이용해서 거액의 거래를 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적 증거를 당국에 선물로 기증하는 셈임을 깨닫고 있었다. E-mail이 수사당국에게 귀중한 증거자료가 돼버린 현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노릇이다. 진짜 이유는 E-Gold가 화폐에 대한 정부독점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팀버레이크 교수의 결론이다.
오태민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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