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이든 누구나 사회적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속성인 듯하다. 특히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시기일수록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자신만의 탁월한 재주를 열망한다. 민주주의를 꽃피우던 기원전 5세기 그리스가 그런 환경을 제공했다. 정치적 참여의 문호가 모든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사회적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토론과 비판,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수요도 증대됐다.
저마다 탁월한 교사를 자칭하는 소피스트(sophistes)들이 양산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플라톤의 <메논(Menon)>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에게 사상적으로 의존하던 시기인 청년기에 씌어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으로 불린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테살리아의 젊은 귀족인 메논의 대화를 통해 ‘탁월함’(arete)이 어떻게 획득될 수 있는지에 대해 소피스트적 견해와 다른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차별성을 드러낸다.
이런 기술은 소크라테스가 시중의 소피스트와 다른 진정한 철학자임을 식별하게 하려는 플라톤의 스승에 대한 신원(伸寃)적 변론의 성격도 띤다.
메논이 제기한 화두는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는가이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대해 세 단계에 걸쳐 문답법적 탐구를 진행한다. 탁월함의 본질, 가르침의 본질, 그리고 두 개념, 즉 탁월함과 배움/가르침의 결합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그것이다.
‘정의는 탁월함이다’라는 메논의 언급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탁월함 자체와 탁월함의 일종을 구별하고 ‘정의’는 탁월함의 일종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메논이 탁월함을 ‘훌륭한 것들을 욕구하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자, 소크라테스는 나쁜 것들을 욕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정의롭고 경건하게 좋은 것들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재규정한다.
메논은 소크라테스와의 문답을 통해 대화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해 소크라테스의 비판적 검토를 상대방의 영혼과 입을 마비시키는 일종의 주술로 간주해 소크라테스를 ‘전기가오리’로 비유한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시험’, ‘검증’과 ‘반박’을 통한 인식 추구의 기술로서 비판적 검토, 즉 ‘엘렝코스(elenchos)’이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확신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메논 스스로 탐구의 길을 열 수 있도록 돕는 ‘산파’의 역할을 한 것이다.
‘배움’의 본질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과 영혼윤회 사상에 입각해 배움을 전생에서 배운 것의 상기(想起)로 규정한다.
마지막 논증의 주제는 탁월함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이다. 즉 탁월함과 가르침의 결합 가능성이다. ‘탁월함이 인식이라면,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다’라는 가설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일단 인정하지만, ‘탁월함의 교사가 없다면,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없다’라고 전제를 건다. 소크라테스는 자칭 탁월함의 교사라는 소피스트들은 참된 의미의 교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탁월함의 교사가 없어 탁월함이 가르침을 통해 생길 수 없다면 탁월함은 더 이상 ‘인식’이 아니다. 이에 탁월함을 만드는 대안으로 ‘참된 확신’이 제기된다. 정치가들은 지성 없이도 많은 큰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자신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확신 속에서 참된 것들을 말하기 때문에 지성 없이 신적인 섭리에 의해 탁월함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정치가들은 신탁을 말하는 사람, 예언자들처럼 영감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은근히 풍자하면서, 지성과 인식이 겸비되지 않은 정치적 성공만으로 정치가들을 탁월함의 진정한 교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암시를 내비친다.
탁월함이 인식일 때, 오직 그때에만 탁월함의 진정한 교사가 있고, 결국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 즉 상기될 수 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탁월함의 교사라고 공언하는 소피스트도, 보수적 성향의 민주파 정치가 아뉘토스가 주장한 훌륭하고 뛰어난 정치가도, 모두 탁월함의 교사로서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도 이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 여러 분야에서 멘토를 자처하는 탁월함의 교사들이 넘치지만 ‘지혜의 가뭄’은 여전하다. 지성과 철학이 결여된 채 자기 확신에 가득차서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들의 오만한 탁월함을 볼 때, 진정한 탁월함이 과연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 집요하게 ‘엘렝코스(elenchos)’를 추구하던 소크라테스의 혜안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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