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감정(感情)의 충돌
이념과 감정(感情)의 충돌
  • 미래한국
  • 승인 2011.09.09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의각교수의 세상보기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역사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1993년에 쓴 책에서 앞으로 ‘문화의 충돌’이 국가이익 및 정치이념과 더불어 세계정치에서 상이한 문화 및 지역 간에 지배적 대결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오늘날 미국과 유럽 국가들로 상징되는 서구와 아랍 무슬림권 그리고 아시아권의 국가들 간에는 종교를 포함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청산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로 상호 감정의 충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감정의 충돌은 한 나라 안에서도 인종과 신분, 소득, 종교, 각자의 정치이념, 출신 지방의 상이함에 따라 부단히 계속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대립적 충돌이 표출되는 방법이나 강도는 민주사회냐 독재사회냐, 그리고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에 따라서 또한 다르다.

최근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 간에 정치와 경제 문제에 관한 이념과 감정의 대립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노출방법은 후진국형(型)이다. ‘맞춤형(단계별) 무상급식 대 전면적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서울주민의 찬반을 가리기 위해 서울시장직을 걸고 투표를 요구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소위 ‘나쁜 투표’라며 투표참여거부운동을 주도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대결은 분열된 우리 사회의 정치이념과 감정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앞으로 예산이 확충되면 무상급식 대상자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 곽노현 교육감 측은 가난해 공짜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자비(自費)로 식사하는 부자학생들에게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다 같이 공짜로 점심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필요한 연간 소요재원은 4대강 사업예산을 돌리면 된다는 입장이다. 4대강 준설공사는 일단 완성되면 건설예산이 더 이상 소요되지 않는 사업이다. 그러나 무상 급식예산배정은 일단 시작되면 가난한 가정이 없어질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이 후자의 주장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로부터 주눅 들거나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택의 크기나 소득과 재산, 의복 등 모든 면에서 부자들 수준으로 똑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전체주의 사상을 깔고 있다. 그렇게 할 경우 우리는 국가부도를 모면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우리 모두 함께 망함으로써 평등해질 것이다. 

빈부격차 문제로 총선·대선 때 승부수 걸겠다는 속셈

경제적 평등사회의 철학은 공산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좌파는 빈부격차 현실을 정치 문제화시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부수를 걸겠다는 속셈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정치적 계산 앞에서 여당과 야당의 구별 없이 뒤죽박죽된 형국이다. 단지 각 정치인의 이념과 철학에 따라 좌와 우로 나뉠 뿐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이나 정부 안에도 정치 이념적으로 좌성향으로 기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모두 잘살 수 있는 지상낙원 국가의 건설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목표이다.  그런 목표를 지향하다 보면 각자 능력의 차이 때문에 앞서가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달리기에서 모든 선수가 똑 같은 속도로 보조를 맞춰 달리도록 하는 경기는 있을 수 없다. 등산을 할 때 산 정상에 누가 먼저 올라가느냐의 시합 경주가 아니라 모두 낙오 없이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경우, 속도는 개의하지 않고 서로 밀고 당겨주며 함께 힘을 보태며 돕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나 개인 간이나 국가 간 보다 높은 수준으로의 경제적 성취는 경쟁을 통해 이룩된다. 경쟁적 성취를 기하는 일과 전체적 도약을 기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쟁 사회에서 ‘공존’과 ‘공생발전’은 중요한 윤리적 덕목인 동시에 공동지향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생발전을 앞세우게 되면, 발전의 속도가 느려져 다른 경쟁국에 뒤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윤리와 종교교육에서 이웃 배려의 덕목을 키워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업이나 개인 간의 소득평등을 국정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 속에서 국민경제에 큰 기여를 해온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따뜻한 자본주의’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을 위한 ‘공생발전(평등)’을 주문한 것은 보기에 따라 대통령의 시각이 사회주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지 않은지 의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의 경영자들에게 경영의 자율영역을 직접 규제하는 권력은 이미 자본주의 정신의 경계선을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논쟁점이 될 소득, 재산 및 개인간 신분의 불평등 이슈로서 사회경제 형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당 야당 모두 대기업 두들겨 패기에 열을 올려 지금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로 이행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보수노선의 파수꾼으로 자처해 오던 일부 언론들도 진보성향의 논객들을 동원해 그동안 경제성장과 국가브랜드 국제화에 크게 기여해온 삼성그룹 등 대기업 두들겨 패기에 일조하고 있다.

정권과 권력의 상실은 부패, 무능, 무책임에서 기인

이념적 충돌이나 이념의 변질행위는 정권 장악에 대한 불안감과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정권과 권력의 상실은 부패와 국민 기대를 저버린 무능, 무책임 그리고 공의의 상실에 기인한다. 

최근 우리의 현실문제는 정치와 행정부의 중책을 맡은 인사들의 평균 질적 수준의 저하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퍼진 권력형, 직위별 부패만연 등 사회도덕의식의 와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두 정권과 현 정부에서 진보적 성향 엘리트들과 대선공신들 위주의 각계 요직 안배 결과로 빚어져 왔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나라가 썩었다”는 심각한 비판이 있었다고 보도됐지만 아쉽게도 그 누구도 현실에 대한 궁극적 책임 소재를 밝힌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이념에 편향된 사람들은 책임회피와 책임전가에 집착할 뿐이다. 지금은 기성세대 모두가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내 죄로소이다. 내 탓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할 때이다.

감정적으로 좌우로 나뉘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국력을 소진하기보다 우리 당대와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세계사적 흐름을 분석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러지 않다가 졸지에 공산화되면 종국에는 좌파도 우파도 모두 설자리를 잃게 될까 염려된다. 이 우려가 현실화되는 조짐이 커지고 있는데도 우리 국민은 왜 이념과 감정의 충돌과 정치, 경제, 사회적 분열에 계속 열을 올리고 있을까.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