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임을 믿는다.”
성공회(聖公會) 신자들의 기본 교리 중 하나다. ‘성공회’라는 명칭 자체가 이 교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들어졌다. 1890년 무렵 한반도에 보급됐으며 탤런트 사미자 씨, 한화그룹 창업주 故 김종희 회장과 김승연 회장 등이 성공회 신자로 알려져 있다. 김승연 회장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기도 했으며 성공회대 대학본부의 건물 이름은 지금도 ‘승연관’이다.
1914년 4월 대한성공회는 인천 강화에 성 미가엘 신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 폐교되는 위기를 겪지만 1961년 현재 위치인 구로구 항동으로 이전해 1982년 천신신학교로 이름을 재인가를 받으면서 4년제 대학학부 과정을 개설했다.
왼쪽으로만 ‘열림 나눔 섬김’ … 김승연 한화 회장이 지원
1992년 성공회신학대학으로 이름을 바꿀 때까지만 해도 2개의 학과(신학과/사회복지학과)에 한 학년 학생 수 100명에 불과했던 신학대학이었지만 성 미가엘 신학원 출신의 이재정 교수가 부임하면서 근본적으로 흐름이 바뀌게 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성공회대의 3대 교육이념은 ‘열림 나눔 섬김’이다. 하지만 이재정 등장 이후 성공회신학대학(이후 성공회대학교로 개칭)은 ‘왼쪽에만 열리고 오른쪽에는 닫혀 있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두드러진 것은 좌파성향의 교수가 대폭 임용된 일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1988년 임용된 신영복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쓴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좌파진영에서 ‘우리 사회 지성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968년 발생한 역사상 최대의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복역 후 출소해 성공회신학대학에 임용됐다.
그를 끌어들인 것은 물론 이재정이었다. 1988년 10월께 마당 세실극장 이영윤 대표의 소개로 신영복을 만난 그는 “전국에서 제일 작고 보잘것없는 학교인데 강의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신영복은 성공회신학대학에서 ‘경제원론’과 ‘한국사상사’를 강의하게 된다.
이재정이 두 번째로 영입한 인물은 사회과학부 조희연 교수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는 그는 성공회신학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박원순 現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는 활약을 한 조희연은 최근 2014년 6·4 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직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편 신영복과 함께 통혁당 사건으로 검거된 또 다른 인물로는 박성준이 있다. 신영복과 박성준은 북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거물간첩인 김종태에 의해 포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태는 前 남로당원, 학생, 청년 등을 대량 포섭했으며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할 것을 계획했다.
김종태는 김질락을 포섭했는데 김질락은 위의 신영복을, 신영복은 박성준을 포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성준은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13년을 복역했는데 그를 옥바라지 한 것은 부인 한명숙 前 국무총리다. 출소 이후 박성준 역시 성공회대가 처음으로 만든 NGO대학원에 교수로 임용됐다.
“운동 경력이 우대사항”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진영종 부교수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했던 탓에 교수 임용이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으나 성공회대는 그를 받아줬다. 자신의 이력을 숨김없이 적어놓은 진영종에게 조희연 교수가 “이런 걸 쓰면 어떡하냐”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에 대해 진영종 교수는 “운동 경력이 우대사항이라고 해서 썼다”고 답했다(2006년 월간중앙 보도내용).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도 이재정 前 총장이 영입한 대표적인 좌파 학자다. 2005년 12월 2일에 열린 한국산업사회학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정 교수는 6·25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들 한국전쟁이 발발한 원인과 그 책임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이미 이 논의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략적인 요소로 ‘오염’된 상태이다. (중략) 오히려 전쟁의 원인과 책임보다 국가와 전쟁이 과연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인도주의와 평화, 인간의 차원에서 전쟁을 연구해야 한다.”
좌파 역사학계의 대부인 한홍구 역시 2000년 성공회대의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김일성에 대해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라고 찬사한 바 있는 한홍구는 200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 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은 서로 더 많이 고무하고 찬양하자.”
주요 이슈 발생 시 네트워크 과시
2013년 초에는 노원구청 주최의 강좌를 열려다 취소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문화평론가로도 활동하는 김창남 신방과 교수는 성공회대 07학번으로 편입한 방송인 김제동의 담당교수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2009년 KBS ‘스타골든벨’에서 김제동이 하차한 이후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순히 제작진 차원에서 김제동의 방출이 결정된 것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김제동 본인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 정권(MB정권)의 치졸함이랄까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다. (중략) 연예인들에게 직접 시사프로를 맡기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기의 사회적 색깔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예인들, 사회자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허용 범위나 한계에 대해 이번 기회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외에도 1974년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권진관, 이종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영환,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임규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백원담 교수 등이 성공회대 교수로 차례차례 영입됐다.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로 손꼽히는 김수행 교수도 서울대학교 정년퇴임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됐다.
“교수들의 옥살이 횟수를 모두 더하면 육십갑자를 넘는 대학이 성공회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퍼지는 사이 학교는 차근차근 ‘4년제 IN서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했다. 1994년 이재정은 모교의 총장이 됐고 2006년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 前 총장은 2006년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북한인권 유린 관련 질의에 “민주화된 나라들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저 내용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2013년 8월 성공회대는 교육부 장관 자문기구인 대학구조개혁위원회(위원장 송용호)가 공개한 ‘부실대학’ 명단에 포함돼서 다시 언급됐다.
2014학년도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는데 그 즉시 정치보복 논란에 휩싸였다. 즉, 박근혜 정부가 좌파성향의 대학을 탄압한다는 주장이었다. 성공회대를 감싸느라 나온 반론이었겠지만 이와 같은 반작용 자체가 종합대학을 지향한다는 성공회대의 좌편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있었다.
조희연 교수 “내 자식도 외고 졸업”
최근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조희연 교수의 지난 3월 5일 ‘병든 사회 아픈 교육’ 출판기념회는 성공회대를 중심으로 한 좌파진영의 막강한 인맥을 잘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재정 前 성공회대 총장을 필두로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前 참여연대 대표, 안경환 前 국가인권위원장,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신인령 前 이화여대 총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등이 행사에 참여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교육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했으며 민주당 국회의원 정세균 유인태 남윤인순, 정의당 국회의원 심상정 박원석,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상규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 교수의 교육감 출마는 처음일 뿐더러 그동안 교육계 인사로 분류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화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출마 선언 이후 조 교수의 공격은 당연히 현직 문용린 교육감에게 집중됐다.
“서울시내 혁신학교는 모두 67개교입니다. 문용린 교육감 이후 단 하나도 추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숫자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문용린 교육감은 예산지원을 중단함으로써 혁신교육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역동성은 살려야 합니다. 혁신학교의 역동성을 살려야 교육에 역동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문 교육감은 이것을 죽였습니다.” (3월 5일자 오마이뉴스 인터뷰)
“미친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는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조희연 교수는, 그러나 본인의 자식도 외고에 진학시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제 자식도 외고를 졸업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고, 그렇게 친구들과 경쟁해서 승자가 됐다고 칩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돼요. 비정규직을 전전합니다. 설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금세 사오정이 됩니다.” 정말로 외고를 졸업한 조 후보의 자식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돼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사오정이 될까. 조희연 후보와 그 동료들에게 언제나 손을 내밀어준 성공회대가 앞으로도 존속한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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