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보수, 탁월한 리더와 결합할 새로운 세력이 절실하다”
[좌담] “보수, 탁월한 리더와 결합할 새로운 세력이 절실하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3.19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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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 운동권이 보수를 말하다

사회·정리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참석자 민경우  민경우 수학연구소 대표

          김유진  시민단체 ‘길’ 이사

사진 서이경  미래한국 객원기자

대담 중인민경우 대표(우)와 김유진 이사(좌)
대담 중인민경우 대표(우)와 김유진 이사(좌)

한 시대에는 그에 맞는 시대정신이 있다고들 한다. 지난 80년대에는 ‘민주화’라는 세 단어가 시대정신으로 불렸고, 이에 따라 ‘민주 대 반민주’는 지난 30년 동안 모든 선거에서 진보의 아젠다였다. 이제 한 달여 남은 4월 총선에서 민주화의 기수 운동권은  청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운동권은 누구였나.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왜 전향했나. 그들은 지금 보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미래한국>이 전향한 운동권, 민경우, 김유진 두 사람과 대담의 자리를 만들었다. 

사회 = 민경우 대표님은 대학을 두 번이나 다니셨습니다. 두 분이 대학에서 운동권이 된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민경우 = 처음부터 약간 운동권 끼가 있었죠. 원래 정치 역사 이런 걸 좋아했는데 막상 의대를 가보니까 정치, 역사 이런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마침 소위 ‘국뽕’이라는 감수성이 있었어요. 국사학과나 철학과 특히 민족적인 학문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서 자퇴하고 다시 입학했죠.

그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영미 자유주의에 대한 얘기를 누구도 해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때 컴퓨터 과학 같은 전자통신 혁명 이런 얘기를 누가 해줬으면, 또는 생물학 혁명 이런 걸 이야기 해줬으면 전혀 달라졌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마르크스 이야기만 잔뜩 해대니까 그게 전부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제가 편협했던 것이 아니라 선배들이 이야기해 준 것을 따라서 그 경로를 간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김영환 선배의 전향서 같은 것을 봤는데 저는 그런 전향자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생각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공감은 가지 않았습니다.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가더라고요. 북한이 싫어졌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되지 북한 민주화를 할 필요가 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유진 이사
김유진 이사

운동권이 되었던 이유

김유진 = 저는 전기 대학을 떨어지고 후기를 갔거든요. 우리 때는 전후기가 있었잖아요. 그래도 전기는 이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소위 명문대였는데 후기는 좀 그러니까 취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그런 것이 있었어요. 저는 특별히 이과형은 아닌데 어머니가 의대를 너무 보내고 싶어 했죠.

결국 원하는 대학을 못 갔기에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갔더니 근현대사만 가르치잖아요. 저는 처음 배운 역사인 거예요. 이렇게 우리나라가 쓰레기 같은 나라였어, 이런 게 된 거죠. 제가 좀 가난한 집 애였으면 오히려 더 이성적이 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좀 돈이 있는 집안이니까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호의호식을 하고 살았구나, 우리 아버지가 나쁜 자본가였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 죄의식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에 대해서 선배들한테 상담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운동권이 된 거죠.

그런데 사실 아이러니한 거는 제가 입학하고 소비에트가 붕괴됐거든요. 그러니 정상적인 사회주의자가 되면 안 되는 거예요. 대학 1학년 때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던 거죠. 그냥 한국사가 너무 문제가 많고 미제의 식민지, 오늘도 미군에 의해서 수탈당하는 여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정의감 이런 것에 빠졌던 거죠. 

사회 = 민 대표님이 ‘건국전쟁’을 보셨다는 기사를 봤는데 느끼신 점이 있다면? 

민 = 이승만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았구나, 이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그 몰랐던 이승만 대통령이 업적이 엄청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참 미안하다고 생각했어요. 386이 너무 자기 목적을 위해서 괜찮은 건국의 아버지를 너무 이렇게 폄하하고 죽였구나, 이런 사실은 미안함이 제일 컸어요. 

과거에는 이승만에 대해 아주 편향되어 있었죠. 두 가지 점에서 편향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이승만의 하와이 시절, 공금 횡령이 어쨌느니 하는 이런 얘기만 쭉 하는 게 있었는데 의도적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죠. 그 다음 두 번째는 좀 나이가 들어서였는데 김구와 이승만을 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의 해양 국가론, 태평양 국가론과 단선 단정론을 결합시킨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게 하나 있고 김구의 통일 민족 국가론이 있는데 우리는 김구의 후자로 방향을 틀었죠. 그 관점에서 보면 이승만을 부정하고 폄하해야 되는 것이죠. 이승만 노선은 틀렸다, 이렇게 정치적 변론을 해야 되니까 제가 대학 3, 4학년일 때는 적극적으로 김구 노선을 띄우고 이승만 노선을 죽였죠. 의도적으로 말이죠. 후배들한테 교육을 할 때도 그렇고. 

