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전쟁에 약 200만명의 미군을 파병했다. 이 가운데 5만4,000여명이 죽고 10만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한민국의 자유는 이들과 같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고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웅변하고 있다. <미래한국>은 한국전 미군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해 이들의 한국전 참전 경험과 소감을 들었다. <편집자 주>
프랭크 코히 / 플로리다
한국전에서 부상한 전우들, 한국 원망하지 않아
“1950년 8월 보병 중사로 참전했다. 당시 19세였다. 한국전에 참전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한국을 처음 들었다. 그 전에 2년 동안 육군에 있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미군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북한군이 남한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한국인들은 매우 가난했고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보급병으로 전투 부대들에게 필요한 물자, 부품 등을 공급했다. 전선에 있지는 않았지만 전선 가까이에 있어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녔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잠도 잘 못잤다. 장비나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 음식은 늘 배급 음식이었고 한국은 너무 추웠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추웠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옳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침략을 막고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내 고생시키는가 라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동료 전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친구는 한국전에서 다리를 잃었지만 한국전 참전을 유감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틸포드 존스 / 텍사스
공산주의 확대 막은 공로에 자랑스러워
“1950년 11월 보병 소위로 참전했다. 당시 23세였다. 처음 부산에 도착했는데 3,4주만에 대전까지 반격했다. 대전까지 올라가며 북한군에 의해 죽은 수만명의 한국 민간인들을 땅에 묻었다. 대전에서 서울로 북진했고 평양을 지나 압록강까지 도착했다. 압록강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중공군이 쳐들어왔다.
중공군은 늦은 밤이나 새벽 2시와 같이 이른 새벽에 공격을 했다.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다. 첫번째 물결이 몰려와 막아내면 제2, 제3, 제4의 물결로 중공군들이 몰려왔다. 숫자가 엄청났다. 결국 퇴각해 수원 북쪽까지 내려왔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전투는 수원에서의 싸움이었다. 그날 밤 소대원 절반을 잃었다. 큰 상처다. 그때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2주만에 복귀했고 돌아온 그날 밤 중공군과 교전을 다시 벌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았기 때문이다. 당시 공산 소련과 중공은 한반도를 접수하고 더 나아가 일본까지 장악하려고 했었다. 미국에서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우리는 달라스 지역의 고등학교에 찾아가 한국전 당시 우리가 한 것을 설명하고 한국이 지금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공했는지, 한국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우리를 기억하고 염려해줘서 한국인들에게 고맙다.”
제임스 파운틴 / 미주리
한국의 경제 발전에 뿌듯
“1951년 보병 소대 상사로 참전했다. 당시 21살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하라고 했을 때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지만 국가가 가라고 했으니 내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갔다. 첫 발을 내디딘 한국은 참혹했다.
우리 소대는 중공군, 북한군과 교전했다. 내 소대원들이 많이 죽었다. 내가 빨리 소대 상사가 된 것도 많은 소대원들이 죽어서였다. 전우들이 옆에서 죽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마음은 표현 못한다. 나도 부상을 입었다. 한국전쟁은 처음에는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전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어디 갔다 왔느냐고, 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묻더라. 실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있다.
내 생각에 한국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감사를 잘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을 지켰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한국전에 참전하라면 가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83세의 노인은 부르지 않을 것이다.”
래리 킨나드 / 텍사스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유 지킬 신념 없다면 실망할 것
“1952년 포병 소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22살이었다. 우리는 임진강 근처에 진을 치고 중공군과 교전을 벌였다. 한국군과 함께 싸웠는데 그들은 참 잘 싸웠다. 전쟁은 죽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였다.
내 전우들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내 친한 친구도 죽었다. 나는 항상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나의 영웅이다. 한국이 발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 전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한국을 살렸기 때문이다. 다시 하라면 또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감사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감사를 표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각 고등학교에 가서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한 것을 소개하고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교육하고 있다.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사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한미동맹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같이 가려고 하면서 우리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 우리가 피로 지킨 것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 매우 실망할 것이다. 남북한 통일은 북한식이 아닌 자유민주통일이어야 한다.”
폴 스코로그 / 조지아
해군으로 참전 전투부대 수송
“1952년 해군 병장으로 참전했다. 당시 20살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해야 한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됐지만 해군으로 나라를 섬길 수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웠다. 해병대, 육군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오고 한국 해병을 비롯, 전투 부대를 영등포 등 각처에 상륙시키는 일을 했다. 처음 서울에 갔을 때 가장 큰 빌딩이 2,3층 짜리였다.
부산에서 본 한 작은 소년을 잊을 수 없다. 고아원으로 보이는 허름한 집에서 나온 작은 소년은 매우 더러웠고 진흙투성이였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가 어린이 옷을 몇 개 보내주셔서 그 고아원을 돕는 부산의 한 교회에 전달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우리가 한국이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 작은 소년을 도왔기 때문이다.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터져 사람들은 이미 전쟁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들이 한국전과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이 고맙다.”
조지 부르직스 / 뉴저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
“1953년 탱크부대 병장으로 참전했다. 당시 19세였다. 한국은 다 폐허가 됐고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미군의 탱크 화력은 러시아제 탱크를 쓰던 북한보다 훨씬 강력했다. 우리는 철의 삼각지대 등에서 잘 싸웠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막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 역시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는 한국인들이 고맙다.”
제임스 페리 / 뉴욕
한국의 민주주의 성공에 놀라워
“1953년 해병대 병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20살이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이미 북한으로 중공군과 북한군을 몰아낸 상태였지만 한국은 황폐해 있었다. 한국 군인들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는데 그들은 매우 용감했다. 나라를 위해 정말 잘 싸웠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막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성공했다. 놀라운 성공을 한 한국인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전사한 동료 전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전쟁과 우리를 잊지 않아서 감사하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