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체제의 고착을 우려한다
저성장체제의 고착을 우려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2.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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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편집위원

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해 말에 경향신문과 현대리서치연구소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새 정부가 가장 잘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경제성장이라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고 빈부격차 및 사회 양극화 해소가 26.8%, 일자리 창출 등 고용 문제가 17.1%로 집계돼 성장 분배 고용이 3대 정책과제로 나타났다.

집값 안정 등 부동산 문제와 공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비 문제는 각기(7.6%)였고, 정치개혁(5.7%), 남북관계(3.5%) 등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였다.

국민들의 생각

현대경제연구원이 금년 1월에 실시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3명은 새 정부의 정책 최우선 순위로 경제분야를 꼽았으며 사회문화분야(12.2%), 통일안보분야(7.3%) 정치분야(5.5%)는 낮은 수준이었다.

경제정책 중에서 특히 물가안정(31.2%)과 일자리 창출(26.5%) 의견이 높았으며 복지확대(9.9%)나 경제민주화(9.8%) 응답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매우 흥미로운 조사결과는 국민들이 새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응답률이 43.2%로 더 낮을 것이라는 응답률 12.8%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투자활성화 대책(35.0%)이며 성장잠재력 확충(23.9), 수출진흥책(20.0%), 소비진작책(16.9%)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복지와 관련해서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서서히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75.9%로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재정건전성이 다소 악화되더라도 복지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11.1%에 그쳤다.

이념적 성향이 다른 두 조사 주체가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다. 경제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가장 중요하고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고용과 복지가 새 정부의 정책과제라는 것이다. 고용은 경제성장의 부산물이기에 새 정부의 2대 정책과제는 결국 성장과 복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0.6%가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투자활성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이라 응답했다.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높은 성장률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그 대책을 정확히 지적하는 응답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우려되는 저성장 체제로의 진입

최근 우리 경제는 선진국들이 겪은 ‘영국병’, ‘화란병’, ‘복지병’을 결합한 ‘복합 후퇴’로 접어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이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경제가 자체의 잠재성장률 보다 훨씬 낮게 성장하고 있는데 그리고 종전 세계 평균에 비해 2배 이상 높던 우리의 성장률이 최근 세계 평균 성장률을 밑도는 데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9%대였던 잠재성장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8%로 급락했다. 김영삼 정부 때 우리 성장률은 7.4%, 세계경제 성장률은 3.3%로 한국경제가 4.1%포인트나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세계경제가 매년 평균 3.2% 성장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평균 5.0%의 성장률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때에 처음으로 한국의 성장률(4.3%)이 세계경제 성장률(4.8%)보다 낮았다. 이명박 정부의 5년 간 평균 성장률 2.9%는 세계경제 성장률과 같은 수준이다.

7% 이상 성장하던 우리 경제가 2%대로 추락하고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성장하던 경제가 세게 평균 이하로 추락하면서 오래 전부터 저성장의 늪에 빠져가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되겠지 하며 우리는 애써 문제를 외면해 왔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만병의 근원이 사실 경제의 저성장에 있다. 높은 청년 실업과 전반적 고용사정 악화, 소득 양극화, 가계부채 증대와 하우스푸어, 저소득층의 생계 곤란, 자영업자의 증대와 부도, 부동산시장의 침체 등 현안의 모든 문제가 경제성장률이 2~3%대로 하락한 결과이다.

만약 우리 경제가 매년 5%대 이상으로 성장하면 현안 문제들이 거의 모두 사라질 것이다. 최근 경제민주화가 인기를 끈 배경은 사실 장기 저성장으로 인한 사회불안 때문이다.

저성장의 원인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넓히겠다고 주창했지만 정작 복지를 떠받치는 경제성장에 대해선 적극적 대책 마련은 커녕 특별한 언급조차 없었다.

일자리도 복지재원도 성장에서 나온다. 경제성장이 낮아지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고 재정건전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이 무너지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기에 다시금 경제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최소한 4%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오래 전부터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가고 있었다. 왜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가? 저성장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의 행복이 경제성장과 직결돼 있다 보니 경제성장의 동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들이 이뤄져 경제학자와 경제사학자들이 이미 답을 제시했다.

