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거나 “실종됐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정보실(Economist Intelligence Unit)과 오스트리아의 민주주의랭킹협회(Democracy Ranking Association) 등 국제기관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 수준은 세계 20위권으로 미국, 영국, 일본, 이태리, 프랑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꾸준한 오름세에 있다. 10위권 내에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서 매년 1, 2위를 다투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인간개발지수와 남녀평등지수에서도 1,2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고, 1인당 GDP 세계 3위(9만9664달러. 2012년 기준) 등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노르웨이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란 과연 어떤 모습이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대사와의 세계 여행’ 2014년 첫 번째 인터뷰로 서울 정동에 위치한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톨비요른 홀테 대사를 만났다.
- 요 며칠 서울 날씨가 춥습니다. 그래도 노르웨이에 비하면 별것 아닐 것 같은데요. (웃음) 주한 대사로 부임하신 지 2년이 넘으셨지요. 우선 대사님이나 노르웨이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첫 이미지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2011년 11월에 대사로서 왔는데 그 5년간에도 한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빨리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하지만 일반 노르웨이 국민들이 볼 때 역시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6·25전쟁과 당시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노르웨이 의료지원단입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600명이 의료지원단으로 왔고 병사들 뿐 아니라 한국의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도 의료서비스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은 혁명처럼 이뤄지지 않아”
- 최근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때 아닌 ‘민주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서 매년 1,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발전된 민주주의,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장기적인 개혁과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노르웨이의 개방된 민주주의가 번영한 이유를 꼽는다면 노사정 각 분야에 대한 존중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위원회의 존재를 들 수 있습니다.
노동계와 기업과 정부가 서로를 신뢰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산업 현장에서 갈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고, 이것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 노르웨이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허가한 첫 번째 국가이며 여권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 또한 혁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세기 초기엔 남자들조차도 아무나 투표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젠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투표권은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더 높이는 게 관건이죠.
- 그런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여성평등’을 넘어 ‘여성상위’ 사회라는 ‘오명’도 있습니다. 노르웨이 남성들은 만족하고 있습니까. (웃음)
그런데 전 한국도 조만간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육아분담을 놓고 보면 노르웨이 남성들의 분담 비중이 높지만 제 아버지 세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 부친만 하더라도 집안일을 거의 안하셨습니다.(웃음)
결국 한국도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를 겪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경제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여성들이 출산 후에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많은데, 이건 불행한 일입니다. 출산율이 전체적으로 급감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출산 이후 직장에 복귀하는 건 양성평등 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슈이기도 합니다.
- 노르웨이 하면 또한 ‘복지국가’(welfare state)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호칭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복지는 공짜가 아니고, 비용이 소요됩니다. 당연히 복지시스템 구축에는 세금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나서 뭔가 얻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의료보험 등으로 말이죠.
이게 복지국가의 핵심 요소입니다. 정부 혼자서 노력을 한다고 기초가 바뀌진 않으니까요. 여기서도 우리는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복지시스템 구축 -> 여성 사회 진출 -> 국가경제 발전
- 최근 노르웨이에서는 보수당이 집권에 성공했죠. 정당의 성격에 따라서 복지 시스템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나요.
아닙니다. 노르웨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을 가진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복지시스템 자체를 대수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약간의 변화는 가능합니다. 일례로, 바로 올해 2014년 1월 1일부터 상속세가 사라졌죠. 하지만 이것도 전체 세금에서 보면 큰 비율이 아닙니다. 소득세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전 정부에서 넘어온 예산안에 약간 수정을 해서 상속세를 없앤 겁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혁명적인 변화는 없고 점진적인 변화만 있을 뿐이죠.
- 아시다시피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무상급식 등 복지 문제가 뜨거운 화두입니다. 노르웨이와 비교해 우리 사회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한국 실정에 맞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의 복지 시스템을 그냥 이식하시는 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식 복지 시스템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활성화시켰다는 점, 그 효과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즉 복지가 양성 평등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있다고 아는데요 대단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건 부모와 아이에게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앞서 말했듯이 양성 평등이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죠.
- 올해로 노르웨이와 한국이 수교한 지 55년째를 맞습니다. 양국 관계 현황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세요.
