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1월 21일 밤 10시 42분경 서해 동창리 시험장에서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1월 2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지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며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사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1998년 8월 첫 실패를 시작으로 ‘7전8기’ 끝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외부에서 훔치거나 얻은 기술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우주발사체와 정찰위성 발사는 구소련에서 시작해 푸틴의 러시아에서 끝맺은 것이다.
북한은 1998년 8월 인공위성 발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북한은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 정보당국은 물론 세계 각국도 실패로 판정했다. 두 번째 발사는 2009년 4월 ‘광명성 2호’를 쏘았다. 이때는 한미는 물론 러시아 당국마저 “실패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둘 다 인공위성이 지구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세 번째 2012년 4월부터 북한은 평안북도 동창리 소재 서해 시험장에서 발사를 했다. 우주발사체는 발사 135초 만에 백령도 부근 상공에서 폭발했다. 이때는 북한도 속일 수 없음을 깨닫고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네 번째는 2012년 12월이었다.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 당시 북한이 서해 먼 바다에 떨어뜨렸던 우주발사체 ‘은하 3호’의 잔해를 우리 해군 구축함이 건져냈다. 이때도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쏘아올린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위성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몇 년 간의 공백을 거쳐 2016년 2월 쏘아 올린 ‘광명성 4호’는 북한 측은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발사한 지 나흘 뒤부터는 신호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때까지 북한이 쏘아 올린 우주발사체는 노동미사일과 스커드 사거리 연장형(ER)의 기술을 응용해 만든 ‘은하 3호’였다. 이것은 북한이 2006년 7월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란도 ‘은하 3호’와 동일한 ‘시모르그 로켓’을 사용해 2016년 4월과 2020년 2월 저궤도 위성 발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처럼 기술 부족이 역력했던 북한이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3월이다. 당시 동창리 시험장에서 ‘백두산 엔진’ 연소 시험을 실시한 뒤 김정은은 이를 ‘318 혁명’이라 불렀다. 두 달 뒤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같은 해 11월 29일까지 북한은 ‘화성-12형’을 연거푸 발사한 것은 물론 더 큰 ‘화성-14형’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수준인 ‘화성-15형’ 시험발사까지 성공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가 만났고, 이후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한은 한동안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미북 간의 대화가 끝난 뒤인 2019년 12월 북한은 동창리 시험장에서 새 로켓엔진 연소시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 북한이 평양에서 개최한 ‘자위 2021’에 ‘화성포-17형’이 등장했다. ‘화성포-17형’ 시험발사는 2022년 2월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화성포-17형’을 쏘면서 종종 ‘정찰위성 시험발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다 올해 5월과 8월에는 ‘화성포-17형’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우주발사체 형태의 로켓을 쏘며 ‘군사정찰위성 시험발사’라고 발표했다. 올해 쏜 군사정찰위성 탑재 우주발사체는 단 분리 실패, 엔진 오작동 등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21일 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 1998년 8월부터 위성 발사
이 기록에서 주의해서 볼 대목은 2017년 3월부터다. 이전에는 수십 년도 더 된 구형 미사일 엔진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로켓으로 위성 발사를 시험했던 북한이 이때부터는 제대로 된 대형 로켓 엔진을 장착한 중장거리 미사일과 우주 발사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유엔과 해외 군사전문가들은 그 기술의 원천으로 우크라이나 소재 업체를 꼽고 있다. 북한이 구소련 ICBM용 로켓 엔진 기술을 얻었다는 것이다.
2017년 8월 영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IISS)의 마이클 엘먼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3월 로켓 엔진 ‘백두산’의 연소 시험을 한지 불과 다섯 달 만에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을 두고 “북한이 어디선가 로켓 기술을 얻거나 훔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유즈마쉬 로켓 공장을 지목했다. 이곳은 냉전 시절 구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개발·생산하던 업체다. 엘먼 선임연구원은 북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1단 로켓 엔진이 유즈마쉬가 과거 ICBM용으로 개발한 RD-250 로켓 엔진과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유즈마쉬 측은 자사의 ICBM 관련 기술이 북한 손에 넘어갔다는 주장을 반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군사전문가들의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조차 “북한 신형 탄도미사일에 구소련 기술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연례보고서를 내놨다.
