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이 3월 3일 비례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여기에 통진당의 후신 진보당을 비롯해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진보당이 뭉쳐 만든 새진보연합, 좌파 단체들이 참여한 ‘연합정치시민회의(시민회의)’도 동참했다.
민주당은 통진당 잔존 세력을 비롯해 좌파 진영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주는 것도 모자라 지역구 공천을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양보했다. 민주당이 통진당과 같은 세력의 국회 진출 길을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더불어비례연합’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이들은 모두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으로 비춰질 뿐이다. 이들이 민주당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과정은 대략 이렇다.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시민회의 등은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비례위성정당 참여 합의 서명식을 가졌다. 참여 세력은 28일까지 정책 협상을 완료하고, 3일 ‘더불어민주연합’ 창당을 하는 데 동의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지역구 공천에 있어 민주당과 진보당은 호남, 대구, 경북을 제외하고, 진보당 후보가 출마하는 지역구에서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으로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했다. 울산 북구는 진보당 후보가 맡을 예정이다. 민주당과 새진보연합은 모든 지역구에서 여론조사 경선 방식으로 후보를 단일화할 계획이다.
비례대표는 총 30명의 후보를 뽑되 진보당 추천자 3명, 새진보연합 추천자 3명과 국민추천 후보 4명을 포함하기로 했다. 국민추천 후보의 공모와 심사는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위원이 중심이 되는 독립적 심사기구에서 진행한다”고 선거연합 측은 밝혔다. 사실상 시민회의 측에 맡기는 셈이다. 즉 10명이 좌파 진영 추천 후보다. 나머지 20명은 민주당이 추천하기로 했다.
박홍근 선거연합 추진단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의석 순번 배치는 상호호혜 원칙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배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단장은 그러면서 “오늘 합의 내용에도 있는 것처럼 3개 정당이 시민사회 측에 추천을 요청하면, 시민회의가 추천해서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라며 “거기서 엄정하고 공정하게 향후 공개모집부터 시작해 심사와 선정 이후 비례정당에 추천하는 과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 30석의 비례대표 가운데 10석, 지역구는 울산 북구만 소위 진보당과 좌파 시민단체에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2월 17일 동아일보는 “통진당의 후신 진보당이 비례대표 정당에서 민주당에 지역구 15곳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민주+진보당+새진보연합,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 창당 합의
진보당은 17개 광역 지자체 가운데 자당 후보가 없는 제주도와 세종시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각 1석씩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진보당은 울산 북구는 물론 강성희 의원의 전북 전주을과 경남 창원성산의 양보를 요구했다. 강성희 의원은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진보당에 지역구를 양보한 뒤에 당선됐다.
신문에 따르면 진보당은 이미 지역구 후보 83명을 모았다. 이중에는 통진당 소속으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인사였던 김재연(경기 의정부을), 이상규(서울 관악을) 전 의원도 있다. 두 사람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통진당의 범야권 단일화로 비례대표로 당선됐으나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은 결국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민주당이 진보당과 좌파 진영에 이처럼 많은 양보를 한 배경에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재명 대표가 2010년 4월 지방선거 때부터 경기동부연합과 손을 잡았고,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경기동부연합은 86 운동권 세대들이 활동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보다 더 종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 세력들이 주축이다. 한총련 출신들은 전대협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정계 진출을 권유해도 민주당을 두고 ‘보수 정당’이라며 거부했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극좌·종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한총련의 핵심 줄기 가운데 하나인 경기동부연합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경기 성남시에서부터 깊은 관계를 맺었다. 경기동부연합과 이재명 대표의 관계는 월간조선이 2012년 7월호에 상세히 소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이재명은 2010년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도전하면서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과 연대했다. 이때 경기동부연합과 밀접한 관계가 됐다는 내용이다.
경기동부연합은 도시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형성한 구 성남 지역을 근거지로 해서 성장했다. 가까운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이들의 인재 양성소 역할을 했다는 것이 매체와 인터뷰를 한 성남 출신 운동권 인사의 설명이었다. 그는 “경기동부연합과 사실상 공동정부를 구성한 성남시는 주사파 소굴이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0년 4월 지방선거 당시 민노당은 성남시장 후보를 내지 않았다. 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김미희 씨는 시장 대신 경기도의원으로 출마했다. 놀라운 것은 공직선거법 제88조에는 타 정당 후보를 위한 선거 운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당시 이재명 민주당 성남시장 후보는 김미희 민노당 경기도의원 후보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때 경기동부연합의 리더 이석기의 역할이 컸다. 이석기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사회동향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선거 홍보에 이용하고, 자신이 이사를 맡고 있던 매체 ‘민중의 소리’로 이를 확대 재생산했다. 민중의 소리는 2011년 6월까지 네이버 등 포털에서 뉴스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0년 5월 27일 민중의 소리는 김미희 후보 인터뷰에서 “김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로 단일화를 이루기 위하여 성남시장 후보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당선될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 야권연대를 이뤄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당리당략을 버렸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연대는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에는 더 노골적으로 됐다. 이재명 시장 인수위원회 명단을 보면 김미희 씨가 위원장이었다. 민노당 사무부총장을 지낸 그의 남편 백승우 씨는 인수위 간사였다. 민중의 소리 대표였던 윤원석 씨는 대변인이 됐고, 경기동부연합의 대외적 간판이었던 이용대 전 민노당 정책위 의장도 인수위원이 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시정을 펼칠 때 경기동부연합이 이권 사업에 진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2년 5월 서울신문은 “경기동부연합 사회적 기업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특혜를 줬다”고 보도했다. 업체 이름은 ‘나눔환경’으로 대표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84학번인 한용진 씨였다. 그는 성남평화연대 정책위원장, 광우병 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지냈다.
