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 올해 우린 민주주의의 실패와 사회과학자들이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혼돈 직전의 상황으로 빠뜨렸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또한 어떻게 군인들이 통치권을 장악해 수 세대에 걸쳐 사회 안정을 정착시켰는지도 논의했다. 제군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배웠다. 그런데 나는 올해, 어떤 가치(value)에 대해서도 제군들에게 가르친 것 같은데? 자네! 왜 시민들(citizens)만이 투표를 할 수 있지?
학생1 : 투표권은 우주 연방군 복무의 대가니까요.
교사 : 아니, 아니야! 거저 얻어지는 것은 무가치하다. 네가 투표를 할 때 너는 정치권력(political authority)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힘(force)을 사용하고 있다. 힘은 즉 폭력(violence)이며 폭력이란 다른 모든 권위(authority)가 유래되는 최고의 권위다.
학생2 : 엄마 말이 폭력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던데요.
교사 : 그럴까? 히로시마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말할지 의심스러운데. 자네!
학생3 : 아무 말 못 하겠죠. 히로시마는 파괴됐으니까요.교사 : 맞았어! 역사를 통해 볼 때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적나라한 힘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폭력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반론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걸 망각하는 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명과 자유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교사 : 리코! 민간인(civilian)과 시민(citizen) 사이에 도덕적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학생4 : 시민은 정치체(the body politic)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개인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민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 : 정확한 답변이다. 그러나 이해하고 있나? 그렇다고 믿어?
학생4 : 모르겠습니다.
교사 : 물론 모를 것이다. 나는 여기 어느 누구도 자신의 꽁무니까지 상황이 닥친다 해도 시민적 덕목(civic virtue)을 깨닫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군인이 아니면 시민이 아니다!
1997년 개봉작인 <Starship Troopers>의 초반부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사회상은 매우 독특하다. 군인이 지배하는 사회로 시민은 군인에만 해당된다. 징병제는 아니지만 투표권을 가지려면 일단 먼저 군인이 돼야 한다.
독특한 정치관이지만 굳이 이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언뜻 B급 오락물의 느낌이다.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종족과 맞서는 흔한 스토리에, SF답게 첨단무기가 등장하고 우주와 외계행성을 무대로 전투액션이 난무한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게임 <Star Craft>에도 적잖이 영향을 주었을 만큼 치고받고 싸우는 게 기둥 줄거리다. 그저 그런 킬링타임용 액션물이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이 같은 인상은 감독인 폴 베호벤의 정치적 성향 탓의 혐의가 좀 있다. 원작의 정치적 메시지를 고의적으로 조롱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SF 이전에 정치적 문제작이다. 영화보다도 원작 소설을 보면 그 진면목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SF문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9년 발표한 작품인데, 당시 군국주의 파시스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논란이 컸다.
실제로 하인라인은 매카시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을 만큼 강경한 우파였다. 베트남 전쟁은 물론 레이건 시절에는 미사일방어체계 SDI계획에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재미 있게도 하인라인은 젊은 시절인 1930년대 무렵에는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카시 의원에 비해 왼편에 있는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하인라인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한 사회주의 성향의 민주당 후보 지지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이 캘리포니아 주 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던 것이다.
하인라인의 좌파적 정치성향에 변화가 온 것은 1948년 세 번째 결혼을 하면서였다. 그는 2차 대전이 일어나자 해군의 항공공학 관련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세 번째 반려자가 된 버지니아 거스텐펠드는 이 때 함께 근무했던 해군대위였다. 군인이면서 생화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아내는 매우 지적인 인물로 하인라인의 정치성향에 깊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하인라인은 이때부터 우파로 ‘전향’, 아내와 함께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해 1988년 죽을 때까지 강력한 보수우파로 일관했다.
보수우파 SF작가 하인라인
그런데 버지니아와의 만남이 큰 계기였지만 사실 하인라인의 본성 자체의 개연성도 없지 않았다. 그는 1907년생인데 유년기를 보낸 미주리 주의 캔자스 시는 미국에서 ‘바이블 벨트’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그는 1929년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31년부터 항공모함의 무선통신장교로 복무한 군인 출신이었다. 1934년 폐결핵으로 군을 떠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 시대의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2차 대전을 거치며 본래의 면모를 회복한 셈이었다.
어떻든 이렇게 제자리를 찾은 하인라인의 보수우파적 성향은 이후 그의 작품들에 그대로 투영됐다. 서두의 <Starship Troopers>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Value, Authority, Body Politic, Civic Virtue 등은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적 개념들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의 하나인 1966년 작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도 그렇다. 이제는 보수우파의 대표적 신조의 하나로 회자되는 그 유명한 관용구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가 거듭 등장한다. 지구 본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달세계의 독립혁명투쟁을 그린 작품인데, 이 혁명은 전체주의적 관리경제체제를 무너뜨려 자유와 시장주의를 쟁취하려는, 말하자면 우파혁명이다!
하인라인은 미스터 SF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작품을 남겨 ‘SF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러면서 문학적으로도 인정받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SF라는 장르를 통해 미국의 보수우파적 가치를 전투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Starship Troopers>도 그런 작품인데, 특히 민주적 ‘권리’를 떠들기 이전에 반드시 갖춰야 할 시민적 ‘의무’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심심찮게 병역 기피가 문제가 되는 우리 사회가 참고할 만하지 않는가? 소설도 완역돼 1998년 시공사, 2003년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왔는데 현재는 모두 절판 상태다. 아쉽게나마 영화로라도 그 내용을 한번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하인라인의 전기적 사항들은 네이버캐스트 최원택씨의 글을 참조했다.)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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