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2030이 부동산 문제를 가장 흔하게 접하는 곳은 현실을 풍자하는 개그 프로그램이다. 간신히 취업해서 받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숨만 쉬며 생활하면 90세쯤에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우스개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객석은 대 폭소.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뒷맛은 씁쓸하다. 이런 상황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고 표현한다.
한때는 시장과열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경기침체가 문제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조차도 2030에겐 모든 것이 남의 집 불구경이다. 가격이 떨어졌다 한들 언감생심 욕심을 낼 정도는 아닌데다 전세가격은 천정부지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떻게 변했든 현실은 똑같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2030의 의견이 양적·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이 주제가 2030의 현실과는 완벽히 유리된 ‘어른들의 비즈니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부동산에 관련된 지나치게 복잡한 제도들은 안 그래도 인센티브가 낮은 이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마저도 끊게 만드는 결정타다. 기성세대들은 마치 자기들끼리만 거래를 하고 수익을 취하려는 듯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규제들을 잔뜩 만들어 놓은 것이다.
토지 공개념의 환상
하지만 하나하나의 의미를 짚어보면 그저 정부로 대표되는 권력체계가 스스로의 기득권을 놓지 않고자 몸부림친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의 토지제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른바 ‘토지 공개념’이다.
토지는 한정돼 있는 것이므로 돈 있는 몇몇의 뜻대로 굴러가게 둘 수 없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국가가 개입할 정당성이 충분한 재화이며, 투기를 막기 위해 부동산을 소유한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 평소 이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던 2030은 토지 공개념에 입각한 제도들이 나올 때마다 YES도 NO도 아닌 흐리멍덩한 피드백 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여야 모두가 복지국가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현재의 판세는 결국 토지 공개념의 확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토지는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모두의 것이라는 말이 ‘정부의 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면 한국의 토지 공개념은 상당히 선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이는 참여정부도 인정했던 바다.(‘부동산 공개념은 한국이 선진국’, 한국경제신문 2003년 11월 5일)
단, 토지와 주택에 대해서는 이용에도 처분에도 취득에도 수익에도 전부 규제와 세금이 따라붙는 이 나라의 치열한 노력이 고작 ‘부동산 위기’라는 종착점에 가 닿았다는 것은 토지 공개념을 지향하는 사고의 근본에 문제가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땅은 사유재산이다>를 저술한 김정호 박사는 토지 공개념의 정확히 반대편에서 논의를 개진한다. 다른 모든 희소한 재화와 마찬가지로 토지와 주택 역시 철저한 사유재산권 개념으로 접근해야 가장 효율적이고 정의롭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의 자유로운 이동은 시장의 현실을 정확하게 표상하는 지표(index)의 역할을 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인다. 때에 따라 정부가 토지 소유자의 행위에 개입해야 할 때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마저도 정부는 철저히 시장을 ‘흉내 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시장이 아니라 각 연령대별 볼멘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집은 있으나 생활이 힘든 50대, 자녀 교육비로 척추가 휘고 있는 40대, 아직은 돈이 부족한 20-30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정책을 구현하려니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심으로는 본인들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마스터키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언제나 그랬듯이 모든 것은 ‘얼마나 그럴싸한 정책을 만들어 내느냐’의 싸움으로 귀결될 조짐이다.
정책이 복잡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에 많은 재량과 기득권을 주겠다는 말 밖에는 안 된다. 이로 인한 피해를 가장 먼저 감수하는 것은 결국 복잡한 제도를 익힐 틈도 없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유연성도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문제를 시장에 돌려준다면 그들을 실존적으로 구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 앞으로 배치시켜 줄 수는 있다.
대의명분과 소탐대실의 함정
반 시장적인 아이디어들은 흔히 두 가지의 함정과 함께 온다. 첫 번째가 대의명분(大義名分)의 함정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중요한 뭔가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누군가의 것으로 귀속돼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은 이 함정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야만 그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며 그 말이 맞다한들 정부가 권리를 가질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유재산권의 확립으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때야말로 소중한 토지는 가장 의미 있게 쓰일 수 있고, 이는 정부가 전 국토의 30%를 소유한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문제는 두 번째, 즉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함정에도 깊이 빠져 있다. 눈앞의 표에만 정신이 팔려 거시적으로 건전한 흐름을 만들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은 오직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에 의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 건전한 이성과 합리적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라면 다가오는 대선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어떤 후보가 가장 명쾌한 ‘퇴장 계획서’를 써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복지를 염두에 둔 제도라면 어렵고 복잡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의 효용은 오직 하나, ‘이곳의 폭탄을 저곳으로 교묘하게 옮기는 것’ 뿐이다.
이중 삼중으로 꼬여 있는 현재의 부동산 제도를 시장원리라는 명쾌한 원칙에 의해 개편할 수 있는 리더는 누구인가? 부동산 문제만 나오면 유난히 작아지는 2030의 고질적 콤플렉스는 권력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대담한 정치인의 등장과 함께 치료될 것이다.(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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