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동, 태평양 아시아의 비전은 현실” 류우익 태평양아시아협회 고문
“문명의 이동, 태평양 아시아의 비전은 현실” 류우익 태평양아시아협회 고문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9.3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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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아시아협회(PAS) 30주년 기념 인터뷰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지리학자다.
세계지리학회(IGU)의 secretary general을 역임했던 류 실장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故 김상철 변호사와 함께 ‘태평양아시아협회(PAS)’를 설립하고 한국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의 해외봉사 파견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PAS는 올해 10월,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태평양아시아협회의 의의와 비전, 그리고 오늘 우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의 미래 비전을 그로부터 들어봤다.

- 올해로 태평양아시아협회(PAS)가 30주년을 맞습니다. ‘태평양 아시아’라는 명칭을 청년 해외봉사에 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로벌이나 세계와 같은 명칭도 있지 않습니까?

‘태평양 아시아’라는 말을 쓴 것은 지리적 개념이기는 하지만 태평양을 끼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연대를 제시한 겁니다. 일본에서부터 동남아까지, 그리고 태평양을 끼고 이웃이 된 미국과 오세아니아와 인도도 함께 참여하도록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태평양 아시아 개념이 왜 중요한 가하면 문명의 무대 한쪽을 대륙으로 보고 다른 한쪽을 해양으로 본다면 문명은 항상 더 큰 무대를 찾아서 서쪽으로 이동해 갔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다시 이베리아로, 그리고 대서양 영국으로, 거기서 다시 태평양으로…. 문명은 서진(西進)을 거듭했던 것이죠. 

단순히 서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무대를 향해서 중심을 이동해 갔습니다.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무대는 대륙으로 치면 아시아이고 해양으로 치면 태평양인 것이죠. 그러면 이제 아시아와 태평양이 만나는 지역이 중요해집니다. 그 곳이 어디냐는 것이죠. 바로 온대지역입니다. 그 온대에서 다시 만나는 지점이 바로 고대 문명이 있었던, 지금도 인구가 가장 밀집된 동아시아인 것입니다.

정치적, 국제적 갈등이 동아시아에서 첨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동아시아가 중심이 되어서 태평양 아시아 지역이 현대화를 하면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문명의 키워드는 자유와 번영의 확대, 그리고 공유라는 것인데 요즘 말로하면 상생 공영이라는 것이죠. 과거와 같이 제국주의에 당했던 그런 것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의 기반을 넓혀서 함께 잘 살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줄곧 이런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타고르의 시를 읽어 준 적이 있지요. 한국이 아시아의 등불이 될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코리아는 아시아의 등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고르는 식민치하의 코리아를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했을 때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인가. 아시아를 비추는 등불이라면 무엇으로 비추어서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인가. 저는 바로 ‘자유와 번영’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룬 자유와 번영을 아시아를 넘어 인류와 공유하는 비전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먼저 분단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분단이 극복되지 않고 타율의 구조 속에 있으면서 자율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 한국의 비전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비전이 기업이 아니라 봉사 단체의 것이라는 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또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보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그런 활동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런 기업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죠. 앞선 산업사회를 따라잡던 시절에는 그나마 열심히 하면 통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이끌어 가지 않으면 잡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태평양아시아협회의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문명 이동의 중심에 놓이다

30년 전에 태평양아시아협회를 만들어서 글로벌 사회를 내다보고 동아시아, 또는 태평양에 속한 아시아 지역의 이해와 협력의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그런 자각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가 1994년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앞장서서 봉사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좀 자화자찬같지만, 특히 청년들을 격려해서 그들이 앞장서 봉사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어떤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도우려 나서느냐? 우리의 전통적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죠. 굉장히 추상적인 말이지만 윤리적으로는 생명 존중에서부터 환경과 지구를 살리는 것에 이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두가 상생 공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자유와 번영을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살면 되고 당신들 일은 모르겠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은 힘만 확대하는 제국주의가 됩니다. 우리 한국이 경험하고 우리가 찾아간 그 길로 오는 자유와 번영을 확장해서 함께 누리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통일 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룬 자유와 번영을 아시아 대륙으로, 또 낙후한 개발도상 국가로, 아프리카와 남미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겠다면 그것은 한국이 미래의 자기 역할을 제시하는 비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 한국이 가져야 할 비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지금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어떤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고비가 있는데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 것이냐가 이제부터의 과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일 큰 과제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고비를 넘어가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 없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도국 중추국가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선진국, 또는 선도국이라고 하는 개념은 적어도 다른 나라들에 모범을 보이고 이끌어 가는 어떤 가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한 가치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돈이 많기로는 사우디아라비아도 많죠.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선진국으로 여기는 나라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사우디는 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진국에 들어가는 경로를 보면 서구 선진 국가들은 시민사회를 잘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한 시민사회를 통해 계몽을 겪었고 근대화를 한 것이죠. 그렇게 시민의식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계몽과 르네상스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근대화의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던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혼란을 겪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정 없이 산업 근대화든, 식민지 근대화가 부과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도 부과된 것이고 시민사회도, 산업도 사실은 그렇게 부과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뭘 해야 되겠다고 하는, 이를테면 자결에 의해서 또 자율적으로 시민사회를 통해 선진사회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과연 생략될 수 있는 걸까요. 역사 발전에서 나는 어떻게든 그러한 것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완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죠. 이렇게 저렇게 임시방편으로 땜질을 대충했지만 보완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이유는 조선 사회나 일제는 물론이고 미 군정도 마찬가지지만 분단 이전까지 우리 근대 역사라는 것이 자율의 역사가 아니라 타율의 역사, 자결의 역사가 아니라 타결의 역사였던 것이죠.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강대국들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했고 지식인들은 강대국들의 문물을 흡수하고 베끼고 외우고 따라하는 것에 그쳤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통해 깨쳐서 길을 찾아가는 그런 과정을 해야 하는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태평양아시아협회(PAS)는 한국의 청년 민간 외교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사진은 지난해 PAS의 베트남자원봉사 대학생들 모습.

