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집행하는 경찰도 사람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접합니다. 그들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을 봅니다. 다급해지면 전부 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봅니다. 술이 들어가면 신사도 없고 교양인도 없고 지식인도 없고 다 똑같아지니 사람을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아십니까. 공포영화, 귀신 나오는 영화는 무섭지 않습니다. 귀신들은 대체로 한이 있다든가 억울하다든가 뭔가 산 자에게 호소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죽은 자가 나타났다는 게 무서울 뿐이지 실제로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괴물 나오는 영화,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괴물은 전부 다 사람들이 상상해 낸 것입니다. 용가리·에어리언·네스 호의 괴물·히말라야 산맥의 설인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상상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영화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사람의 거짓, 사람의 잔인함, 악함, 이것을 접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게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있을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때 관객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지, 왜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셔야 했는지를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저 인간을 계몽시키고 인간이 조금 교양을 배우고 계몽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저 어떤 교훈이나 상징적인 스토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에게 대신 쏟아 부은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에 쏟아 부었다가는 온 세상이 지옥에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TV가 아직 없을 때 아버님과 영화를 보러 가면 늘 아버님께 여쭤봤습니다. ‘아빠,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그런데 영화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분명하게 보이지요. 나쁜 사람은 목소리도 그렇고 생긴 것도 무섭게 생겼고 얼굴에 수염이 있고 검정색 옷을 입었고 이런 식으로 나쁜 사람은 뭔가 나빠 보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영화와 같지 않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정말 나쁜 사람입니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데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숨겨져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 중에 정말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알곡과 쭉정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참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취하나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성령은 깊은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경성해야 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불의함이 드러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해야겠습니다.
3/27 설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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