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간 23개 주요도시 도보행진 나서는 최홍재 순례단장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구출 통영의 딸 백만엽서 청원운동'은 '2011 구출 통영의 딸 국토대장정'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달 19일 통영에서 시작해 12월 11일 임진각을 끝으로 23개의 주요 도시를 도보 행진할 예정이다. 신 씨의 남편인 오길남 박사와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명예단장을,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가 순례단장을 맡았다. <미래한국>이 최홍재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수용소 동포들의 고통 체험 위해 행진
이번 대장정의 가장 큰 목표는 전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감, 참여, 확산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목표다.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을 통영에서만 국한해서는 안 되겠기에 국토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통영에서 출발해 23개 도시로 나가기 때문에 23개 도시 주민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죠. 공감하면 확산이 될 것이고 확산하면서 구체적으로 참여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을 순회하면 지역마다 행사를 진행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그분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될 겁니다. 우리가 떠나고 난 다음에 이렇게 중요한 일을 행사 끝났으니 손 털겠다고 하지는 않겠죠. 계속되지 않을까 싶어요. 각 지역의 교회, 성당, 종교. 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서울에서 몇 천 단위로 행진을 하게 된다면 그 모든 힘들이 모여 길게 구출 운동을 해나가는 국민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요?”
납북피해자 사진 전시회로 시작된 통영의 딸 구출 운동은 그동안 촛불집회, 서명운동, 엽서운동, UN청원, 음악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왔다. 기존 북한인권운동의 고답적인 성격을 탈피해 문화적 감수성을 적절히 결합한 시도였다는 평이었다. 이제는 ‘국토대장정’이다. 30명 규모의 순례단은 23개 구단으로 나눠 통영-고성(1구간)을 거쳐 김해-부산(5구간), 대구-구미(11구간), 영동-대전(14구간), 천안-평택(17구간)을 지난다. 23일간 매일 도시 하나를 이동하는 스케줄이다. 이전의 운동보다 한층 도전적인 느낌이다.
“국민의 감정선은 다양하기 때문에 구호가 와 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로, 노래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차 타고 이동하면 하루에 세,네개 도시를 다니면서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겠죠. 계속 도보로 걷고 야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아플 수도 있고 피곤을 풀 시간도 없으니 효율면에서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가학적’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효율성을 몰라서가 아니죠. 세 모녀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있었던 고난의 세월과 막막함, 기다림과 지루함을 견딘 지가 24년 째 됐는데 세 모녀를 포함해 납치된 사람들의 세월을 조금이라도 공유해보자는 뜻에서 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시민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 동포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요즘 같은 날씨는 국토대장정을 떠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낮,밤의 기온차가 심해 체력이 떨어지기 쉬워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단체 중 일정을 이맘때로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차라리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 낫지 감기도 잘 걸리는 환절기에 대장정을 떠난다고 했을 때 전문단체에서 모두 말렸다고 한다.
최악의 조건 속 행진, 중학생부터 노년층까지 동참 기대
“웬만한 체력을 가지지 않으면 종주는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워 봐야 수용소 24년보다 더 어렵겠느냐’는 정신력만으로는 안 되고 지금부터라도 몸을 제대로 만들어야죠. 저도 체력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10km를 뛰고 있고 일요일에는 20km 씩 뛰고 있습니다. 이동 거리가 일정한 보통의 국토대장정과 달리 저희는 행사 일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매우 불규칙적입니다. 어떤 도시는 가깝고 어떤 도시는 멀기 때문이죠. 마산과 창원은 가까운 편이지만 40km 이상씩 걸어야 하는 곳도 있고 산악지대가 많은 지역은 15시간씩 걸어야 합니다. 자연히 휴식 시간도 불규칙하고 밥을 해먹기는 어려워 낮에는 주먹밥, 저녁에는 도시락을 먹으며 행진할 예정입니다.”
‘지옥의 훈련’을 연상시키는 강행군에 중3인 그의 딸도 참가한다고 한다. 신숙자 모녀 얘기를 듣더니 학교에서 ‘가정학습통신서’를 받아 왔단다.
“제가 가자고 권유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집을 당분간 비워야 돼서 설명해준 것인데 공감이 됐나봐요. 기말고사 끝나고 26일부터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한번은 어르신이 신청하신 적도 있었어요. 발족식 날 광화문에서 60대 후반 되신 분도 신청을 하셨는데 저희가 설명을 드렸죠.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루에 3,40km씩 걷는다 했더니 체력은 자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데 "잠은 여관에서 자죠? 난 잠은 따뜻한데서 자야 돼서...” 하시길래 웃음을 참으며 정중히 설명 드렸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잠은 좋아봐야 면사무소 마당이거나 들판에서 텐트치고 자거든요. 나이 드신 분들이 하기에는 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 참가합니다. 여성 참가자도 2,3명 정도 있구요.” 국토대장정의 아이디어는 독립영화 감독인 동생 최봉재 씨가 제안했다고 한다.
자매를 구하러 형제가 나섰다
“어쩌다 보니 자매(신숙자 모녀의 딸)를 구하러 형제가 나서고 있는 모양새가 됐어요. 동생이 한국다양성협회 이사장입니다. 정치적 색깔을 가진 친구는 아니지만 평소에도 ‘영화는 다양해야 하는데 요즘 영화들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걱정하더라구요. ‘한국 영화는 북한동포를 다루지 않는다’는 고민도 했었구요. 동생이랑 사석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신숙자 모녀 얘기가 나왔고, 동생이 불쑥 대장정을 해보자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시큰둥했는데 제가 하겠다고 나섰죠.”
행사가 열리는 지역에서는 협조적이었다. 오히려 모이는 사람 수가 너무 적을까봐 걱정하며 흔쾌히 행사 개최를 허락했다고 한다.
“한 명의 시민이 오시더라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행사 순서는 순례단원들의 인사, 엽서 보내기 운동, 노란 손수건 달기입니다. 감옥에 간 남편을 잊지 않고 아내가 오크나무에 손수건을 매달아 놨던 일화에서 본 딴 것이죠.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납치피해자 수에 맞게 517개의 노란손수건을 나무에 달고 시민들에게 ‘forget me not’라는 꽃말의 물망초 배지를 달아 드릴 예정이에요. 지역의 납치 피해자 가족이 계시다면 그분들의 호소 어린 연설도 열릴 겁니다.”
교포사회, 해외여론 적극 동참
대장정의 하이라이트는 국민대행진이 진행되는 12월 10일과 세계인권선언 63주년을 맞는 11일이다. 광화문에서 서울 시민들과 대행진을 진행한 후 다음날, 임진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더 이상은 못 가지만 납북 된 동포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해단식을 열고 마무리할 예정이다. 서울 뿐 아니라 도쿄, 유럽, 워싱턴에서도 참여한다고 한다.
“교포사회와 점차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독일 한인회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국의 한인회와도 소통이 되고 있어요. 12월 10일 정도에 가시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한기총, 예총, 자유총연맹의 참여가 확정됐고 다른 협회들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신숙자씨가 카톨릭 신자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카톨릭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구요. 운동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통영의 딸 운동은 신 씨 모녀가 구출될 때까지 계속돼야 하는 운동이죠.”(조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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