한국 사회, 자율 자립의 각성 필요

- 국민 스스로 일어서는 자주자립에 실패했다면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다 실패한 겁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보면 국민이 깨치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끄러운 문제들도 사실 무엇을스스로들 깨쳐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분이 생기고 사상적으로 갈라지고 하면서 시대에 조응하지 못한 때문인 것이죠. 과거 미군정기에도 결국 우리가 자결의 기반을 갖추지 못했고 자결의 의지나 힘이 약했기 때문에 분단이 된 것입니다.

분단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들을 합니다. 냉전 체제니 뭐니 여러 해석들을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우리 스스로 자주적으로 독립해 낼 역량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분단 구조를 타율의 구도라고 봅니다. 남이 결정해 준 구도 속에서 남북이 이제 대립을 하는 것이죠. 북한의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이나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나 모두 우리 스스로 쟁취하고 겪어내서 이룬 것이 아니라 부과된 것이었죠.

다행히도 남한은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개방 노선을 택하고 시장경제를 택하면서 세계 경제와 세계정세의 흐름에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산업 근대화를 할 수가 있었고 자유 무역이라든지 수출이라든지 중화학, 반도체 중심의 이런 기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이 그 시대에 맞아 떨어진 바람에 우리는 산업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체제 자체의 모순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길을 택하는 바람에 저렇게 되었고 이제 남한만 선진국 진입을 바라볼 수 있는, 적어도 경제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자주성과 자립의 능력이 결핍된 한국 사회라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됐든 성공한 것은 아닐까요?

젊은 친구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운동선수들이 금메달을 잘 따고 수출을 잘해서 1인당 국민 소득이 높아지는 것이 선진국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거죠. 선진국이 되려면 아까 이야기 했듯이 국민이 깨쳐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굉장히 취약합니다.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해 있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아직도 서양 이론이나 서양 개념에 기대고 있거나 서양의 평가에 의존하고 서양의 스탠더드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따라잡자거나 미국을 따라잡는 것에 앞서서 쇄신을 제시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갖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부분에서 잘하고 있느냐, 예를 들어 1차적으로는 교육이나 2차적으로는 사회적 자본과 제도의 운영이라든지 하는,성숙한 국민과 시민으로 그런 일을 잘하고 있느냐, 또 준비하고 있느냐고 하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형편인 것이죠. 심하게 말하자면 대기업과 첨단 부문에서 성과로 돈은 좀 벌었지만 우리 대중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못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간단히 지표를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많은 범죄가 사기나 허위와 같은 것들인데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면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또 지적인 발전에 있어서도 아직 자기 나름의 현상인식에 상당히 못 미치고 있는 것이죠. 좀 혹평을 한다면 조선시대 유학생들이 중국사와 중국 지식인들의 글을 외우고 따라하는 데 열중을 했듯이 우리 대학의 현주소가 구미의 이론을 답습하는 것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토론이나 소통을 통해서 우리 나름의 결론을 얻어내는 데 굉장히 취약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죠.

이를테면 산업화 이후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앞에서 이야기한 타결의 분단 구조, 타의에 의한 분단 구조에 안주하는 그런 행태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친북 좌파든 보수 기득권층이든 간에 타율 구조에 익숙해 있고 안주하려고 합니다. 그런 타율적 구조에서는 자율적인 문화 풍토가 형성되기 어려운 법이죠. 이를테면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또 협박을 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이 무슨 대안을 내놓고 있습니까. 미국이 알아서 하거나 중국이 말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자신을 지키는 생존의 문제까지도 여전히 타율과 타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힘을 빌리고 중국을 설득하더라도 의사결정은 우리가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 기준이 돼야 되는데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 말씀하신 한국의 비전과 선진화로 가려면 교육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교육자로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육이 위기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오래 얘기가 돼온 부분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솔직히 시인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대학 교육이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지방사립대학이 연명에 급급하고 정원을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서 등록금을 받는 데 급급합니다. 그런데 등록금 동결이라는 정치적 결정 아래 대학은 재정의 빈곤으로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것이 위기입니다. 그 다음에 중고등 학생들은 정말 교육을 잘 받고 있는가, 입시 준비는 잘 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솔직하지 못합니다. 또 그렇게 교육세를 많이 걷어서 남아도는 문제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사실은 공교육은 무너져 있고 사교육에 의존하는 상태가 돼 있습니다.