사회 = 두 분의 주사파 이념은 어떻게 습득되신 겁니까? 

민 = 돌이켜보면 주사파는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북한에 충성하는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런 정의는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주사파의 하위 버전이 북한 정통론이죠. 그 다음에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인데 저는 거기까지 경도돼 있었지 ‘북한 김일성 수령’ 이런 얘기 나오면 좀 어색해요. 그러니까 저는 수령관 이런 것은 거부하고 북한 주도의 통일론을 중심으로 받아들인 주사파였던 것이죠. 

반면 주사파 중에는 주체사상에 완전히 경도된 이들도 있었죠, 주로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하니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성을 이야기하면서 주사파에 경도되는 경우죠. 97학번 중에는 성경처럼 주체사상을 외우는 후배가 있어요. 흔히 노작이라고 부르죠. 웃기는 겁니다. 사실 90년대 후반쯤 되면 운동권이라는 게 남아 있지 않거든요. 그런 와중에 운동권이 된 친구들은 제가 보기에는 할렐루야 할 정도로 주체사상을 외우고 다닙니다. 

저희는 그래도 현실과 밀착해서 뭘 한 거예요. 5·18이나 해방 전후사 인식이나 이런 것은 어쨌든 현실에 문제를 둔 것이죠. 그런데 90년대 운동권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회주의권 붕괴 원인을 분석했을 거잖아요. 분석을 했더니 그것은 이론의 한계가 아니라 부패한 관료 집단의 문제더라는 것이죠. 

이런 것이 선험적으로 공리주의적인 측면에서 비롯되는데 가령 군부독재를 타도해야 되는데 군부독재가 단순히 군부가 아니라 친일파의 후손 문제더라 이렇게 접근이 되는 거죠. 이제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북한입니다. 이렇게 주사파가 형성되는 것이죠. 이렇게 정의를 딱 내리고 시작하는 거예요.

김 = 그렇죠. 그런데 사실 그건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윗세대가 그렇게 정리해서 가르친 거죠. 사실 자본론 보면 너무 깔끔하잖아요. 이렇게 깔끔하게 답이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론이 왜 무너졌을까. 저희는 화학과였어요. 그래서 이론적으로 완벽함에 마르크스주의에 끌렸던 것인데 사회주의가 무너진 거예요. 그래서 분석을 해보니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공산주의 인간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죠.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문화혁명이 설명되는 겁니다. 하지만 문화혁명을 하는데 사람들이 죽고 유혈사태가 나는 겁니다. 결국 저렇게 바꾸면 안 되는 것이고 대중의 유기체를 가지고 인간을 개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물질세계에 가장 발전된 물질인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개조해야 된다는 결론에 따라 의식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죠. 결국 주체사상은 합리적인 유물론이 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주체사상은 현실과는 유리된 지독한 관념론이었던 것이죠. 

민=그런 점에서 주체사상은 농촌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해요. 주사파 중에 촌놈들이 많거든요. 얘네들이 볼 때는 농촌에서 향촌 규약 같은 거 있어요. 그런 걸 좋아해요. 농촌 동네 가서 일하고 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도시에서 자라서 굉장히 그게 잘 안맞았어요. 도시적인 감수성에 익숙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때부터도 농촌 활동 이런 것을 잘 안했고 나중에 나이 들어보니까 주체사상이 농촌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어떤 사상 체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지체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회 = 김유진 이사님은 운동권이셨는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저희는 여성주의자예요. 저는 그래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너무 오염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성주의자인데 남자와 싸워 져본 적이 없어요. 물론 범죄 위험성이나 이런 거는 확실히 높은 거고 또 우리 세대가 최초의 50%의 여학생이 대학을 진학한 최초의 고학력 여성 세대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봉건주의의 잔재를 가지고 국가가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아 386들은 최초의 좋은 아빠 최후의 나쁜 남편이거든요. 386이 그렇잖아요.

