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제246회 서울시의회 임시회가 폐회됐다.
4월 16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임시회에서 첨예한 논란이 됐던 ‘혁신학교 운영과 지원에 관한 조례안’은 결국 처리가 무산됐다. 교육위원회에서 의결정족수(8명) 미달로 회의를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안건의 처리는 6월 정례 회의로 미뤄지게 됐다.
‘혁신학교 조례’의 핵심은 교육감으로 하여금 ‘혁신학교 운영·지원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데 있다(제6조). 혁신학교 지정 및 취소, 혁신학교 운영 및 평가, 혁신학교 예산·인사·행정·연수 등 지원, 혁신학교 종합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심의하는 20명 이내의 기관이다.
이 기관이 설치되면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를 2013년까지 진행한 뒤에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교육감(교육청)의 행정적 자유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조례는 교육감으로 하여금 혁신학교 운영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조례 통과가 무산된 뒤 교육위원회는 6월 정례회의에는 반드시 조례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조례안이 교육감 권한을 침해하고 상위법에 배치된다는 근거로 강한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 또한 29일 오전 서울 중구 시의회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가 다음 회기에 (혁신학교 조례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가히 정치폭거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상황은 ‘혁신학교’라는 대상 하나를 놓고 서울시의회와 시교육청·교원단체 등이 분열돼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서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현재 전국에 존재하는 초중고 혁신학교는 456개에 달한다. 혁신(革新)이라는 긍정적 뉘앙스의 단어 뒤에 ‘학교’가 붙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혁신학교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돈 받고 하는 혁신도 혁신인가?
혁신학교가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부터였다. 당시 경기도 김상곤, 서울시 곽노현을 포함한 진보·좌파 교육감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했던 학교 모델이 바로 혁신학교였다.
야성(野性)이 강했던 당시 지방선거의 분위기 속에서 교육감 선거 최고의 이슈였던 혁신학교와 친환경 무상급식 등의 공약은 서울, 경기, 강원, 전북,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을 당선시켰다.
혁신학교는 공교육 정상화를 제1의 기치로 삼는다. 학급당 학생 숫자를 25명 이하로 대폭 줄이고 교사들에게 교육 과정에 대한 자율권을 확대해주겠다는 취지다.
이는 자율형사립고와 같은 제도에 위화감을 느낀 학부모들에게는 최적의 대안처럼 보였다. 체험학습과 자연교육, 평등과 공동체 교육을 강조하는 혁신학교의 모습이 현재의 교육 풍토에서 참신하게 여겨진 부분도 있다.
결정적으로 혁신학교는 비용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장점을 가지고 학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것이야말로 혁신학교가 학부모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다. 대다수 혁신학교에서는 체험학습 비용을 받지 않으며 학생이 개별적으로 챙겨야 할 준비물도 거의 없다. 학교가 전부 준비해주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압도적인 재정 지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혁신학교로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교운영위원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교육감의 허가를 받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연평균 1억 원 정도의 재정이 지원된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가 누리는 여유로움의 근원은 결국 세금(교육예산)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혁신학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단지 교사와 학교운영위원들이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타 학교로 갈 수도 있었던 교육예산을 혁신학교가 끌어다 쓰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지의 문제다.
신설 혁신학교의 경우에는 전교생 숫자가 1,2백명에 불과한 곳들도 있었지만 이런 학교에도 지원되는 액수는 학기당 7천만 원가량으로 똑 같았다.
결국 혁신학교는 소수의 운 좋은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압도적인 재원을 ‘몰아주기’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시교육청이 혁신학교 운영에 대한 규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학교의 재량사항”이라는 것이 현직 혁신학교 교장의 지적이다. (뉴데일리 2월 15일자 기사)
“입학시키고 싶지만 졸업시키기는 싫다”
소수의 행운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교육예산이 엄연히 제한돼 있음을 감안한다면 혁신학교의 풍요가 영원할 수 없음은 확실해 보인다. 일례로 경기도 광명시 구름산초등학교에는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과밀특위)’가 생겼다.
혁신학교인 구름산초등학교로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 당초 500명이던 학생 숫자가 1600명으로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밀특위는 학부모별로 담당하는 구역을 나눠 일일이 위장전입이나 학구(學區) 위반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자녀들을 혁신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열성은 혁신학교 주변의 전세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포함한 진보성향단체들이 혁신학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자주 삼는 내용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혁신학교 인근 전세값이 1억 원 넘게 폭등하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혁신학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 두 가지를 그대로 노출시킬 뿐이다.
첫 번째, 집값이 아닌 전세값이 오른다는 사실은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미묘한 심리를 방증한다. 저학년 때에는 혁신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지만 고등학교·대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학년이 되면 비(非)혁신학교로 전학을 보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혁신학교는 학업 성과의 측면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작년 11월말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국가 수준 초·중·고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전국 73개 혁신학교(중·고교)의 성적 향상도가 해당 시·도 학교 학생의 30%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체험학습 위주의 혁신학교는 ‘입학시키고 싶지만 졸업시키기는 싫은’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돈이 넘치는 곳에 ‘전교조’도 넘친다
혁신학교에 대한 두 번째 불편한 진실은 이 시스템이 교육예산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전교조 교사들을 함께 빨아들인다는 데 있다.
혁신학교에 전교조 교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비(非)전교조 교사들이 혁신학교가 도입되던 시기 혁신학교로 가길 꺼려 했던 구조적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
현직 교사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인사평정이다. 보통 교과부나 교육청으로부터 연구학교, 시범학교 등으로 지정되면 소속 교사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인사평정에 있어 가산점을 받게 된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경우 교사간의 ‘평등’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에 교사들에게 일체의 가산점을 주지 않고 있다.
이는 비(非)전교조 교사들에게는 불합리한 구조로 여겨지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전교조 교사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초기부터 혁신학교가 전교조 교사들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비(非)혁신학교의 현직 교장들이 의외로 혁신학교 운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전교조 거점화와 관계가 있다.
혁신학교가 전교조 거점이 되면 자기 학교에 있던 전교조 교사들이 전부 그리로 옮겨가기 때문에 타 학교 교장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는 사실이다. 혁신학교에게 예산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도리어 혁신학교를 반기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혁신학교의 ‘저작권자’로 꼽히는 사람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다. 2009년부터 혁신학교를 거론한 그는 최근 경기도 사학조례를 추진하는 등 전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방향으로 교육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작년 12월 ‘혁신학교 시즌2’를 시행할 계획을 밝히며 “2015년까지 경기도의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다시 학교가 정치와 투쟁의 현장 될 수도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려면 터무니없이 높은 교육예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찬성론자들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무상급식을 위시한 보편적 복지의 문제가 치명적인 비용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말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재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혁신학교의 확산은 결국 언젠가 문제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전교조는 혁신학교 안에서 의식화 교육을 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모든 혁신학교가 전교조의 거점은 아닐지라도 교장을 그저 ‘여러 교사 중 하나’로만 생각하는 전교조 특유의 풍토는 이미 여러 혁신학교들의 행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들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장도 속출하고 있다.
든든한 예산 지원에 힘입어 그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태생부터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던 혁신학교는 학교를 ‘투쟁과 정치의 현장’으로 삼았던 지난날의 홍역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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