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의 안정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노사분규건수와 근로손실일수이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발생한 노사분규건수와 근로손실일수 자료를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노사분규 발생 건수의 정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사용자 단체)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노조 측이 작업 거부 등에 돌입함으로써 1일 근로시간(8시간) 이상 작업이 안 된 경우 노사분규 발생사업으로 본다. 근로손실일수란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지표로, 1일 근로시간 이상 조업 중단된 노사분규발생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출(1일 단위로 파악하여 합산)하며,
근로손실일수 = (파업기간 중 파업참가자수 x 파업시간) / 8시간
과 같이 계산한다. <표 1>을 보면 노사분규건수에는 연도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근인 2020∼2022년 3년간의 노사분규건수를 살펴보자. 2020년 105건이었으나 2021년과 2022년 각각 119건, 132건으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건수를 규모별로, 그리고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살펴보면 <표 2>를 얻을 수 있다. 3년간 노사분규가 상반기 108건, 하반기 248건으로 하반기 발생 건수가 상반기보다 2.3배 많으며, 1000인 이상의 사업체에서 발생하는 분규가 규모별에서는 가장 많다.
실제로 노사분쟁에서 노사분규건수보다는 근로손실일수를 더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50인 노조의 파업 100건보다 1만인 노조의 파업 1건이 위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표 1>에서 살펴보면, 근로손실일수는 2016년 가장 많고 차츰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근로손실일수 추이를 눈으로 식별하기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림 1>과 같다.
2016년 높은 근로손실일수는 철도노조, 현대·기아자동차 노조의 장기 파업 등 영향으로 200만 일이 넘었으나, 그 후로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차츰 줄어들고 있으며, 작년에는 34.3만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노조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가? 나라별로 비교하려면 총근로자의 수가 다르므로, 임금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를 살펴봐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12∼2021년 한국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38.5일로 일본(0.2일), 독일(8.3일), 미국(8.8일), 영국(12.7일) 등의 주요국에 비해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가까이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근로손실일수가 무려 190배 정도이다. <그림 2>는 이를 비교하는 그래프이다.
근로손실일수 일본의 190배
노동조합 조직률은 (조합원수/임금근로자수) x 100(%)로 계산하는 수치로,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노조에 가입해 있는가를 나타내 준다. 이 수치가 높으면 노조가 고용주와의 협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임금근로자 중 노조에 가입해 있는 근로자는 14.2%로, 2013년 이후 빠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의 변화를 보면, 미국은 12.9%에서 10.3%로 2.6% 하락했고, 일본은 21.5%에서 16.8%로, 독일은 24.6%에서 16.3%로 8.3%나 떨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유별나게 노조 조직률이 높은 지역은 북유럽국가들이다. 2019년 기준 핀란드 58.8%, 덴마크 67.0%, 노르웨이 50.4%, 스웨덴 65.2%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파업 방식은 산별 협약 체결을 위한 소극적인 노무 제공 거부다.
한국처럼 오직 자신들만 적용받는 임금이나 단체협약을 위해 연례행사처럼 하는 파업이 아니고 10년에 1∼2번 정도 하는 파업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근로손실일수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표 3>은 우리나라의 연도별 노조 조직률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5년 즉,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 노조원 수와 조직률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보면 조직률은 14.2%로 2017년에 비해 그 증가 비율은 38%나 된다. 조합원수로 보면 196만 명에서 293만 명으로 거의 100만 명이 늘어났다. 참고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상근 근로자수는 대략 20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노조 가입자 293만 명 중에서 소속별로 보면 한국노총 조합원이 123만 명(42.0%), 민주노총 조합원은 121만 명(41.3%), 그리고 기타 독립 노조가 49만 명(16.7%)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많이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연도인 2016년 말 65만 명 정도에 비해 87%나 증가해 2021년 121만 명이 되었다. 한국노총도 이 기간에 84만 명에서 124만 명으로 늘어나 47%가량 증가했다.
문 정부 5년 동안 노조원수가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가운데, 증가분의 절반 이상(58.3%)이 민주노총으로 쏠린 것이다. 노조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는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으나, 한국에서만 조직률이 최근에 급증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친화적 정책을 편 때문이라는 해석 외에는 달리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문 정부 5년 동안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노조원 증가는 대부분 공공부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의 노조 조직률이 높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민간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9.0%에서 11.2%로 조금 늘어난 데 비해, 공공부문은 63.2%에서 70.0%로 대폭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민간부문의 경우 직원 100명 중 11명 정도가 노조원이라면, 공공부문(공무원, 공사, 공단, 기금 등 공공기관)의 경우 100명 중 70명이 노조원이다. 공무원의 경우 이 비율은 75.3%에 이른다.
이렇게 공공부문 노조 조직률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전 정부가 주로 공공부문 노조에 유리한 정책을 펼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했고, 이에 따라 인천공항뿐 아니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다수가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노조 가입을 서둘렀으며, 상당수가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노사관계 불안정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도 높지만 노사관계 성격의 질도 나쁘다.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은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순위를 발표한다. 141개국을 대상으로 4대 분야, 12개 부문, 103개 항목을 평가하는데, 2019년 조사가 최신이다.
12개 부문 중에 한국은 ICT(정보통신기술) 보급과 거시경제 안정성은 각각 1위, 혁신역량과 인프라(해상운송 연결성, 전력접근성 등)도 각각 6위로 우수했으나, 노동시장은 51위로 저조했다.
