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두 남자, 직(直)종훈과 간(間)철수
너무 다른 두 남자, 직(直)종훈과 간(間)철수
  • 이원우
  • 승인 2013.03.05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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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너무 빠르고 한쪽은 너무 느려 … 국민은 ‘혼란’


2013년 3월 4일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날로 기억될 만하다. 특히 김종훈과 안철수라는 두 인물은 이 날 하루 동안 각각 중요한 뉴스를 생산하며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3월 3일,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을 놓고 여야 간의 지난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한국인들은 한 줄짜리 속보를 전해 들었다.

“안철수, 4월 재보선 노원병 출마”

한때 대선 유력후보였던 안철수의 출마소식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주식시장의 ‘안철수 테마주’들은 시간외 거래에서 무더기 상한가를 기록했고 모든 언론들은 향후의 정치지형을 예측하느라 분주했다.

출마선언도 남의 입으로: ‘간접’ 안철수

하지만 속보가 전해주지 않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안철수는 이번에도 자신의 입으로 직접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철수가 재보선에 출마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은 그의 측근인 송호창 의원이었다. 송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진보정의당 노회찬 前의원에게 “양해를 구했다”는 말을 전하며 미국에서 10일께 귀국할 안철수가 밟을 ‘레드카펫’을 미리 깔아두었다.

그러나 4일, 노회찬 前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안철수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형세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노 前의원은 “기자회견 1시간 반 전 안부와 덕담 수준의 간단한 통화가 있었을 뿐 노원병 출마나 양해는 전혀 언급된 바 없다. (…) 각본을 짜 맞추듯이 하는 것은 (안철수가 말하는) 새 정치가 아니다. 구태정치다.”라고 잘라 말했다.

야성(野性)이 압도적으로 강한 노원병의 ‘당선 기득권’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노회찬-안철수 간 이견이 발생하자 여론은 급속히 분열되기 시작했다.

노회찬을 ‘진보의 희망’ 쯤으로 추켜세우던 좌(左)성향 사이트에서도 ‘이미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이 안철수의 행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야말로 구태정치’라는 식의 비판론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안철수는 대선을 준비하던 2012년 10-11월간에 총 9차례에 걸쳐 8,726만원을 들여 자체적인 여론조사에 집중하는 등 여론을 살피기 위해 첨예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간접적인 출마선언이 어떠한 방식으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안철수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귀국을 1주일 앞둔 안철수로서는 본인에 대한 여론을 체크할 수 있는 ‘표본’이 생성된 셈이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는 안철수의 ‘간보기식 정치’는 새해, 새 정부, 새 봄을 맞이한 많은 한국인들에게 구태(舊態)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관성적으로만 ‘새 정치’를 말할 뿐 그 어떤 새로운 정책이나 가치관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자신과 관련된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다가 일거에 사퇴를 감행해 버린 김종훈 장관내정자의 케이스가 겹치면서 두 남자의 대조점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간보기는 필요 없다: ‘직접’ 김종훈

안철수와 달리 김종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개를 받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차츰차츰 드러나는 그의 이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놀라움을 자아냈다. 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 수없이 덧칠된 이미지의 안철수와는 달리 철저하게 ‘사실’에서 비롯된 놀라움이었다.

물론 활동상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던 만큼 김종훈의 이력은 많은 공격을 받을 소지를 담고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부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중대성 때문에 이는 매우 첨예한 논란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CIA와 연계설’을 제기한 이래로 많은 의혹들이 김종훈에게 제기되면서 미래부와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은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종훈과 관련된 지지부진한 논란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을지언정 그것이 내정자 사퇴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종훈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김종훈 자체에 대한 공격 역시 명확한 타격점을 찾지 못한 채 공전되는 모양새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간의 논란이 있었을지언정 미래부 장관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예상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김종훈의 사퇴 기자회견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사퇴의 이유로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과 여러 혼란상’을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즉, 논란의 난맥상이 이어지는 것을 보느니 아예 사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안철수가 본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극도의 정치성을 띤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김종훈의 행보는 지나친 비(非)정치성을 띠고 있어 두 사람의 스타일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한편으로 이는 정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결국 제한된 권력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일반적인 재화를 교환하는 시장(market)이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윈-윈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반면 정치시장의 재화(권력)는 법으로 철저히 제한되기 때문에 이 안에서 벌어지는 거래행위(권력투쟁)는 필연적으로 제로섬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자리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내가 당선되기 위해선 남이 낙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정치에는 협상이라는 이름의 줄다리기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어있다. 영화 <광해>가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주는 것이 정치’라고 규정했던 그대로다.

김종훈이 사퇴하기까지 야당과 정치권이 극단적인 분열상을 보여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간 아무런 의사표현도 하지 않다가 혼자서 사퇴라는 ‘결론’을 내 버린 것은 어느 정도의 정치스킬이 필수적인 장관 내정자로서는 적합하지 못한 처신이었다는 평가도 비등한 실정이다. 시장과 정치의 온도 차이가 김종훈을 몰아낸 셈이다.

결국 3월 4일, 안철수와 김종훈의 극단적인 두 사례를 통해 한국인들은 두 가지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철수의 극단적인 정치성과 김종훈의 극단적인 비(非)정치성이다.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이 둘의 정치성을 합한 뒤 둘로 나누는 것이겠지만, 얄궂은 현실은 종종 한국인들에게 ‘직접적인 김종훈’이냐 ‘간접적인 안철수냐’를 선택하게 만들며 새 정부에 대해 품었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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