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미국 연방상원에서는 미국 내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들을 구제하는 ‘드림(DREAM) 법안’의 표결 상정 여부를 묻는 표결이 있었다. 이 법안은 16세 이전에 미국에 정착해 최소 5년을 거주하고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거나 미군에 입대해 최소 2년이 지난 30세 미만의 불법체류자에게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2001년에 처음 도입된 이 법안은 부모들이야 의도적으로 미국의 법을 어기고 미국에 체류하고 있지만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앞뒤 사정 모르고 그저 따라온 것이기에 이 아이들 만큼은 구제하자는 취지다.
불법체류자 자녀들 구제하는 DREAM법안 부결
미국에서는 매년 6만5,000명의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학까지 다닐 수 있지만 졸업 후 직장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등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온 이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고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이 아이들은 미군에 입대하는 등 미국에 기여할 것이 많다며 적어도 이들 만큼은 구제하자는 목소리는 계속 돼 왔다.
이날 표결을 앞두고 워싱턴 DC 의사당 주변에서는 며칠 전부터 이 법안의 통과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가운을 입고 졸업모를 쓰고 상원의원들에게 우리도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싶다며 기회를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No’였다. 찬성 55 대 반대 41로 표결 상정에 필요한 60표를 얻지 못하고 폐기됐다. 반대하는 이유는 불법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외를 두면 다른 예외가 이어지면서 미국 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주장이다.
약 1,100만명에 달하는 미국 내 불법체류자 문제는 미국이 풀어야 할 주요 숙제 중 하나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것은 좋은데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다 추방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자니 대표적 민주국가인 미국이 비인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합법 신분을 주자니 불법을 용인하는 것이라 이 불법체류자 문제는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이들에 대한 사면으로 문제를 풀어왔다. 가장 최근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다. 당시 이 사면은 1982년 이전에 미국에 들어온 불법체류자와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그 결과 약 270만명이 합법적인 신분을 얻었다. 이 사면은 일시적인 구제 조치로 특정한 기간 동안 불법체류자의 미국 거주기간과 세금 납부 실적 등을 따져 영주권 취득을 허용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7년에는 불법체류자들에게 합법 신분을 부여하고 불법체류자들의 밀입국을 막기 위한 국경통제 강화 등을 담은 포괄적 이민법안을 추진했지만 그때는 실패했다.
미국인 다수, 불법체류자를 범법자로 인식, 히스패닉 유권자 정치력 신장이 관건
하지만 공화당을 중심으로는 이런 사면은 불법을 보상하는 것이고 또 다른 불법이민자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합법적인 이민자들 가운데는 자신들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많은 비용을 들여 수년 간 기다린 끝에 미국 영주권을 받았는데 불법체류자들이 사면을 통해 영주권을 받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곱지않게 보고 있기도 하다.
미국인들 가운데는 불법체류자들을 범법자로 보고 이들을 단속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지난 13일 발표한 라스무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76%는 불법체류자들을 범법자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 논란이 된 애리조나 불법체류자 단속강화법이다. 이 법은 지난 7월 법원에 의해 발효정지 됐지만 당시 다른 주들이 비슷한 법을 제정하려 했고 미국인들은 가운데 이 애리조나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9%가 애리조나 불법체류자 단속법을 지지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들이 미국에서 강력한 유권자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불법체류자 이슈는 정치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른 인구 증가율을 보이는 히스패닉들의 표를 의식해 정치권들이 불법체류자 이슈에 유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이 내년 하원을 장악하면서 당분간 드림법안 등 불법체류자 구제를 위한 움직임은 구체화되지 못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미국경제 침체로 미국 내에서 반이민정서가 더욱 커져가며 불법체류자 구제 움직임은 더 환영받지 못할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09년 8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이민을 줄여야 한다고 응답한 미국인이 전체 응답자의 50%로 2008년 39%에 비해 11%나 대폭 상승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권익 보호 단체들은 2012년 대선을 기대하고 있다. 그때 다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 힘을 이용해 불법체류자 구제 이슈를 제기해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1,100만명 불법체류자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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