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명에 380조원. 지난 18년 동안 정부가 세금을 투입하고 2023년 받아 든 대한민국의 ‘저출산 성적표’다. 밑 빠진 독이 아니라, 아예 주둥이밖에 없는 독에 물을 부어 왔던 셈이다. 결국 국가 비상상태가 선언됐다.
지난 6월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부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며 ‘저출생대응기획부’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로 정하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아 저 출생·고령사회·이민정책을 포함한 인구에 관한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육아를 포함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저출산의 핵심이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면 이제 기업이 저출산 해결의 당사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야 할 젊은 세대는 일터라는 곳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이제 기업이 맡아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임직원 출산율 높은 한국의 기업들, 비결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롯데그룹의 임직원 출산율은 2.05명으로 10년간 2명대를 유지했다. 한국 합계출산율 0.78명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롯데그룹은 가족친화 경영이 화두였다. 2017년부터 남성 직원에게 한 달 이상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이 제도 초기에는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봤지만 현재는 자연스러운 사내 문화가 됐다. 육아휴직 첫 달에는 통상 임금의 100%를 지급한다. 이후에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직원들은 매우 만족하는 분위기다.
육아휴직 후 96% 복귀라는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기업도 있다. 바로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지난 2월 GPTW(Great Place To Work)가 선정한 ‘2024 대한민국 부모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이하 부모가 일하기 좋은 기업)’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다. GPTW는 미국, 유럽, 중남미, 일본, 중국 등 세계 70여 국가와 공동으로 신뢰경영을 연구, 전파하는 기관이다. 매년 포춘 US가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Fortune US 100 Best Companies to Work For)을 비롯해 유럽, 중남미, 일본 등 세계 70개 국가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진단해 선정한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1년 11월 서울 본사(강남구 삼성동) 1층에 433.6㎡(131평)·정원 40명 규모의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대웅제약의 상징인 ‘곰’에서 착안해 ‘대웅 리틀베어 어린이집’이라고 이름이 지었다. 대웅제약은 당시 30%에 달하는 여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일터를 조성하고자 직장 어린이집을 개원을 결정했다.
기업의 가족 친화적 경영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이미 일본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확인됐다.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는 2021년 여성사원의 출산율이 1.97명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전체 여성 평균 출산율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 0.94명이었던 2010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관계자는 “야근 대신 다음날 아침에 전날 마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도록 유도하는 등 근무제도를 유연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친가정,친육아 경영은 기업의 이윤이 동기 차원
영국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들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션 블레이클리 PwC 파트너(전 주한영국상공회의소 회장)는 이데일리와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저 출산 관련 포럼에서 모국인 영국의 사례를 들며 기업이 육아 장려책을 활성화하는 등 포용성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출산율을 보면 영국이 한국보다 2배 정도 높다. 영국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한국은 왜 그렇지 못하는가. 라고 한 뒤 “(영국은) 기업 내부에서도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업의 친 가정, 친 여성 경영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 연구와 이론적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올해 1월, 한국무역협회의 보고서 <기업내 親출산·양육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 제언: 정책연구실 장유진 김민우 양지원 등>에 의하면 우리 정부는 임신·육아기 유연근무 활성화, 직장보육시설 확충 등 여러 출산 및 양육환경 개선정책을 시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균형 문화 미흡’이 여전히 저 출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전국 만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저 출산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일과 육아 양립 문화가 미흡해서’ 응답이 14.3%로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4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고용노동부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등 실제 제도 활용이 어려운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에’가 상위권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밖에 여러 선행연구 조사 및 데이터 분석 결과, 기업의 출산·양육친화제도는 여성 근로자 출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도 가족과 출산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서 실증 분석한 결과, 일·가정생활이 병행 가능한 집단의 평균적인 추가 출산의향 및 출산계획 자녀수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는 이유를 지지한다. 그러면 의문이 든다. 가족친화 경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기업에게 무슨 이익을 준다는 것일까. 대웅제약은 왜 친 여성, 친 가족 결정을 했던 것일까. 단순한 사회공헌적 차원이었을까. 가족친화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던 당시 인사혁신팀장 김영권씨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이 직원을 육성, 성장시켜 조직의 성과를 창출해내고 그것을 통해 기업이 생존해가는 것이죠. 그런데 사회가 감성사회로 가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상당히 요구되는 이 시대에 여성인력을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즉 여성을 배려해야겠다는 측면보다는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해서 기업 성과를 창출해야겠다는 데 시발점이 있었습니다. 여성 인력을 채용해서 활용하다 보니, 가장 큰 문제가 출산 문제, 육아 문제였죠.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다 보니 재택근무를 해야겠다, 출근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겠다, 심지어는 늦게 와서 일찍 퇴근하는 것도 자유계약을 해서라도 해 주자는 것들이 모두 시행되다보니 이것이 선순환이 된 것입니다.”