신문은 나눔환경의 등기부 등본을 제시하며 “관계자 전원이 통진당 구당권파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이석기 당시 의원 보좌관, 전국연합 경기동부연합 공동의장, 민중의 소리의 전신인 ‘한국민족민주인터넷방송’ 대표, CNP 전략그룹 이사 등의 이름이 나왔다. 신문은 또 나눔환경이 설립 한 달 만에 성남시 청소대행업체로 선정됐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표와 경기동부연합의 관계성은 성남시장 시절에 모두 끝났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지사를 할 때만 해도 그 관계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지사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도 경기동부연합의 그림자가 이재명 대표 주변에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전대협보다 더 한 90년대 주사파 4·10 총선 물밑 작업
대장동 사건으로 유명해진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 한총련 산하 남총련 출신이고, 정의찬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과 김재용 경기도 정책공약수석도 한총련 출신이라는 점, 지난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꾸려진 선거캠프 관계자 다수가 한총련 출신이라는 점은 이런 주장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한총련은 90년대 말 이후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사실상 장악했다는 것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경기동부연합의 어원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라는 90년대 주사파 조직의 하부 조직들끼리 재편해서 만든 지역 조직 이름이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 충북 군자산에 모여 ‘군자산의 약속’을 결의한 뒤 단체로 민노당 입당을 결의했다.
여기에 경기동부연합과 인천연합, 울산연합 등이 적극 동참했다. 이전까지 사회주의 추종 세력(PD 계열) 위주였던 민노당은 이들의 단체 입당으로 주체사상파가 주류가 돼버렸다. 2001년 서울 용산구 등에서 벌어진 위장전입 사건이 바로 인천연합 주도로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2004년 민노당 전당대회에서 주사파가 당 창당세력이던 PD계열 평등파를 밀어내고 당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한총련 계열 조직들이 서울·경기 지역 총학생회를 장악하는 동시에 민노당 학생위원회까지 노렸다. 한총련을 이어 출범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도 주사파가 장악하면서 민노당 안팎은 전대협 시절보다 더한 주사파가 장악했다. 이런 한총련 출신들이 이재명 대표를 등에 업고 국회 진출을 노린다는 게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민주당을 탈당한 개혁신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 2월 25일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통진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념 세력’의 국회 진출을 위한 계획”이라며 “경기동부연합 등 이념 세력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숙주로 성남시·경기도를 지나 이제는 국회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산 옮기기’라 불리는 경기동부연합의 저인망식 세력 확장에 민주당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는 야권의 이야기를 전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판결에 따라 해산된 통진당은 주사파 방식대로 바닥에서부터 조직을 재건을 했는데 그때 방식이 ‘산 옮기기’였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전북 전주을 보궐선거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였다.
진보당은 이때 전국적으로 조직을 동원해 골목 청소, 놀이터 어린이들과 놀아주기, 경로당 노인들 돌보기 같은 바닥 밀착형 활동으로 지역을 파고 들었다. 민노총 또한 같은 방식으로 다시 주사파가 장악했다. 사상 최초로 민노총 위원장 재선에 성공한 양경수 위원장도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지만 실제 산을 옮기는 일을 경기동부연합 등 주사파 사람들이 해왔다”며 “(주사파는) 노회찬·심상정이 주인이었던 민노당을 접수하고, 민노총도 장악했다. 언감생심이었던 민주당 장악도 목전까지 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이 경기동부연합에 민주당을 아예 내주려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목소리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30여 년 동안 호남·좌파의 옹호 세력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70년 전 한국민주당(한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은 사실 호남 기득권과 반이승만 기득권 세력을 뿌리로 둔 정당이다. 즉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정당이다. 지난 2월 1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6 운동권 세대 청산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경기동부연합과 한총련의 국회 진출 저지를 강조하면서 “정통의 민주당에 운동권 세력이 파고드는 것은 안 된다”고 한 것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특권세력 청산은 제가 인위적으로 만든 선거 구도가 아니라 국민께서 생각하시는 시대정신”이라며 “그 운동권이 소위 86운동권만이 아니라 지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옹위하는 (세력)”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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