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문장가이면서 걸출한 웅변가이자, 공화정에서 제정(帝政)으로 넘어가던 로마 정치사 한가운데서 이념적으로 결연하게 공화정을 수호하려 애쓰던 정치가였다.
그의 <국가론>은 혼합정체론 및 자연법 개념을 받아들인 스토아 철학에 심취한 로마의 지식인 모임이었던 스키피오 서클 멤버들의 대화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술됐다. 당대 최고의 정치적 인물들의 대화라는 허구의 기법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책은 모두 6권으로 나뉘어 기술됐다. 키케로는 서두에서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현자(賢者)라면 언제든 필요에 의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요청받을 수 있으므로, ‘시민의 일(res civilis)’에 대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고귀한 활동으로 본 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같다.“조국은 우리의 정신, 재능, 예지 중에서 가장 많고 큰 부분을 조국 자체의 유익을 위해서 담보로 잡고 나서, 나머지가 있을 경우에 우리에게 사적인 용도로 되돌려주도록 한 것이다.”
키케로의 국가의 기원에 대한 생각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는 국가란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에 의해서 결속한 다수의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결합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이기 보다 자연스런 군집성 같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가 바로 그가 존중하는 공화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 읽힌다.
국가의 바람직한 정체에 대해 그는 스키피오의 입을 빌려 왕정, 귀족정, 민주정 등의 장점과 폐해를 논하면서 결국 이 세 가지가 동등함을 유지하는 국가체제, 즉 혼합정의 상태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집정관과 원로원, 민회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로마의 공화정이 체제, 질서, 규율의 면에서 최상의 국가 양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로마의 건국과정과 고대 로마의 왕들의 치적을 상고하면서 공화정의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집정관에게 권한을, 원로원에는 권위를, 인민에게는 충분한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로서의 공화정이 국가를 지속하게 한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최상, 최하, 중간 계층의 모든 사람이 합의와 화합을 이룰 때 정의롭게 되고, 그것이 국가의 ‘안전띠’가 된다고 본 것이다.
키케로는 인민의 자유가 자의에 따라 이루어질 때 방종이 되므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계약의 형태로 국가가 형성된다며, 남에게 불의를 가하지도 자신이 겪지도 않는 상태가 바람직하며, 인민들 사이에 공평 정의 신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이런 길로 인도하는 게 올바른 이성과 자연에 부합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신성한 법, ‘하늘의 법’이 모든 국가들의 보편적 통제의 수단이 돼야 하며 이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파멸과 대가가 따른다고 말한다.
나아가 라일리우스의 입을 빌려 키케로는 법을 무시하는 대중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마치 2천년의 시대를 넘어 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섬뜩하다.
“어떻게 대중이 주인 노릇하는 상태 속에 국가라는 이름이 생기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소. 법에 대한 합의로 억제되지 않는 자들은 인민이 아니기 때문이오. 오히려 인민이 한 명의 사람처럼 모일 때는 참주(僭主)나 다름없는데, 이 경우가 더욱 무서운 법이요. 왜냐하면 인민의 모습과 이름을 흉내 낸 것보다 더 잔인한 짐승은 없기 때문입니다.”
키케로는 국가의 구성원인 자신들을 통치할 법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고 이런 법이 없다면 국가가 존속할 수 없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자연적인 정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오히려 정의는 진실하고 영원하며 보편적인 법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자유야말로 건전한 사회질서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 보았다. 법을 제정하는 목적도 자유를 평등하게 공유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치를 강조한다.
키케로의 국가론은 플라톤의 국가론과 달리 현실 정치인의 관찰과 체험이 진하게 배어 있고, 로마 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헌신하던 현실 정치인의 고민과 당시 지배층의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특히 공화주의의 가치 철학으로 시발된 개념들이 많이 논의됐다는 점에서 정치사상 연구에도 유용한 시사를 준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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