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의 구루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1939년에 <경제인의 종말>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썼다. 이 책을 통해 드러커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어떻게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를 낳게 됐는지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드러커는 이 두 국가에 ‘경제사회’(Economic Society)라는 개념이 실종됐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경제라는 것이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토대였으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이 경제사회라는 개념이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 의해 사라짐에 따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파시즘이라는 괴물의 리바이어던이 출현하게 됐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에서는 1930년대 공황이 닥치자 자본주의가 실패했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 실패로 계급혁명이 올 것으로 믿었지만 정작 하층민들과 노동자들을 단결시켰던 것은 나치즘이었다.
드러커는 그러한 현상이 당시 파탄이 난 사회주의의 혁명론을 불신한 대중들이 이번에는 자본주의가 약속한 번영을 불신함으로써 ‘자유’를 버렸던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대중의 파시즘하에서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나치의 적이 돼 숙청돼야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와 비슷한 ‘파시즘’의 전초가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지만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의 ‘골목상권 보호’,‘ 중소상인 보호’로 등장한 규제조치들은 드러커가 말한 ‘경제사회’의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어서 우려감을 주는 것이다.
동반성장위 ‘다 컸으니 나가라?’
지난 5일 동반위는 ‘중소기업 보호’와 ‘골목상권 살리기’를 명분으로 대기업의 제과점 프랜차이즈와 외식업 신규 출점 규제를 제한하는 확장자제업체들을 지명했다.
제과업종으로서는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 외식업종으로는 놀부NBG와 더본코리아(새마을식당) CJ·농협중앙회·롯데리아·대성산업·SK네트웍스·현대그린푸드·한화호텔앤드리조트·신세계푸드 등 8개 대기업을 포함해 총 31개 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러한 동반성장위의 발표에 (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즉각 반발하며 지난 5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제빵업종과 외식업종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동반위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행정소송도 불사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협회는 특히 제빵업종의 경우 ‘동네빵집 500m 이내 거리엔 프랜차이즈 점포의 출점을 금지하고 신규 매장을 현재 매장 수의 2% 이내로 제한하라는 권고안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상생법) 시행규칙 9조에 따르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대상은 대기업 직영점형 체인 사업과 대기업이 총 투자비용의 50%를 초과한 실질적 지배관계인 프랜차이즈형 가맹점 사업에 한하고 있어 개인이 100% 자본을 투자한 자영가맹점은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반위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만한 규제안을 들고 나선 것은 새정부의 서민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선제전략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정부의 규제만능 정책이 의도대로 골목상권을 살리고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본점이 이윤 최적화가 되는 숫자의 신규점 확보를 포기하게 되면 기존 가맹점에 대한 편의 제공 서비스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곧바로 기존 가맹주들의 영업비용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러한 외식업종에 외국 기업들의 진출을 막을 경우 통상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지가 높다.
특히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이라는 제도는 이미 실시했다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노무현 정권에서 마저 폐지했던 정책이다. 과거 면도기 제조사업과 전구 사업에 대기업 진출을 막자 질레트 면도기와 오스람 전구와 같은 외국 기업들이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몰아내고 시장을 싹쓸이 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과거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그 분야에서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한 기업들을 시장에서 강제퇴출시키는 정책의 ‘파쇼’적 행태다.
이러한 정책하에서는 어느 중소기업도 자신의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또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비전을 갖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부정책은 한마디로 정당성이 없다. 그렇기에 동반위의 이러한 정책은 명백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치명적 자만과 규제의 나선구조
문제는 대기업의 진입 금지만으로 소상공인들의 경영 여건이 좋아질 수는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은퇴자들이 비교적 손쉬운 프랜차이즈를 통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입을 못내 서로 힘들어지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대한 출점 규제도 규제지만 이를 포함한 전체 자영업자들에게 일정 수준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전체 공급을 조절하지 않으면 영세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여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 후 잇따라 치킨집 등에 뛰어들면서 통계청 기준 지난해 자영업자는 12만4,000명 증가해 2002년(13만9,000명) 이후 최대치에 달한 상황이다.
아울러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2011년 300개의 프랜차이즈 가맹 제과점과 독립 제과점을 심층 면접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맹점의 91%, 그리고 독립점의 80% 이상이 프랜차이즈 가맹의 지속 또는 신규가입을 원하고 있었다.
독립 빵집의 경우 프랜차이즈에 가입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돼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조사에 의하면 프랜차이즈에 가입한 제과점들이 가입 이전보다 매출과 이익이 늘었기 때문이다.
업체당 1억~2억씩 들여 가맹한 프랜차이즈에서 수익이 나지 않거나 매출이 줄었다면 당연히 자영업자들인 가맹주들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동반위의 이번 결정은 정부 만능주의라는 리바이어던 신드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이러한 정부의 통제와 중앙계획주의 경제정책을 치명적 자만(Fatal Conciet)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복잡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부의 공무원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규제중심의 정책은 그로 인한 2차, 3차의 효과를 예측할 수 없고 이로 인한 정부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추가적인 규제가 다시 등장하는 ‘규제의 나선구조’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불신하는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이제 사회주의가 아닌 복지주의 포퓰리즘의 덫에 걸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 결과는 피터 드러커가 예언한 경제사회의 종말에 따른 새로운 국가주의 파시즘일 수도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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