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약가계부 추진 예산이 135조원에 달하고 지방공약 이행에도 124조원의 재원 마련이 필요하지만 세수부족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관리재정수지가 역대 최대치인 46조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상반기 세수부족 규모도 10조원을 넘어섰다. 연말에 이 세수부족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리한 SOC 사업 요구다.
5년간 135조의 공약예산 가운데 대부분은 SOC 사업 예산이다. 이 사업들의 대부분은 표를 위해 사업타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작정 지르기’라는 점에 있다. 그 가운데는 역대 정권에서 거듭된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수요가 없는 대형 토목, 건축 사업들이 많다. 이런 사업들이 대거 지난 대선 공약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역구 의원들은 죽자살자 정부의 국고지원 예산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안해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 죽는다’는 노골적인 협박(?)도 등장한다.
공약 수정의 당위성
16개 광역 지자체들의 요구로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새누리당과 행정부의 ‘공약실천 협의회’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한 지자체는 아예 서울에 임시 캠프를 차리고 관계 공무원들과 시도의원들이 총출동, 함께 숙식을 하며 정부예산 따내기에 전력투구하기까지 했다. 그런 예산 요구에는 ‘유교문화벨트’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들도 있다.
경북권의 한 지자체는 ‘전통유교문화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1000억원에 가까운 유교센터 건축 사업을 벌이며 국고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과연 그곳에 얼마나 국민 발길이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누리당과 청와대 일부에서도 ‘공약 수정론’과 ‘완급 조절론’이 눈에 띄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8월 27일 “박 대통령은 공약과 이를 기초로 만든 140개 국정과제를 임기 내에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다만 기계적으로 지킨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우선순위를 조정해 실천하라는 점을 요즘 부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난 8월 12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국정과제 우선순위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해외 순방 중인 정홍원 국무총리를 대신해 회의를 주재한 현 부총리는 “국정과제 이행에서 수치나 지표의 개선이 아니라 국민이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삶의 변화가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국정과제를 똑 같은 방식과 속도로 추진하는 평면적인 접근보다는 경중과 완급을 고려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공약과 국정방향: 전망과 평가’에 따르면 60명의 전문가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경제민주화와 가계부채대책 등을 포함한 13개 공약 전체를 체계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선거 기간에 제시된 공약 대부분이 급히 만들어 엉성하고 체계성이 떨어진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밋빛 수사도 많이 섞여 있다”며 이같이 봤다.
정부 만능주의의 위험성
대통령이 정책 공약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하며 정부 만능주의를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한 문제와 관련해 보고서는 ▲정책공약 실천시 이념 대결을 주의할 것 ▲정책공약에 사회통합적인 기조를 강조할 것 ▲구체성과 실현가능성, 효율성, 꿈·비전, 반응성, 연계성, 혁신성, 유연성 등을 살필 것 등의 의견을 내놨다.
무엇보다 소득에 관계없이 제공되는 선심성 복지는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기초연금 도입 방안을 논의해온 국민행복연금위원회(위원장 김상균)가 지난7월 기초연금을 ▲70% 또는 80% 노인(소득 또는 인구 기준)에게 ▲최고 20만원 범위에서 정액 또는 차등 지급하고 ▲차등 지급할 경우 소득 인정액 또는 공적연금(국민연금)액을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의 최종 합의 결과를 발표했던 것도 그런 차원이다.
이에 따라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은 공식적으로 수정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SOC가 아니더라도 갈등을 촉발하는 공약들도 문제다. 부산선박금융공사 설립문제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안은 새누리당과 금융위원회 및 해양수산부 간 ‘동상이몽’으로 최종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 등을 이유로 선박금융공사 설립 불가 결정을 내렸지만 새누리당은 통상 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설립 강행 의지를 밝히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관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해운보증기금 설립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관련 논쟁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각 지자체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속도로와 광역 철도망 구축사업은 서로 자기 지역의 노선개통과 구축을 요구하느라 서로 비난과 불신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숙원사업이었던 GTX 일부 개통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공약수정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3%대로 낙관하지만 다른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대략 2%내의 성장률로 예측한다.
문제는 이 예측 범위가 오차안에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대의 충격적인 저성장률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의 설비투자율이 감소하고 있고 대기업, 재벌에 대한 강력한 규제조치로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다.
지난 8월 23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와 기재부 관료들은 9월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 평가를 위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예비회의를 가졌다. 이때 무디스사가 정부 복지지출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중요한 질의 안건으로 제기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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