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찾아온 친구를 안내하며 30여년 만에 우리 역사, 문화의 고을인 경주와 안동, 그리고 4대강사업이 한창 진척되고 있는 선산(구미), 낙동(상주), 문경 그리고 통영과 거제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보면서, 경제와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강산의 지형과 자태를 바꾸어 놓은 지난 반세기의 노력과 역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자랑스러움과 뿌듯한 감회를 가졌다.
이 같은 발전을 이루는 데는 과거 국가 진로를 설계하고 그에 따른 정책적 투자를 결정한 정치와 사회 지도자들의 현명한 정책판단과 추진력과 거기에 더해 묵묵히 협력한 수많은 국민들의 땀과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물론 과거 정치 지도자들의 공헌과 업적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들의 정치 성향에 따라 대립적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6.25 동란의 폐허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분단의 아픔을 딛고 서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해 온 것은 우리가 실제로 보고 느끼는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민심이 정부와 여당을 떠나는 이유
그러나 과거보다 생활수준과 생활환경이 많이 향상됐다고 해서 국민이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커진 파이를 많이 차지하게 된 계층과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으로 나뉘게 되고, 작은 몫을 가진 계층의 소유자가 과거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커졌다고는 하나, 계층 간의 횡적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큰 몫을 가진 쪽과 비교가 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소득계층 간 사회갈등 문제가 항상 일어난다.
빈부 격차를 최소한의 사회적 마찰과 저항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찾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설령 묘안이 있더라도 이해관계의 상충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시장기능을 훼손시키지 않고 실행하기 쉽지 않다. 설상가상 물가가 높아져 소득하위계층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서민 생활여건(민생)이 악화되면 민심은 정부 집권당과 그 정치지도자로부터 이탈한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바로 이런 형국에 빠져 있다.
물가상승은 크게 보아 수요측 요인과 공급측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물가는 상승하는데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더 크게 증가하는 이유는 시중에 유동성(유통되는 통화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물가상승의 공급측 요인은 주로 생산비용증가로 인해 생산단가가 오를 경우 생산되는 물건의 공급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강성노조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높은 임금인상 요구는 물가를 올리는 한 예이다.
그리고 생산요소(석유와 기타 원료, 중간생산재)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이들 생산요소의 원산지 공급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이들을 수입해 생산되는 국내제품가격은 오르게 된다. 원산지 원료가격은 안정돼 있을지라도 환율결정에서 우리나라 통화가 국제결제통화(예컨대, 미 달러화)에 비해 정책적으로 저평가되도록 책정되는 경우, 모든 수입품(원자재와 완제품)의 국내 가격은 높아진다. 한편 저환율정책의 경우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경쟁력은 높아져 수출은 증대되고 수입은 감소해 외화보유고가 증대하고 이는 다시 국내통화 공급의 증가로 이어져 시중 유동성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나타난다.
경제문제, 시장기능 아닌 정치논리로는 해결 안 돼
그동안 정부와 통화당국은 국내물가보다 실업해소와 증권시장 끌어올리기에 무게를 두는 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로 수요견인형 물가상승을 초래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유가의 급등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의 물가 영향으로 국내 비용인상형 물가상승을 초래해 이미 연율 5%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현재와 같이 청년실업자가 엄청나게 많은 실정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량을 줄이고 금리를 높이면, 증시자금이 해외로 이탈돼 국내생산 활동 위축을 초래해 실업은 더 악화된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높은 물가와 높은 실업수준) 하에서의 통화정책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또 금년 초에 이미 서민 가계부채 총규모가 700조원이던 것이 신용카드대출의 확대로 1분기 중에 사상최고 수준인 800조원을 넘어 조만간 우리 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저환율기조 덕택에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력 업종중심으로 계속 호황을 누리고는 있다. 대내적으로 높은 실업률과 높은 물가상승률의 양면 악재에 부딪쳐 있는 이명박 정부는 비경제적 논리와 권력의 칼로 시장경제체제를 수술함으로써 정치적 위기 탈출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 제기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윤공유제’, ‘국민연금의 대기업 주주 의결권 행사 강화’, ‘기업의 제품가격 결정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경고’ 등은 현 정부가 경제활동에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개입하려는 하나의 단면 또는 그 의지를 나타내는 좋은 예들이다.
경제문제와 논리를 권력을 통한 강제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우선은 눈에 거슬리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경제는 차후에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문제는 시장의 자동조절기능과 적절한 통화, 재정, 조세, 환율 등 경제정책의 최적조합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정책 실패로 뒤엉켜진 경제문제들을 정확하게 진단해 적절한 경제정책수단 동원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자 능력이다. 객기를 부려 권력의지와 힘으로 몰아붙이려고 하면 꼬인 실타래 같은 경제문제들은 더욱 꼬이기 마련이다. 경제의 흐름을 4대강 정비사업 처럼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국민은 현 정권 하에서 노출되고 있는 각종 권력형 부조리 실태와 그에 대한 책임 있는 자들의 범죄불감증, 그리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대다수 국민 기대를 빗겨간 각종 정책 실패, 인사실패 등을 포함해 그동안의 통치자의 정책판단의 건전성 여부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우리는 임기가 끝나 떠나면 그만이다”라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남은 임기를 자신들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사고에 젖어 있다면 당장 깨어나 허리띠를 다시 고쳐 맬 것을 부탁한다. 지금 많은 국민은 힘겨운 민생고와 물가고로 실망과 피곤에 빠져 있다.
설령 모든 어려운 민생과 서민 고통의 원인이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도자는 겸허히 그동안의 실정에 대해 책임을 지고 새롭게 중지를 모아 국민 모두에게 다시 희망을 주는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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