가깝게는 의대 정원 하나 정부가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정치권과 교육계 누구도 솔직하게 우리 교육이 사실상 위기에 처해 있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처방을 찾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들 우선 내 임기만 지나고 보자는 생각인 것이죠. 장기적 비전이 결여되어 있는 정치와 교육이라면 바라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서양 같으면 종교를 바라보게 되는데 우리는 종교인 스스로 기복 신앙에 안주하고 있어서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지경입니다. 오죽하면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신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어떻습니까. 물론 열심히 잘하고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정부의 보조에 의존해서 생존이 급급할 따름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거나 시민사회에 뿌리를 굳건히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는 사실상 정치화해버렸고 비록 시민단체 숫자가 많고 요란하지만, 일부 정치권의 아류가 되어버린 쪽과 정부에서 사실상 공공의 재원으로 움직이는 쪽을 제외하고 나면, 글쎄요….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 그것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에 왔다고 봅니다.

대담하고 있는 류우익 태평양아시아협회 고문(좌)과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우)

통일 없는 선진화는 불가능

- 한국의 비전은 결국 통일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실장님은 통일부 장관도 역임하셨는데 최근 통일과 관련해 논란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이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다른 국가들, 특히 우리의 통일과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들로서는 한국이 정말로 통일을 원한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들이 여기에 힘을 모아야 하고 그래서 통일이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분단 체제 하에서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콤팩트하게 생각해 봅시다. 누가 통일을 주도할 것인가? 이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국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구 수나 여러 가지 능력에서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 제 첫 번째 생각이고 그 다음으로는 통일 후의 비전입니다. 통일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을 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어쩌면 철학적 과제입니다. 통일의 동기로부터 통일 과정, 통일 후의 비전 모두에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합니다. 동서독이 통합됐을 때 제가 동서독 과거 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여성이었는데 대단한 분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제가 물었죠. ‘당신들이 한 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그랬더니 ‘민생 범죄 피라미들은 놔두고 두목급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좀 의아했죠. 그래서 왜 피라미들은 놔둔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피라미들 잡는 데 열중하다보면 통일과 통합 자체가 실패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한 민생 범죄자들의 기록은 남기되 다 사면하고 대신 주도적으로 인권을 탄압했거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법정에 세운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독일은 유럽 국가로 거듭 태어날 것이고 세계 국가로 거듭 태어나는 길을 갈 것이다. 과거의 독일만을 위한 유럽, 독일만을 위한 세계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 위해 동서독 통합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할 일도 이렇지 않을까. 통일의 비전으로 자유통일과 상생공영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생략했던 계몽주의를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냥은 안 되는 것입니다. 공짜는 없는 것이죠. 국민이 깨우쳐서 성숙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매우 취약합니다. 결국 민주주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나라가 앞으로 달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깨우쳐야 하고 해야 할 자유통일과 그 너머 글로벌 소사이어티의 상생 공략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국제사회에 내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남을 괴롭히는 제국주의를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괴롭힘을 당했고 이러이러한 어려움을 겪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당신들과 함께 갈 수 있다는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죠.

- 실장님은 3분의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또무엇이 지금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라는 담론을 제시했을 때 굉장히 적절하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자율을 구체화하는 비전이나 정책 대안이 따르지 못하는 걸 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비전을 설정하고 정책으로 유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이 많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은 하나하나 개별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미래의 비전을 확실히 제시하고 그 비전으로 가기 위한 길을 국민에게 보여주면서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멈춘 자전거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굴러가야 균형을 잡게 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진함으로써 그 추동력에 의해 어떤 문제는 그냥 안고 가게 되고 많은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검사출신들이 정권에 많이 등장하고 검사들의 논리와 법조의 논리들이 우리 정치를 상당히 지배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법 위기니 하는데 사법은 과거의 일을 바르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죠. 그래서 사법의 틀에 빠지면 모든 일의 시시비비를 가려서 벌을 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미래를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해 이끌어 가는 힘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법적 마인드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다 처벌하고 나면 세상이 좋아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 오늘 인터뷰 결론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배고픔이나 억압을 견디는 데는 아주 강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없는 것은 견디지 못합니다. 다시 태평양아시아협회로 돌아가 본다면 지난 30년, 그리고 앞으로 30년의 시점에서 태평양아시아협회가 설정한 대안이 왔다는 겁니다. 국가가 그것을 공유해 주기를 바라면서 태평양아시아협회 그런 방향으로 또 30년을 내다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PAS(태평양아시아협회)도 하나의 기업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기업입니다. 그래서 창립자 故 김상철 변호사를 생각하면 선각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먼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불살라서 그 길을 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훌륭한 친구였고 훌륭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철 변호사의 생각이 여러 후배들에게 더 많이 전파되고 발전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태평양아시아협회가 가진 30년 앞의 비전과 시대정신이 계속 이어질 겁니다.

진행 /정리 한정석 편집위원
사진 권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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