마지막 나쁜 남편. 자기의 효도를 다 와이프가 해야 되지만 아들에게는 딸에게는 좋은 아빠잖아요. 우리 세대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은 386이에요. 어떠한 배려도 받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힘든 세대 그래서 저출산이 시작되는 세대거든요. 저희를 마지막으로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90년대 중반 아이들 학번부터는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아요. 왜냐하면 엄마가 고생하지 말라고 대학을 보내놨더니 자기 위의 선배들을 보니까 사람 사는 게 아닌 거예요. 이혼도 엄청 많아요.

우리가 어떻게 보면 제일 힘든 세대거든요. 정말 독하게 살았어요. 2시간 자고 애 보고 그렇게 해서 여성이 남자처럼 일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세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노력해 보여준 거잖아요. 그리고 싸워 이긴 거거든요. 저는 페미니즘은 나를 둘러싼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은 나를 아끼는 아빠라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공주병자들이라 생각해요. 여성 할당제요? 너무 모멸을 느껴요. 30% 여성 할당은 70% 남자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꽂아놓는 거잖아요. 

민경우 대표
민경우 대표

새로운 시대 가치에 눈뜨다

사회 = 전향해서 보수 진영과 함께 하고 경험해 보니 어떠십니까. 보수를 평가하고  제언하신다면?

김 = 일을 할 때는 좌파적 행동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수는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100명이 100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맞다고 하죠. 그러면서 문자를 보내고 이상한 행동들을 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보세요. 한동훈 위원장이 영입을 추진하느라 조금 광폭 행보를 하니까 벌써부터 순혈주의자들이 점검에 들어갔어요. 만약에 주사파라면 지도부가 결정하면 마음에 안 들어도 묵묵히 일단 가거든요. 일단 일을 해놓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단계별로 전술을 시행하는 것에 능해요. 그런데 보수는 한 두 개 가지고도 광폭 행보를 합니다. 일단 이겨야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민주당 이재명 대표 보세요. 뭐가 어떻든 자신을 호위할 사람들만 있으면 어디서 무얼 했든 상관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는 스펙트럼이 넓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보수는 단 몇십 석이라도 순혈주의자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운동권 전향자들에 대해 위장보수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죠. 좌파를 해 본 이들이 정책이나 전술에는 더 유능합니다. 그런 것을 활용할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나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쭉 존경해 왔기 때문에 나는 보수고 너는 욕을 했기 때문에 보수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를 감별할 자격이 있다는 건데 제가 보기에는 현 시대를 바라보는 정책적 과제나 아젠다에서는 전체주의적인 성격들이 있어요. 그런데 맨날 앉아 감별하는 거죠.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아요. 

민 = 2000년 초반에 보수는 뉴라이트니, 크리스천 리버럴이니 하는 것들이 실패했죠. 그 결과 박근혜 탄핵이라는 것도 있었고 탄핵 이후에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스팔트 보수가 일정한 역할을 하다가 조국 사태가 있으면서 대연합이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보수 세력이 있고 중도 세력이 있고 대연합하면서 간신히 윤석열 정권으로 태동을 했는데 그 후에 우여곡절을 겪다가 한동훈이 등장했기 때문에 세 그룹이 같이 있다고 봐야 되겠죠.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그룹이 있는데 한동훈 그룹은 제가 볼 때는 이미지나 개인기나 이런 건 좋은데 어떤 시대적 과제를 책임질 만한 비전과 안목을 갖고 있는가는 좀 미지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국민의힘이라는 전통 보수가 있는데 전통 보수는 사실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왔던 집단이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상황을 맞이했던 집단이고 배경에 굉장히 낙후한 아스팔트 보수가 있는 거고, 그렇게 보면 보수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는 않은 거예요.

그러니 두 가지를 해야죠. 하나는 영웅 대박론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비스마르크나 케네디와 같은 걸출한 리더가 등장해서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에너지를 쭉 끌어모아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맞는 어떤 세력이 등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역사는 사실 세력이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50대 전문가 그룹이 한동훈을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걸 개척해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비전과 전망, 새로운 시대를 책임지는 어떤 집단과 리더가 결합돼 이 세력의 공백기에 어떤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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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대표는 1983년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으나 입학 후 학생운동을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다음 해 서울대 국사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학 학생회장을 지내며 NL운동권으로 활동했으나 이후 전향했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주로 자신과 같은 86세대 운동권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해왔다. 

김유진 이사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의 최전선에서 7년간 몸담았다. 졸업 후에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에서 20년 간 일했고, 국회의원 보좌관 경험도 쌓았다. 운동권과 멀어진 후에는 수학 선생님으로 일했고, 최근 시민단체 ‘길’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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