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의 71%, 면적의 1/3, GDP의 60%.
지구에서 가장 큰 단일대륙, 유라시아를 수식하는 말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2000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수많은 사람, 물자, 문화의 교류가 이뤄졌다. 여러 고대문명이 이곳에서 꽃 피웠다.
한민족의 뿌리도 유라시아 대륙에 닿아 있고 우리 선조들의 자취가 대륙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유라시아는 낯선 공간이 돼 버렸다. 분단 때문이다. 21세기에 철의 장막이 걷혔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그 장벽에 갇혀 있다.
이번 유라시아 컨퍼런스는 20세기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반도가 비상할 수 있는 ‘꿈’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제안
기조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부산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갈 수 있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와 에너지·물류 네트워크 구축, 농업협력, 문화교류를 통해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이어진 기조세션에서는 유라시아 각국에서 초청된 주요 인사들이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유라시아 협력이 갖는 의미와 전략을 논했다.
기조세션에 패널로 참가한 우젠민 전 중국 외교학원 원장은 “모두가 실크로드에 열광한다”면서도 유라시아 협력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국가가 참여하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기금이 필요하다.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전 WTO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UNDP 등 유엔기구에서도 수차례 실크로드 활성화를 위한 조사를 해왔지만 실제 프로젝트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독립된 기금이 필요하다”며 ‘유라시아 인프라 펀드’ 창설을 제안했다.
유라시아 시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유라시아의 가치는 경제적인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안드레이 코르투노프 러시아 국제문제위원회 사무총장은 “유라시아가 세계의 공장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지역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화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유라시아 시대의 통상 개발 협력’을 주제로 한 세션2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의 역할이 강조됐다. 김준경 한국개발원 원장은 “1966년 국세청 창설과 함께 ‘세정개혁’을 추진한 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며 “유라시아 개발도상국에서도 간단한 변화가 좋은 거버넌스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기택 KDB산업은행장은 유라시아 국가들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 개발금융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며 KDB산업은행이 몽골에 개발금융 노하우를 전수한 사례를 소개했다.
무엇보다 유라시아 대륙은 농업과 에너지, 교통 분야에서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세션3은 이러한 연성 이슈 협력의 필요성을 살펴봤다.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국과 수입국이 유라시아에 있고, 최대의 에너지 소비자와 공급자도 유라시아에 있다. 그러나 유라시아 역내 수입국-수출국 간의 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과 손해가 크다. 예를 들어 매년 1억 톤이 넘는 곡물을 수입하는 한중일의 주 수입원은 미주지역이다.
먼저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원유수입의 중동 의존도가 85%에 달하고 곡물자급률이 23%에 불과한 한국에게는 에너지·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유라시아 지역 협력이 절실하다.
철도·에너지 협력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하고 신뢰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알아가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 먼저 학술연구, 문화교류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
러시아의 한 학자는 몽골로이드 인종이면서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한국이 가장 ‘유라시아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한민족은 분명 유라시아의 여러 민족과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는 접점이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유라시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주목 받지 못하던 유라시아 개념이 국정과제로 등장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를 계기로 유라시아에 관한 여러 차원의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 기대된다.
사실 ‘유라시아’라는 단어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나라마다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에게 유라시아는 어떤 공간인가?
전해솔 기자 nkrefug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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