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대여소가 부른 정치 실종
야대여소가 부른 정치 실종
  •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24.01.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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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임기가 끝날 때 즈음이면 항상 이번 국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인터뷰가 많다. 이런 인터뷰의 경우 한번 녹화했다가 계속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매번 “이번 국회는 최악의 국회였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국회는 매번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번 21대 국회 역시 당연히 그 기록을 경신할 것이다. 이번 국회는 정치를 실종시킨 헌정사상 최초의 국회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는 스스로가 자신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오른쪽)가 2020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오른쪽)가 2020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이번 국회가 정치를 실종시킨 이유는 코로나와 탄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국가적 차원의 위기, 아니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도래하면 국기 결집 효과가 발생한다. 국기 결집 효과란, 위기를 느낀 국민들이 정권에 의지하려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국민들이 일치단결해서 정권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쟁과 거의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한 국민들은 정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의지하기 위해 여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이 치러졌으니, 당연히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국기결집 효과로, 당시 총선에서 나타난 특이점도 설명할 수 있다. 

21대 총선 투표율은 역대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높았는데 일반적으로 높은 투표율은 정권에 불리함을 뜻한다. 높은 투표율은 대부분 ‘분노 투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는 정권을 칭찬하고자 투표장에 가지는 않는다. 

칭찬을 굳이 표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투표장으로 몰려간다. 그래서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한 것이다. 그런데 21대 총선은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런 ‘특이한 현상’은 당시 국민들이 느꼈던 불안에서 기인하는 국기결집 효과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국기결집 효과만 있었더라도, 여당 승리는 당연시될 수 있었을 텐데, 여기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충격까지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니, 여당의 승리는 더 당연시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당시의 촛불 시위에는 다수의 보수적 유권자들도 동참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자신의 과거 정치 행위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거나 후회하기보다는 합리화시킨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21대 총선 당시까지만 해도 보수층이 보수 정당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상황이 이런데, 그렇다면 어떻게 정권 교체가 됐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보수의 적자라고 볼 수 없다. 만일 윤 대통령이 보수의 적자였다면, 정권 교체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자신의 과거 정치 행위를 합리화시킨다는 차원에서, 보수 적자 대선 후보를 쉽게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국정농단사건 수사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점 때문에,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보수층은, 자신의 과거 정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게 하는 윤석열 후보를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법안 단독 처리로 정치 실종

하지만, 21대 총선에서는, 박 전 대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황교안 전 총리가 미래통합당 대표를 맡고 있었으니, 보수 유권자들이 보수 정당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종합적으로 얽혀, 21대 국회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전체 253개 지역구에서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획득한 득표수의 총합은 7% 차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이 나름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렇듯 7%의 차가 두 배 가까운 의석 차를 초래했는데, 이는 그만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간신히 승리한 지역이 많았음을 뜻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은 단독으로 처리했다. 바로 이 부분이 21대 국회에서 정치를 사라지게 한 이유다. 

정치란 타협의 기술이다. 정치가 타협의 기술인 이유는, 정치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제도라는 이름의 ‘링’ 위에 올려놓고, 대신 싸워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룰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의 투쟁처럼, 정치가 룰 없는 무한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룰을 존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는,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21대 국회는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단지 타도의 대상에 불과했다. 21대 국회에서 빈번했던, 윤석열 정권 장관들에 대한 해임 건의안, 탄핵 소추는 상대를 적으로 생각한다는 잠재 의식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 통과와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 건의안 통과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다.

‘최초’여서는 안 될 일들이 마구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21대 국회에서 정치가 실종됐음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실종된 정치는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21대 국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고, 이들의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정치적, 이념적으로 양분화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기결집 효과와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극단적인 의석 쏠림 현상을 초래했고, 이런 상황이 오늘날의 정치 실종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2대 국회에서 누가 이기든,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의석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현명한 선택만이, ‘최악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22대 총선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21대 국회와 같은 극단적인 의석 쏠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21대 총선 당시와 같은 ‘비상 상황’이 아니라, ‘일반적 환경’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고, 우리 국민의 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민도를 가진 유권자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당의 의석수의 차가 크지 않으면, 양당은 싫어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집 나간 정치가 다시금 집에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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