2018년 3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북한 ICBM ‘화성-14형’과 IRBM ‘화성-12형’에 장착했던 고성능 엑체 로켓은 전체적인 생김새와 구조 등이 구소련이 만들었던 ‘RD-250’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대북제재 문제를 다루는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도 같은 의혹에 주목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 한 곳이 “북한 탄도미사일의 로켓 엔진이 ‘RD-250’에서 파생됐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러시아군 고위관계자가 “설계도와 기술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2년 안에 새로 로켓 엔진을 개발하거나 현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크라이나 기술자와 북한의 협력은 지난 수 년 동안 계속됐다”는 주장을 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은 러시아 측에 “당신네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용 가능한 RD-250 엔진은 과거 소련에 모두 넘겼고, 1991년 생산을 종료했고 1994년 생산라인을 해체했다”면서 “유즈노예와 유즈마슈 공장은 북한과 거래를 시도하거나 계약 또는 관계를 맺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엔진 설계나 생산 또는 미사일 개발이나 부품에 관한 정보는 모두 특수한 보안시설이 갖춰진 건물에 보관돼 있다”고 유엔 안보리 측에 해명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북한 로켓 엔진에 별도의 부품이 사용됐지만 추진체가 동일한 부품이 사용됐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은 물론 우주발사체에도 RD-250 엔진을 사용했다는 분석은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6월 씨어도어 포스톨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과학·기술·국가안보정책 명예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이 RD-250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스톨 교수는 1단 로켓 발사 당시 2개의 분사구에서 뿜어 나온 연기의 길이와 색깔을 볼 때 RD-250 개량형을 사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이 엔진을 이미 화성-15형 등 ICBM에 사용하고 있어 이를 위성운반 로켓에 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2017년 8월 우크라이나 안보 당국이 CNN에 제공한 영상에 중요한 단서가 있다. 북한 남성 3명이 유즈마쉬 내부에서 로켓 설계도를 몰래 촬영하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2011년 7월 27일 촬영한 것이다. 이들은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북한 남성들이 훔친 기밀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이후로도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한 북한 국적자의 간첩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결국 2016년 북한 국적자 입국을 금지했다. 징역을 살던 북한 남성들은 2018년 9월 출소해 귀국했다. 이들의 귀국 때 평양 순안공항에 김정은이 직접 마중 나왔다는 ‘설’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이들을 통해 RD-250 기술을 훔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북한 로켓 기술은 2017년 4월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발사만 하면 실패했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오바마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미사일 발사 이전 단계에서 방해·교란 공작을 펼치는 것)’ 작전을 수행한 탓이었다. 이 작전은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단됐다. 그와 동시에 북한의 로켓 엔진 발전이 급속히 발전했다.
정보전문가 “北 정찰위성, 해상도 낮다고 해도 위협될 것”
이후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잠잠하던 북한은 지난해 3월 ‘화성-17형’이라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로켓의 덩치는 더 커졌고, 그만큼 탑재 능력도 향상된 것으로 한미일 정보당국은 분석했다. 같은 해 12월 북한은 “2023년 4월까지 군사정찰위성 1호를 발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들어 북한은 5월과 8월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쏘았지만 실패했다. 북한이 밝힌 실패 원인은 단 분리 과정과 위성 궤도 안착 단계의 오류였다. 한미일 당국은 전반적으로 정밀유도 기술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 2차 발사 실패 후 89일 만에 쏜 위성이 궤도에 안착했다. 그 사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을 찾아 김정은을 만났고, 이어 러중 정상회담이 있었다.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의 우주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도 지난 11월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러시아가 북한에 발사체 기술을 지원한 정황이 있다”면서 “러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설계도 및 1·2차 발사체 데이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러시아가 그 분석 결과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1차와 2차 실패 때와 같은 ‘백두산’ 로켓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발사에 성공한 데는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북한의 ‘1호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은 과거 구소련 ICBM 기술 탈취를 시작으로 마무리는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위성의 궤도 안착에 필요한 정밀유도기술과 3단 추진체 분리 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정찰위성까지 제공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설령 러시아가 북한에 정찰위성을 줬다고 해도 오래된 연식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냉전 시절 미국에 맞서 정찰위성을 대량으로 쏘아 올렸다. 핵 전지를 장착한 ‘코스모스 위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 정찰위성 기술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정부 재정 악화와 이로 인한 기술인력 이탈이 가장 큰 문제였다.
푸틴이 집권한 뒤인 2004년 9월 다시 정찰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필름 카메라 방식이었다. 러시아는 1960년대 사용했던 ‘제니트’처럼 구형 위성을 줬을 수도 있다. 이 위성에 장착한 필름카메라의 해상도는 10~15m로 추정된다. 1960년대 말부터 쏘아 올린 ‘제니트’의 해상도는 2m까지 좋아졌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 해상도로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정보전문가는 “북한은 우리나라나 미국과는 달리 ‘정밀타격’이 아니라 ‘지역타격’을 목표로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며 “북한이 정찰위성을 사용하려는 목적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실시간으로 적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고정 표적이나 주요 시설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상도가 10m만 돼도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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