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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고, 휴일이 계속되면 그게 평일이길 바라게 되는 것일까. 장장 5일간의 연휴가 끝난 23일의 검색창에 ‘한글날’이 보인다. 작년 공휴일로 재(再)지정된 한글날은 10월 3일 개천절과 함께 직장인들의 ‘새로운 희망’이 된 모양새다.
- 오히려 청년들이 더욱 빨리 현실에 눈을 떴다. 온가족이 모인 추석 명절은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 시즌과 겹쳐 여러모로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올해는 어떻게든 자리를 잡지 않아야겠냐고 걱정해주는 어른들. 누구보다도 그러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청춘들. 그 절망과 희망의 쌍곡선이 ‘채용’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창에 투사되었다.
- KT의 경우 이미 공채 지원서 접수를 지난 16일에 마감했다. 300명 모집에 45,000명이 몰려 경쟁률은 150대 1. 모든 계열사가 동시에 신입사원을 뽑기 시작한 2010년 이래 최고 경쟁률이다. 현재중공업은 60대 1 수준이고, 한화그룹 역시 82대 1을 기록했다. 은행을 위시한 금융권이 하반기 채용 규모를 줄인 가운데 기업은행 역시 100대 1에 근접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스타워즈의 개막이다.
- 삼성그룹 전부문은 23일부터 채용 모집을 시작했다(27일까지). 검색창에 함께 올라온 LG전자와 LG유플러스,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의 경우는 오늘이 채용 ‘마감일’이다. 삼성그룹 채용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늘 ‘삼성채용’을 검색한 청년들 중에는 대학생 시절 거대기업 삼성의 횡포와 비리에 대해 분개했을 열혈 학생들도 여럿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甲乙관계(?)가 바뀌었다.
- 청년들이 대기업과 공기업에 몰리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불황이 더 이상 뉴스가 될 수 없는 시대, 쓰러질 확률이 낮고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대기업에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 다만 노동시장의 공급자, 즉 구직자들의 ‘대기업 지향’은 일자리 문제를 최대 현안으로 놓고 있는 현 정부에 강렬한 통찰을 준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닌 질(質)에 있다는 말의 반복이다. 통계상 실업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급조된 일자리는 문제의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한 사람에게는 땅을 파는 일을 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을 메우는 일을 시키자”는 루스벨트 시대의 농담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별처럼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많은 중견기업들이 '또 다른 삼성'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진정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정답은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아닌 성장이다. 대한민국은 ‘삼성채용’을 검색했다. 이들 중 정해진 숫자는 내년 이맘때 ‘한글날’을 검색하고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나머지 숫자에게는 여전히 ‘부당한 현실’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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