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20대의 정치성향에 대한 논의들이 분분하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은 20대의 33.7%라는 지지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17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51.3%였다. 그렇다면 20대의 보수화는 줄어든 것일까?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기 이전, 11월 12일자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의 지지율은 안철수 52.0%, 문재인 34.1%여서 두 후보를 합치면 약 86%에 달했다.
이 데이터를 놓고 본다면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20대 표심 가운데 일부는 박근혜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20대의 안철수 지지자들을 과연 모두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문제도 존재한다.
야권에서 ‘20대 진보 집토끼론’은 옛말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20대 대학생들의 ‘우경화’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2030세대, 특히 20대가 보수의 아이콘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것일까. 세대별 투표 성향을 연구해 온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한마디로 ‘취업난’을 이유로 꼽는다.
“20대의 제1목표는 취업입니다.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일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선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지요.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습니다. 총학생회 선거가 이런 마당인데 정치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보수화’를 넘어서 ‘탈정치화’ 됐다고 보면 맞습니다.”
좌파 선동에 거부감·탈정치화
윤종빈 교수는 ‘2007 대선과 투표 성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20대의 투표 성향을 분석한 바 있다. 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 20대는 사회적으로 움츠러든 세대라는 것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이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비싼 등록금과 새롭게 뚫어야 할 ‘취업의 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제기하는 추상적이고 이념 편향적인 여러 정치 이슈들과 사회문제는 20대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20대는 이념적으로 ‘공백’이라는 이야기일까. 선거가 끝난 후 인터넷과 SNS에는 젊은 대학생들의 선거 무용담들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많은 보수성향의 대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는 보수라고 밝히기가 어려웠다”라고 고백한다. 대학 캠퍼스 문화 자체가 여전히 보수에 대해 거부하는 분위기이고 좌파나 진보 생각을 가지는 것이 멋있고 세련돼 보인다는 것이다.
‘젊은보수 커밍아웃 좀 하겠습니다’라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러한 보수성향 청년들의 고민을 담은 솔직한 글들이 선거가 끝나자 계속 올라왔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너희 진보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조중동이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서로 자기 색깔이 있는 거니까 친구가 싸워도 양쪽 이야기 다 들어봐야 되는 거 아냐? 제발 문재인 지지자는 지식인이고 박근혜 지지자는 무뇌아 취급 안했으면 좋겠다. 나도 머리는 달려 있다고” (ID chicguy_sw)
“대학생에 20대면 아직 이상적인 공약을 지지할 만하지만 수십 조에 달하는 돈을 복지예산에 몰아넣을 만큼 우리나라가 부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기에 마냥 이상적인 생각만을 할 순 없었다. 박근혜 후보에게 편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었다.” (ID Han)
“내 주위 우파 성향을 가진 20~30대 친구들을 예로 들어본다. 직업군도 다양하고 멀쩡하게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북한정권이 싫고, ‘친북’과 ‘종북’을 싫어한다. 월급에서 떼어가는 세금이 늘어나는 것도 싫다. 무차별 복지가 정말 말이 되나 싶다. 자칭 ‘진보’라는 좌파들의 위선이 가증스럽다. 기득권층으로 보이는 애들이 ‘서민’, ‘피해자’ 운운하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다. 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아버지 세대의 산업화를 인정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ID hchs79)
다른 청년들의 고백들도 대개는 이러한 방향성에서 멀지 않다. 이들은 대개 합리성을 중요시 여기며 그러한 합리성에 근거해 좌파진보의 ‘위선’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젊은 보수는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20대 청년들의 보수주의 각성은 사실 캠퍼스에서 자발적인 지식운동형태로 부터 일어났다.
20대 보수화 추세의 원인은?
서울대 학보사인 <대학신문>이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성향이 ‘보수적’이라고 밝힌 학생은 2000년에 13.2%, 2002년에 17.2% 2005년에 27.6%, 2007년에 40.5%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였다.
<대학신문>이 입수한 2009년 실시된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여론 조사도 마찬가지다. 홍두승 교수가 서울대 학부생 660명의 정치성향을 조사한 결과 진보 42.3%, 중도 29.7%, 보수 28%등으로 나와 7년 전보다 보수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2007년 7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평균 보수층은 35.1%로 나왔다. 대학생의 보수화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8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진보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뉴라이트운동이 시작됐고, 이때부터 보수 대학생들이 조금씩 결집하기 시작해서 2000년대 중후반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고 분석한다. 특히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뒤이은 연평도 도발이 20대 우경화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2010년 중앙일보는 이러한 보수성향의 20대에 대해 ‘천안함 P세대’라는 기획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P세대엔 과거 386세대가 가졌던 사회의식과 X세대의 소비문화, N세대의 라이프스타일, W세대의 공동체의식과 행동이 혼합돼 있다.
중앙일보는 이러한 P세대에 대해 애국심(Patriotism)을 발휘하고 있는 20대 젊은 층을 지칭하며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실용(Pragmatism)적인 자세를 보는 세대로 규정했다. 또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Power n Peace)는 신념과 국방의 의무를 유쾌하게(Pleasant)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개성(Personality)세대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P세대는 과거 천안함 사태에서 좌파진보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비판하고 나서서 ‘천안함P세대’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20대 천안함 P세대, 안보의식 가장 높아
이러한 P세대의 등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09년 3명의 대학생으로 시작된 ‘한국대학생포럼(한대포)’이다. 2년 만에 3200여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고교에서 잘못 배운 역사와 사회인식의 각성이 있었다. 윤주진 전 회장(2기)는 이렇게 주장한다.