경제성장의 결정 요인에는 4개 공급요인, 1개 수요요인 그리고 효율성 요인이 있다. 4개 공급요인은 자연자원 양과 질의 증가, 인적자원 양과 질의 증가, 자본재 공급의 증가 그리고 기술진보이다. 공급요인에 의해 생산능력이 확대됨으로써 가능해진 산출량 증가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수요요인이다.

경제성장의 6번째 결정 요인은 효율성 요인으로 이는 어떤 경제가 잠재적인 생산능력에 완전히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효율성과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은 공급요인, 수요요인 및 효율성 요인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동태적인 과정이고 결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성장 결정요인들과 경제성장 촉진제도들 중 어느 것이 왜 어떻게 작동해 우리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가? 성장 결정요인 여섯 가지 중에서 인적자원 양과 질, 자본재 공급, 효율성 요인 등 세 요인에서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이다.

인적자원의 경우 그동안 양으로 버텨왔는데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양적 공급에서도 문제가 이미 심각하다. 경제활동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수년 후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자본재 공급의 부진 즉 설비투자 증가율의 지속적 하락 그것도 급격한 하락 문제 또한 참으로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투자 증가율은 1%대에 불과했다.

저성장 대응 방안

기초체력이나 체질이 강한 사람이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고, 때로는 감기에 걸리더라도 빨리 회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도 꾸준히 성장하고 외부 여건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매우 복합적인 요인의 작동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약화돼 저성장으로 발현되고 있다. 따라서 저성장 체제에 대한 대응은 경제체질의 강화이다.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을 구성하는 요소 또는 경제체질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경제체질을 가진 굳건한 경제를 나타내는 요소나 지표에는 첫째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근거한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 둘째 무한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창조적 정신, 셋째 과학기술 및 지식의 발전, 넷째 활발한 투자의욕과 높은 저축률, 다섯째 근로자의 작업기술 향상, 여섯째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 등 6가지이다.

이상의 여섯 가지 기준에 비춰 볼 때 우리 경제의 체질은 과연 강건하며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 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부정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위의 지표 여섯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성장의 한계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으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첫번째 지표인 경제하려는 의지가 충일한 것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 잘 살겠다는 욕심만 가득 찬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둘째 지표인 무한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창조적 정신, 셋째 지표인 과학기술 및 지식의 발전, 넷째 지표인 활발한 투자의욕 등은 이 나라 정치가와 진보세력들이 무지와 역사 인식의 결여에서 휘두르는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친 서민, 공정사회, 상생과 공생 때문에 찬 서리를 맞고 있다.

경제성장의 엔진(engine)이 기업인데 그 기업이 온갖 비난의 대상이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여섯째 지표인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은 경제체질 강화의 핵심이고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구축은 바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확립과 정착을 의미한다. 공황, 불황, 실업, 양극화 등을 경제적 재앙이라 부르고 그 재앙의 원인으로 자본주의를 비난한다. 재앙의 실질적인 원인은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 정부에 있는데도 말이다.

국가가 계속 성장 번창하는 길은 딱 하나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기업의 시설투자는 불변가격 기준으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경제정책의 초점을 기업의 투자활성화에 맞추자.

국내의 자금이 국내에 머물고 더 나아가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마음껏 투자되도록 여건을 확실히 만들자. 외형적 양적 투자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포춘(Fortunes) 500대 기업 모두가 앞다퉈 투자하고 싶어 하는 여건을 가진 나라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 경기부양보다는 장기적 구조조정을

저성장체제에서의 탈피가 새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복지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대의 복지는 성장이고 성장이 가져오는 고용이 복지이다. 복지를 제대로 하고 잘 하기 위해 성장에 최우선 순위를 두자는 이야기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국내외 경제여건이 호전돼도 경제가 2~3% 대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어느 후보도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했었다. 박근혜 당선인도 우리 국민도 모두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누구도 경제성장을 높일 수 있는 요술방망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추락하는 성장률을 두고 경제위기 운운하며 새 대통령에게 획기적 조치를 요구하며 압력을 가하면 장기적 보약인 구조조정을 통한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뒷전에 밀리고 단기적 당의정(糖衣錠)인 경기부양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단기에는 새 대통령을 성장률의 압박감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임기 첫 2년 동안은 장기적인 구조조정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선인도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순간 현실과 문제의 내용을 솔직히 말하고 국민의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낮은 성장률, 불가피한 구조조정, 국민 부담 증대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그걸 수용하고 인내해야 한다.

최 광 편집위원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前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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