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선 개입, 어제와 오늘
북한의 대선 개입, 어제와 오늘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2.10.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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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특정정당 지지 등 선거판 흔들기, 이번엔?

김정은 북한 정권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의 대선 결과는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핵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남한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었고, 천문학적인 대북 현금지원을 통해 독재체제 또한 굳건해졌다. 이를 감안하면 남한 내 정권의 향방에 따라 북한 독재정권의 종말 속도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각종 선거에 적극 개입해 왔다. 개입 방식 또한 테러나 군사행동에서부터 국내 종북세력을 겨냥한 선전선동과 특정 정당 지지 선언 등까지 다양했다.

5년 전보다 개입 활동 5배 증가

이번 제18대 대선을 앞두고도 북한은 이미 행동을 개시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1일 공개한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국내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한 시도를 계속 하고 있으며, 그 수준은 5년 전 대선 때에 비해 3배나 증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이미 지난 4월 총선 때부터 국영매체인 노동신문·조선중앙방송(TV)·평양방송(라디오)을 통해 국내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거론해왔다. 이러한 사례는 올해 1월부터 4·11 총선 때까지 하루 평균 4.6회로 4년 전 18대 총선 같은 기간의 0.8회에 비해 약 6배 증가했다.

특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개입강도는 높아졌고 총선 이후 12월 대선을 겨냥해 4월(4.12∼30) 40회, 5월 140회, 6월 160회, 7월 171회, 8월 123회, 그리고 이번 9월에는 25일 까지 133회로 대선이 임박할수록 개입 횟수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한 공작도 활발하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선전기구와 외곽기구를 동원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 주장을 대폭 늘려왔다. 비난의 대상은 종북 논란·한일정보보호협정·정치자금사건 등 국내 정치 현안이며, 정부의 정책추진 및 국책사업에 대해서까지 ‘대선용’이라고 주장하면서 비난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87년 12월 대선은 그해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였다. 이에 북한은 대선을 불과 19일 앞두고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를 폭파시키는 테러를 감행했다.

사고기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다시 방콕에 기착하기 위해 비행하던 중이었으며, 기내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해외근로자가 대부분인 한국승객 93명과 외국승객 2명, 그리고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수사 결과 KAL기는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고 기내에 두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에 의하여 폭파됐음이 밝혀졌다.

87년 KAL기 폭파, 2002년 서해교전

사건의 진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 각종 제재를 가했다. 이어 1988년 2월 10일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 많은 국가대표들이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불이익을 자초하는 결과를 감수하게 됐다.

북한이 KAL기 폭파사건을 통해 노린 것은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이듬해 가을로 예정돼 있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의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한국이 올림픽 개최권을 박탈당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게 지배적이다.

또 한 가지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씨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통해 남한 내 종북세력을 결집시켜 남남 갈등을 유도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의구현사제단’ 등 종북단체들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부터 KAL기 폭파사건이 대한민국 정부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북한은 2002년 12월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서해에서 군사적 도발을 강행했다.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리기로 예정된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경 NLL(북방한계선) 북한 측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남하했다. 이에 한국 해군의 고속정 4척이 즉각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는 한편, 교전 대비태세를 취했다.

이때 북한 경비정은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을 가했고,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고,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했다. 교전은 25분 만에 종료됐으며 우리 해군의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교전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행위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북한 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북한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야기 시킴으로써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세력 및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천안함 폭침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병사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됐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으로부터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2010년 5월 20일 발표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 발표는 미국과 유럽 연합, 일본 외에 인도 등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됐으며 안보리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및 국내 좌파 정당들도 북한과 보조를 맞췄다. 특히 민주당은 50일 뒤 치러진 지방선거 선거운동에서 “1번을 찍으면 전쟁, 2번을 찍으면 평화”라는 구호를 유포시키며 전쟁 공포를 조장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0년 지방선거 하루 전이었던 6월 1일 논평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역적패당’ 등으로 지칭하며 지방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통한 목표를 달성한 셈이 됐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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