노르웨이는 6·25 당시 국립의료센터 차원에서 의료지원단을 보내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로 점진적으로 외교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공식수교를 맺은 건 1959년이죠.
최근엔 문화적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 탄생 150주년 기념 전시회가 한국에서 7월에 있을 예정입니다. 이달 1월은 사망 70주년이 됩니다. 최근엔 K-POP이 노르웨이에서도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 양국의 경제 교류 규모와 주요 품목은 무엇인가요.
최근 무역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조선업이 크게 증가 중입니다. 노르웨이에서 한국 조선업체들에게 많은 발주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유와 가스를 운반하는 유조선들의 수요가 특히 많은 편입니다.
한국은 대(對) 노르웨이 수출에서는 중국과 거의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우리에게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어류를 많이 수출하구요. 한국이 몇 년 전에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로 이란으로부터 원유수입량을 줄이면서 노르웨이로부터의 원유수입이 대폭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 대사님은 북한 대사도 겸임하고 계시죠? 평양은 자주 방문하시는지요.
자주 가는 편입니다. 작년 11월에도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북한과 경제 교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인도적 지원은 적십자사를 통해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수교 55주년, 경제·문화 교류 증대
- 평양 이외의 지역들도 가 보셨는지요.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가볼 때마다 느낀 건 평양은 북한 내 다른 지역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최근 평양에 새로 지은 수영장과 빌딩들은 대단히 현대적이고 놀라울 정도입니다. 자동차도 늘어나고 휴대폰 보급률도 늘어났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옷도 더 화려해지는 등 작은 변화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변화가 평양에만 한정돼 있다는 겁니다.
-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신가요.
노르웨이는 핵무기를 대단히 경멸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며,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입니다. 우리는 북한 정부와 대화를 할 때마다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항상 거론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국제사회의 권고를 따르라고 권고하고, COI(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수용할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습니다.
- 노르웨이 하면 역시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유명하죠. 조만간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시작하는데, 관심을 갖고 보고 계십니까.
많은 노르웨이 국민들이 동계올림픽 개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피겨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보다 스키가 더 인기입니다.
우리는 노르딕과 다운힐 스키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치 올림픽에 이어 2018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평창 올림픽에도 많은 노르웨이인들이 성원을 보낼 겁니다. 참고로 노르웨이의 오슬로가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경합 중입니다.
- 대사님도 개인적으로 동계스포츠를 즐기시는지요.
전 크로스컨트리를 즐깁니다. 평창에 좋은 코스가 있어서 자주 갑니다. 현재 한국 국가대표 팀이 거기서 훈련 중인데, 조만간 국가대표 선수들과 스키 동호인들 중 상당수가 소치 올림픽 참가 및 관람을 위해 러시아로 가면 제가 평창에서 스키를 즐기기가 더 수월해질 듯합니다.(웃음) 참고로 서울의 겨울 날씨는 가끔 오슬로보다 더 추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또 하나. 얼마전 노르웨이의 어린 소년이 세계 체스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서 세계적 뉴스가 됐지요. 노르웨이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렇습니다. 마그누스 칼슨의 첸나이 세계대회 우승을 계기로 최근 체스가 대단히 인기를 얻게 됐습니다. 매일 TV에서 체스경기를 중계하고, 시청률도 대단히 높습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세계 최강이었던 러시아의 개리 카스파로브가 칼슨의 트레이너였습니다.
“백야, 뭉크 보러 노르웨이로 오세요”
-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에게 추천하시고 싶은 코스를 소개 바랍니다.
우선 피요르드를 추천해 드립니다. 또 겨울에 노르웨이를 방문하면 밤에도 환한 빛이 있는 백야를 볼 수 있습니다. 뭉크의 예술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고, 오슬로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방문하는 것도 권장해 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대사님 소개와 한국 국민과 저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해주세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나이지리아, 스페인, 인도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과 카리브해 국가들에서도 외교관으로 근무한 후에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한국과 노르웨이 국민들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주말마다 등산이나 하이킹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인들도 자연을 즐깁니다. 반면 남성의 육아 분담과 여성의 사회 참여에서는 아직 차이가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양국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하고 계시는 미래한국과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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