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7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는 때 아닌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북한 측이 자신들의 공동어로수역 제안 지도를 빔 프로젝트에 띄우려 하자 우리 협상팀들이 육탄 돌격으로 저지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북측 단장인 김영철 중장은 그런 남한 협상단에게 ‘남조선 언론이 그렇게 무섭냐’고 호통을 쳤다. 그는 또 ‘우리가 제안하는 공동어로 지도가 공개되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남한측 협상팀은 이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정이 그러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같은 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과 맺었다는 10·4남북선언에서 ‘공동어로를 통한 평화수역’의 협상이 북한측의 NLL무시전략으로 인해 민망할 정도로 뒤통수를 맞았던 것이다. ‘혹떼러 갔다가 혹붙이고 왔다’는 속담이 노무현 정권의 ‘NLL 등거리 공동어로구역’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북 공동수역 지도공개 왜 막았나
당시 노무현 정권의 NLL 공동어로수역의 제안은 NLL을 기점으로 남북간에 등거리 수역 안에 모두 4곳의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의 목적으로 고기잡이의 증가를 들기도 했다.
공동어로수역이 만들어지면 서해 5도 주민들의 어로 수확량이 현재보다 2,5배나 늘 수 있다는 주장도 해양수산부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정작 당시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2007년 남북회담 직전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공동어로수역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그 문제에 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NLL 문제를 기본적으로 다루게 되면 이건 법적으로 어떻든간에 한 발짝도 진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NLL 문제는 일단 덮고 경제협력 쪽으로 해서 군사충돌 방지 쪽으로 해나가자 하는 추진을 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께서도 NLL 문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그걸 건드리면 남북한 간에 특히 남한 쪽 국민들의 인식 문제 때문에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협의하고 이런 건 좀 아니었을 거다, 이런 생각은 듭니다.”
당시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공동어로수역을 통해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NLL에 대한 협상 의제의 성격으로 평화수역 제안이 이뤄졌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해 10월 남북회담에서 이 공동어로수역의 제안이 북측에 공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면 당시 이 10·4 남북공동선언문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공동선언문 제3조에는 이렇게 명기돼 있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 조문 그 어디에서도 ‘NLL을 등거리로 한 공동어로수역’과 같은 말은 없다. 추후 협의한다는 것으로만 돼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 문재인 후보는 10월 26일 대구·경북과 울산 지역 선대위 출범식에서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놨다.
“참여정부 시절 남과 북은 10·4선언을 통해 NLL을 중심으로 등거리로 공동어로수역을 정해 서해안에 평화를 정착시켰다. 이는 NLL 확실히 지키기, 평화,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방안이 아니냐.”
의아한 것은 문재인 후보가 왜 공동선언문에는 합의된 바 없는 NLL 등거리 공동수역 문제를 ‘남북 정상이 합의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다.
또 합의됐다면 왜 2007년 12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측의 공동어로수역 제안 문제를 놓고 남북 협상단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느냐는 문제다. 다시 말해 왜 그 당시 우리 측 협상단이 북한측의 공동어로 제안 지도를 빔프로젝트에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섰냐는 이야기다.
문재인 후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당시에 합의된 것을 북한이 뒤집었다는 것인가. 문재인 후보는 이 점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가 밝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문제의 수수께끼를 풀어 볼 방법이 있다. 바로 10·4남북공동 선언문이 주장하고 있는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장간의 협상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27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평양에서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얼굴을 맞댔다. 이날부터 사흘간 열리는 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하기 위해서다.
혹 떼러 갔다가 붙인 공동어로 평화수역
남북 대표단은 오후 3시40분부터 전체회의를 열어 회담 일정과 의제를 논의했지만 남북은 의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이견을 보였다.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관련, 우리 측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기선으로 (남북의) 면적이 같게 설정하고, 한 곳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다음 확대하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은 “NLL 남쪽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한 뒤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제의한 것. 북측의 주장은 현재의 NLL을 남쪽으로 12해리나 밀어 놓고 현재의 NLL과 이 기선 사이를 평화수역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협상은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왜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받아들이지도 않을 NLL 등거리 공동어로를 그렇게 애지중지 여겼던 것일까. 이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나 이야기했다는 ‘땅따먹기 위해 미국이 멋대로 그은 선’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NLL 무효 전략에 대단히 겁을 먹고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절대로 핵실험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대북외교에 위기감과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북의 핵실험은 솔직히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이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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