노동시장 평가의 세부 내용을 보면 내부 노동력의 이동성(internal labor mobility) 70위, 임금 결정의 유연성 84위, 고용 및 해고 관행 102위, 정리해고비용 116위,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협력이 130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이 10위권의 경제대국임을 감안한다면 노조와 노사관계는 망국병에 걸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 IMD 세계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국 64개국 중에서 28위이다. 그 평가 기준은 4대 분야(경제적 성과(14위), 정부 효율(38위), 기업 효율(33위), 인프라(16위))와 각 분야에서 5개 부문으로 총 20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정부 효율과 기업 효율을 높여야 세계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20개 부문 중에서 기업효율 분야에 들어 있는 노동시장을 보면 한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28 → 37 → 42 → 39위로 중하위권에 속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3대 분야(노동, 연금, 교육)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데, 모두 시급한 개혁 분야이지만 우선적으로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을 키우려면 노동 개혁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근로손실일수가 한국에서 유난히 많은 것은 1000명 이상인 대규모 사업장의 민주노총 등 강성노조 파업 때문이다.
과도한 근로손실일수가 주는 가장 직접적인 폐해는 근로자 파업의 두려움으로 인해 외국기업이 국내로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국내 기업마저 해외 공장으로 나가고 있다. 즉,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때 신경 쓰는 것들이 자금 조달, 고금리, 인재 확보, 세금 등이 있으나 가장 신경을 쓰는 문제가 바로 ‘노조 리스크’이다.
투자자금 순유출액은 내국인 해외 직접투자(ODI)에서 외국인 국내 직접투자(FDI)를 뺀 값이다. 이 값이 클수록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보다 해외로 빠져나간 국내 기업 투자액이 많다는 뜻이다. 그만큼 한국에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림 3>을 보면, 2000년과 2005년에는 해외 순유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해 국내로 자금이 순유입되고 있었으나, 최근 들어 해외 순유출 투자액이 플러스로 급증하고 있다. 2020년에는 458.4억 달러, 2021년에는 580.7억 달러로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정권별로 연평균 투자자금 순유출액은 노태우(2200만 달러), 김영삼(15억2400만 달러), 김대중(-23억2300만 달러), 노무현(26억9800만 달러) 정부 때만 하더라고 큰 진폭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명박(184억6200억 달러), 박근혜(203억400만 달러), 문재인(442억3200만 달러) 정부에서 급증하고 있다. 올해 1∼2분기 투자자금 순유출액은 380억76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속도라면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유출액을 기록했던 2022년(580억6800억 달러)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순유출 투자액이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해외 사업장을 국내로 되돌리려는 유턴 기업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외진출기업복귀법이 시행된 2014년부터 2022년 9월까지 국내로 복귀한 유턴 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121곳에 불과하고, 이 중 대기업은 단지 2곳뿐이다. 이렇게 유턴 기업이 적은 이유 중 하나로 ‘노조 리스크’를 꼽는 기업인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정작 노조가 필요한 열악한 사업장(민간부문 100인 미만 사업장)에는 노조가 없거나, <표 2>를 보면 2022년에 1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의 노사분규는 39건으로 적다.
대부분의 노사분규가 100인 이상 사업장이나 공공노조에서 발생한다. 열악한 사업장과 비교도 안 되게 안정적인 공공부문에는 노조 조직률이 급상승하고 있는데, 이들이 주도하는 노동운동은 원래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근 노사분규에서 나온 구호들인 ‘윤석열 정부 퇴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사 반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무관한 정치적 구호들이다. 이러한 노사분규를 주도하는 민주노총 등의 기존 노조는 ‘정치 파업 노조’, ‘노동 귀족’, ‘노동 기득권 세력’ 등으로 지칭되고 있으며, 정부의 노동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강성노조와 정부의 대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노동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 국면에서 노동개혁의 투사로 불리는 두 사람이 생각난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전 총리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해 공공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굴복시켰다.
주로 정치 구호 외치는 강성 노조
레이건 대통령은 불법적인 항공관제사 파업에 대해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통보했고, 이에 저항하는 관제사 전원(1만 명 이상)을 실제로 해고했고, 결국 파업을 종식시켰다. ‘철의 여인(The Iron Lady)’으로 불렸던 대처 총리는 당시 사양산업이었던 국영 탄광의 폐업에 반대한 전국광산노조 광부들을 전원 해고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해 영국병을 치유했다.
올 하반기에는 소위 ‘노란봉투법’도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 법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말하는 것으로, 기업이 노조의 파업으로 손해를 봐도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단, 폭력 등의 불법행위로 기업이 손해를 봤을 때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이 법은 근로자의 민형사상 면책 범위와 손해배상청구 제한 범위를 대폭 넓히고 노조 교섭 대상인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노란봉투법’이란 말은 2013년 쌍용자동차에서 파업이 있었을 당시, 경찰이 노조 관계자들에게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서 47억 원 배상 판결을 받자, 노조원들에게 배상금에 보태쓰라는 ‘노란봉투’ 보내기 운동이 벌어졌던 데서 비롯되어, 이후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노조의 쟁의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포괄해 작명한 말이다.
노동계에서는 작년 7월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하이트진로 사태에서 사측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서자 노란봉투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산업 현장이 1년 내내 노사분규에 시달리고, 국내 대기업은 해외로 떠나며, 외국 기업은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엄청나게 늘어나며 세를 불렸던 노조와 그 조합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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