“저희는 초·중·고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물론 국사책과 한국 근대사 교재에서 6년 동안 한반도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우지 못한 것은 내가 지금 사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 우리 자신 그 자체입니다. 내가 몸담은 이 나라의 출발과 의미, 그리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것은 ‘나의 부정’, ‘국가의 부정’, ‘역사의 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가 배운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뿌리가 없는 세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우파운동의 젊은 20대들과 합리성과 경쟁, 개성과 실질을 중요시 여기는 일반 젊은층의 자유주의성향은 좌파진영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좌파매체 <프레시안>은 2011년 <창비주간 논평>을 통해 ‘20대 개새끼론이 유독 진보진영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주 소비되고 있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한겨레> 논설위원을 역임한 손석춘 씨 역시 ‘보수를 자부하는 젊은 벗에게’라는 칼럼을 통해 젊은이의 보수화는 기득권을 꿈꾸는 잘못된 욕망의 내면화라는 결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 20대 젊은이들의 정치, 사회관에 보수성이 증가되고 있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할 것인가라는 보장은 사실 없다. 지금 20대의 보수적 성향은 경제위기가 아니라 안보위기로 인해 고조됐던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이가 경제위기를 더 심각하게 느꼈던 진보적인 30대와 차이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한국 사회 변화 과정에서 20대와 30대의 경험 차이에 주목했다. 그는 “지금의 30대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학업과 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의식 형성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면서 남북 공존, 햇볕정책에 대해 긍정적 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하지만 20대는 그렇지 않다”고 해석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 후인 2010년 5월 EAI·한국리서치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안보 불안감은 72%로, 30대보다 10%포인트 가량 높았다. 이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20대의 보수성향은 앞으로 이들이 겪게 될 경제 상황으로부터 그 변화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문제로 닥쳐 있는 취업과 진로의 상황들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지금 보수성향을 간직한 20대들의 마인드 역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이번 대선에서 과거 386이라고 명명된 가장 진보적인 50대의 투표성향이 보수화됐다는 점에 있다. 진보성향의 <사회참여연구소>가 18대 대선이 끝나고 주최한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사회 변동’의 세미나에서는 ‘50대 보수화’ 문제가 가장 치열한 쟁점이 됐다.
이 세미나에서 한귀영 연구위원은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을 ‘50대의 역습’이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50대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가 높았는데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50대는 보수성향이었다, 새삼스럽게 보수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10년 전에는 50대의 노무현 지지율이 이회창 지지율보다 높았는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위원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국정운영 불안이 50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던 것.
경제상황 따라 20대 도로 좌클릭 가능, 가치 교육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 20대의 보수화 바람은 앞으로 이들이 겪게 될 경제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록 지금 안보면에서는 가장 높은 보수성향을 보이는 20대이지만, 이들이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취업과 소득에서 실패한다면 결국 이들의 보수성향은 좌클릭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금 대학생청년들에게 올바른 사회적 가치와 역사인식을 재교육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요청된다. 이들이 어떤 눈으로 사회와 역사와 경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기 문제를 모두 사회적 문제로 치부하느냐, 아니면 개인의 도전과 노력으로 돌파할 문제로 보느냐의 가치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전교조의 오도된 교육철학과 좌편향 교과서에 의해 교육받은 세대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건국의 정당성이 없으며 경제발전의 역사는 1% 기득권자들을 위한 독재권력의 철권통치와 이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던 노동자, 농민에 대한 수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0대 청년들에게 이러한 인식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는 현장은 역시 대학 캠퍼스다. 여전히 민노당이 2002년 이후 구축한 1만여명의 민노학위, 그리고 종북의 한대련(한국대학생연합)과 같은 단체들은 좌파진보진영의 관심과 후원,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에 의해 대학 캠퍼스에서 젊은 보수진영을 압도하고 있다.
대학 내 보수성향의 대학생 연합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이 대학가의 보수성향 단체 가운데는 가장 크지만, 다른 좌파진보 성향의 단체들과 비교해 보면 가장 크기가 작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 청년 보수의 현실을 말해준다. 자신을 스스로 보수라고 각성하고 있는 20대 청년들은 그래서 여전히 광장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이런 말 쓸 자격이 없을지 모른다. 난 비겁한 보수거든. 몇몇 찝찝한 거 때문에 박씨 안뽑았어~ 그렇다고 문씨도 절대 안 뽑았지. 난 보수기 때문에…” (ID: chicguy_sw)
“저도 직장에서는 참고 있는 ‘외로운 우파’이며 ‘젊은 보수’입니다. 세계정세나 안보상황, 공약부분 등을 상식적으로만 판단하면 종북 좌파쪽으로 가면 안 되는 것인데… 인터넷을 이용한 종북세력의 선동이 정말 무서운 것이더군요. 올바른 의견을 피력하면 하이에나처럼 떼를 지어 달려들어 공격을 해대고.” (ID: hchs79)
이 청년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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