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사과를 했다.
모든 고령자에게 월 20만원의 노령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공약을 실천에 옮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공약은 처음부터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 아무리 고령이라 하더라도 소득과 재산의 구별 없이 다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도대체 왜 저소득층 시니어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복지정책을 마련하지 않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대통령의 사과는 정부의 역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에게 성찰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란 무엇일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이 정부인가.
엉터리 정부론을 가르치는 학교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의 초 중 고 대학 교과서 어디를 보아도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올바르게 제대로 기술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시장실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미시적 거시적 시장실패를 정부개입에 의해 교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교과서들이 서술한다. 정부 역할에 대한 이러한 불충분하고 잘못된 서술은 국민을 오도하고 정부정책 수립에 오류를 범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제기된다.
올해 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최광, 이영환, 이성규 세 학자가 보고한 ‘복지정책의 근원적 고찰’(한국경제연구원)은 정부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정부의 역할은 머스그레이브(R. A. Musgrave)의 견해라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견해가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머스그레이브는 정부의 역할을 자원배분기능, 소득분배기능, 경제안정화기능 등 셋으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머스그레이브가 의도했던 것은 모든 정부의 정책이 자원배분, 소득분배 그리고 경제안정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지, 이들 세 기능이 정부의 역할이라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스그레이브의 원전(原典)인 재정이론을 보면 머스그레이브는 정부의 기능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산정책의 3대 목표를 논하면서 가상적 나라의 재정부(Fiscal Department)의 업무상의 책임을 논하기 위해 배분지부(allocation branch),
분배지부(distribution branch), 안정지부(stabilization branch) 등 세 지부로 구분했던 것이 마치 정부의 3대기능으로 오해됐다고 최광 교수(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는 지적한다.
이러한 오도된 머스그레이브의 정부기능론은 시장에 대한 정부만능과 무원칙한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지키지도 못할 노령 기초연금과 같은 복지정책이 탄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정부의 기능에 다른 견해도 있는가.
물론 있다. 바로 아담 스미스((A. Smith)가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말한 정부다.
‘안보와 법치가 우선’임을 역설한 아담 스미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자연적 자유질서 아래에서 왕이 해야 할 세 가지 의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다른 독립된 사회로부터의 침입이나 전쟁으로부터 사회를 방위하는 임무
둘째, 가능한 한 사회구성원 간의 억압, 불법을 막는 일
셋째, 공공사업과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
아담 스미스가 본 왕의 3대 의무는 오늘날 국가의 의무로 이해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흔히 자유 시장주의자라고 하면 무정부주의를 떠올리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작지만 강한 정부’를 주장한다.
아담 스미스의 정부론은 정부의 첫째 의무가 국민행복을 챙겨주는 복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외적에 대한 방어개념의 안보, 그리고 국민들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법치가 우선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스미스의 정부개념은 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대처 총리의 정부정책에 바탕이 됐다. 정부가 시장경제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법질서를 엄정히 하고 안보에 충실한다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의 정부론은 ‘안정과 번영’의 담지자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스미스가 말한 세 번째 기능, 즉 공공사업과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인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사실 자유시장경제국가에서도 스미스의 공공정책론은 정부의 역할을 무한하게 확대시키는 구실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 이 문제를 보는 학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최광 교수는 이 점과 관련해 스미스가 “정부의 비대에 따른 낭비로 국가가 가난해지거나 망할 수 있음”을 걱정했던 사실로 미뤄 볼 때 스미스는 복지와 관련해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에 한정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러한 머스그레이브와 아담 스미스의 정부론 외에 오늘날 주목을 받고 있는 새로운 정부의 역할은 바로 공공선택론(Public Choice)을 창시한 뷰캐넌(James Buchanan)의 견해다. 뷰캐넌에 따르면 정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기 위한 경제체제의 기본 틀을 잘 짜주는 것이다. 이를 정부의 보호적 기능이라고 한다. 사회를 방위하는 임무와 법질서의 확립 임무를 통해 국민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제도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시장을 통해 제공되지 못하거나 제공되더라도 완벽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정부의 생산적 기능이라고 한다.
정부의 생산적 기능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기능으로 인위적인 독점이나 외재적인 사유로 인한 소득의 불평등확대다. 뷰캐년은 이러한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본다. 복지는 퍼주기 선심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자에게 사회안전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최광, 김영환, 이성규 세 학자는 결론으로 스미스를 따르든 뷰캐넌을 따르든 국민의 세 부담 증대를 통해 복지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지적한다.
복지정책의 추구 이전에 사회제도와 기본질서의 확립을 통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서 보람을 찾고, 장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가지며, 자신이 열심히 일해 얻은 경제적 과실을 향유하고, 만족하며 보람을 갖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 박근혜 정부가 새겨봐야 하는 제언이 아닐 수 없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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