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지하철 문신남"을 검색했다
[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지하철 문신남"을 검색했다
  • 이원우
  • 승인 2012.09.04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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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4일 오후 2시 00분
 

- 포털사이트 zum 기준 3위 -

- 우리는 이전보다 부도덕해진 것일까, 아니면 아주 조금의 부도덕도 즉시 티가 나는 ‘감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 언젠가부터 한국인들은 ‘OO남/OO녀’라는 작명법에 익숙해졌다. 그 방대한 리스트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개똥녀’ 사건이 불거진 것은 2005년 6월. 지하철 2호선에서 강아지의 변을 치우지 않은 채 하차한 여성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 사진을 단서로 삼아 소위 ‘신상 털기’가 시작되었고 사건의 전말이 9시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개똥녀’라는 이름은 2005년 국립 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까지 수록될 정도로 파급력은 강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런던 지하철 테러사건의 영상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과 맞물려 한국인들은 비로소 ‘인터넷이 세계를 연결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 오늘 ‘지하철 문신남’ 역시 개똥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오후 두 시의 화제에 올랐다. 문신을 한 남성이 지하철 좌석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인터넷의 화제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 7년 전의 ‘개똥녀’와 차이가 있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OO남/OO녀의 신상을 털거나 집단적인 분노를 성토하지는 않는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질서 파괴자’의 리스트가 한 줄 더 길어졌을 뿐이라고 능숙하게 이해한 뒤 일상으로 복귀한다. 소수의 문제적 OO남녀들이 화제가 돼도 우리 시대의 공중도덕이 현저히 타락했다는 사실의 방증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게 된 까닭도 있을 것이다.

- 단, 이러한 경험이 일상화되면서 공공장소에서의 행실에는 어느 정도 부담이 생겨났다. 별 생각 없이 저지른 아주 작은 실수가 자신을 ‘국민 역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전적 방어기제가 생성된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리를 일어날 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의 마음속 아름다운 경로효친사상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거듭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요즘, 한국인들은 지하철 문신남과 같은 ‘위반사례’를 통해서 서로의 행실을 점검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의 경계를 더듬어 찾아간다. 도시의 익명성은 개인에게 무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듯 보이지만 사회적 임계점을 넘은 돌발행동을 하는 즉시 익명의 눈은 순식간에 우리의 궤적을 추적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될 수도 있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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