대웅제약의 가족친화 경영의 사례는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시행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기 이윤 동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이 저 출산 해결사가 되는 이유는 사회공헌 동기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 동기 차원이라는 것이고 그러한 시장원리가 저 출산도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게 드러난다. 기업이 친가정적 경영을 하는 것에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문제는 역으로 친 가정 경영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정책으로 일관되어 왔다.앞서 언급한 한국무역협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동안 정부가 출산율 제고를 위해 발표한 다양한 정책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자의 출산·양육지원제도 활용을 장려할 유인이 부족한 반면, 기업이 출산 및 양육지원제도 활용에 협조할 인센티브는 적은 반면 불이행시 기업을 징벌로 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로 지난 해 3월 정부는 일·육아 병행 지원제도 활용과 관련해 근로감독 확대를 실시하고 전담신고센터를 신설하는 등 집중 단속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인센티브
현행법 기준으로 출산휴가를 미부여하게 되면 2년 이하 징역·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며 출산휴가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5천만원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육아휴직 미부여 시에는 5백만원 이하 벌금, 육아휴직 이유로 불리한 처우의 경우, 3년 이하 징역·3천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고용노동부는 ‘모성보호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상반기 중 500개 사업장에 대해 집중감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출산·양육지원제도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고 징벌적 성격이 강하여 출산·양육 친화적 기업문화가 자리 잡을 유인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94.5%)이 저 출산 기조 속에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응답하고 있는 반면, 현재 출산·양육지원제도는 기업에 인센티브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기업에 대한 징벌적 접근을 의미하는 ‘인센티브는 적고 패널티는 많다’라는 응답도 40.3%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기업 징벌적 성격의 제도는 기업 내 임신·출산·양육 친화적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58.3%로 과반을 차지한 점과 더불어, 현재 정부에서 시행 중인 출산·양육지원제도 관련 한계점으로 ‘현실적 기업운영과 동떨어진 정책’(31.8%),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변화에 대응 미흡’(22.8%), ‘부족한 지원규모’(20.5%) 등이 함께 지목됐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정부는 출산·양육 제도 미이행 시 제재가 따르는 현재의 ‘징벌적 접근’에서 인센티브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여 기업의 자발적인 이행을 독려하고 기업 내 출산·양육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낮은 출산율의 원인 가운데는 여성들의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포스코의 경영정책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포스코는 2020년 7월부터 ‘경력단절 없는 출산기 재택근무제’를 신설해서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 전일(8시간) 또는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신청가능하게 했다. 반일 재택근무제의 경우 근무시간을 오전 8시~정오, 오전 10시~오후 3시, 오후 1~5시 중 육아 환경에 맞게 선택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무역협회 설문 조사에 의하면 “재택근무제도가 없었다면 진작 육아휴직에 들어가 경력 단절이 길어졌을 것”, “특히 점심에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여성들의 경우 다시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직장을 관두는 일이 많은데, 해당 경우 육아기 재택근무제도를 활용해 일과 육아를 병행할 계획”이라는 응답들이 많았다.
포스코의 이러한 친양육 경영 프로그램은 호주에서도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 호주는 ‘Keeping in touch days’ 제도를 운영하며 육아휴직 중인 근로자의 향후 원활한 업무복귀를 지원한다. 자녀를 돌보는 직원이 직장에 대한 최신 정보를 파악하고, 기술을 재충전하며, 원활하게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교육 또는 컨퍼런스 참석 등의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무급 육아휴직 중인 근로자에게 10일의 기간이 주어지며, 만약 해당 근로자가 육아휴직 기간을 12개월을 초과하여 연장하는 경우 추가로 10일을 사용 가능하게 한다. 또 하루 단위로 사용 가능하며, 자녀 출산 또는 입양 후 최소 42일 이후에 사용 가능하고 해당 기간 동안 근로자는 통상임금을 받는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 세계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갱신했다. 출산율 저하는 곧 생산가능인구 감소로도 이어져 중장기적으로 인력난을 유발하고, 시장 수요 감소로 내수기반이 축소되는 등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도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저출산은 경제의 공급, 수요 측면에 모두 악영향을 미쳐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 하락을 유발하는데, OECD는 우리나라의 2030~2060년 GDP 증가율이 0.8%로 OECD 최저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고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저출산·고령화로 2060년대부터 경제가 역성장하여 2075년 필리핀,방글라데시 등의 국가들보다 경제 규모가 뒤처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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