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7조 원대 수상한 외환거래’ 北 개입됐나
[심층분석] ‘7조 원대 수상한 외환거래’ 北 개입됐나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2.08.2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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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우리·KB국민·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일어난 이상 외환거래를 두고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7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암호화폐 거래소와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해외로 빠져 나갔는데도 은행들이 이를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일단 암호화폐의 ‘김치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 거래가보다 평균 30% 이상 높은 현상)’을 노린 차익 거래 및 수익을 가져간 환치기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국가정보원 등 대공수사 당국은 불법 대북송금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반면 검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거액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중국과 일본, 홍콩 등에서의 첩보를 수집하는 대로 검찰 수사 방향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상 외환거래가 처음 보고된 것은 지난 6월 23일이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서울 강북 소재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1년 동안 해당 지점에서 8000억 원 규모의 외환거래가 있었는데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우리은행 측의 보고에 따른 것이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27일에는 신한은행의 한 지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 또한 신한은행 측이 금감원에 보고하면서 이뤄진 조사였다. 신한은행에서 발견한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1조3000억대로 전해졌다.

두 은행의 지점에서 2조1000억원대 외환거래가 일어난 사실을 확인한 은행권은 각 은행 별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이상 외환거래를 발견하면 금감원에 보고하기로 했다.

신한, 우리, KB국민, 하나,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을 통해 중국 등지로 송금된 수상한 자금은 무려 7조원에 이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신한, 우리, KB국민, 하나,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을 통해 중국 등지로 송금된 수상한 자금은 무려 7조원에 이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6월 우리은행, 신한은행에서 보고

그런데 한 달 뒤인 7월 24일 이와 비슷한 이상 외환거래가 하나은행에서도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거래 규모는 1조 원대였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제로 일어난 이상 외환거래 규모가 4조 원을 넘었다.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5월 3일부터 올해 6월 9일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총 1조6000억 원 상당의 외화 송금이 있었다. 송금한 업체 수는 10개였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해 2월 23일부터 올해 7월 4일까지 11개 지점에서 15개 업체가 1238회에 걸쳐 2조5000억 원 상당의 외화를 해외로 송금했다. 두 은행에서 빠져 나간 외화는 당초 금감원에 신고한 액수의 2배인 4조1000억 원이나 됐다.

같은 날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도 자체 조사 결과 이상 외환거래를 발견했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이상 외환거래 규모가 1조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5대 은행에서 일어난 이상 외환거래를 찾아낸 결과 거래 규모는 총 7조 원(약 53억7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거래에 연루된 업체는 44곳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을 통해 빠져 나간 외화의 출처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였다.

그 중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는 홍콩과 중국으로 25억 달러(약 3조2500억원), 일본 4억 달러(약 5200억 원), 미국 2억 달러(약 2600억 원)가 송금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금 유통 경로를 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국내 무역업체 등으로 자금을 이체하면 해당 업체가 여러 명의 개인과 또 다른 여러 무역업체로 송금한다. 이들은 다시 최초로 자금을 이체한 무역업체로 받은 돈을 모두 송금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 거래를 거친 뒤 무역업체는 해당 자금을 “수출대금을 결제한다”며 해외로 송금했다. 이렇게 돈이 흘러간 곳은 홍콩이나 일본, 미국의 일반 기업들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7월 13일 채널A는 “이상 외환거래에 연루된 국내 기업 가운데 한 곳을 찾아가보니 실은 유령업체였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우리은행 지점을 통해 4000억 원을 금괴 등의 수입대금으로 해외에 송금한 업체 A사를 찾았다.

등기부 등본에 있는 A사 주소는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등본 상으로 A사는 지난해 4월 부산 동래구에서 설립했다. 올해 4월 주소를 옮겼다. 방송이 해당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집 주인은 “무슨 회사냐? 그런 거 전혀 모른다. 저희가 이사 온 지가 2년 됐다”며 황당해했다.

방송은 이어 등기부 등본에 있는 대표이사의 집 주소를 찾아가 봤다. 대구 달서구의 한 건물로 돼 있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유흥가에 있는 작은 상가 건물이었다. 대표이사의 집이라는 곳은 과거 실내 야구와 사격 게임장이었지만 지난해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았다고 주변 상인들이 설명했다.

이 A사의 자본금은 1억 원이었다. 그런데 이 업체가 “금괴 등을 사들이기 위한 대금”이라고 하면서 4000억 원을 송금하는 것을 우리은행은 별다른 확인도 않고 허용해 줬다는 것이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연합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연합

자금 출처 대부분 암호화폐 거래소 홍콩·중국·일본·미국으로 흘러가

지난 7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이런 이상 외환거래가 5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SC제일은행, IBK기업은행 등 다른 은행들에서도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금융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금감원은 해당 건에 대한 정보를 ‘수사 참고자료’로 만들어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에 넘겼다. 지난 2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검찰은 해당 자료를 분석 중이다. 이후로도 이상 외환거래 관련 자료를 주기적으로 받아 분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이상 외환거래 자금이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 거래 이익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만약 검찰이 예상하는 대로 암호화폐 시세 차익을 자국으로 가져간 것이라면 암호화폐가 국내외를 오간 흐름, 암호화폐를 매도해 실현한 차익의 거래 내역 등을 확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계좌 추적과 암호화폐 거래소 압수수색 등을 벌여야 한다.

금감원 등에서는 해당 거래 가운데 정상적인 거래 자금도 일부 포함돼 있다면서 검찰이 범죄 혐의점을 의심할 만한 거래부터 추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후에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붙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송금을 받은 업체들이 중국 등 해외에 있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다보니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송금을 받은 중국과 홍콩 업체들도 대부분 유령업체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공 용의점 등에 대한 분석은 검찰이 아직 하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그런데 지난 7월 26일 이데일리는 “국가정보원이 이상 외환거래와 관련해 NH농협은행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국정원이 최근 몇 주 동안 NH농협은행의 외환거래 담당자와 접촉해 대공 혐의점 여부를 들여다 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NH농협은행 측은 “국정원 내사와 관련해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신문은 “국정원 내사 결과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 전망”이라고 풀이했다.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환치기 수준이 아니라 중국계 암호화폐 세력에 의해 국부(國富)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은행권이 자금세탁은 물론 국부유출 창구로 활용됐다는 비난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신문은 “(이상 외환거래와) 중국계 자본과의 연루가 최종 확인될 경우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어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은행권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여기에 대공 혐의점 내사 결과에 따라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4일에는 중앙일보가 “국정원이 이상 외환거래 내사에 착수하면서 ‘대북송금설’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를 피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암호화폐를 훔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것 역시 근거로 꼽힌다”면서 이 같이 전했다.

신문은 이어 “다만 국정원 조사를 바로 대북송금설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페이퍼 컴퍼니 등 해외 기업의 실체와 해당 자금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을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이 현지 조사에 착수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튿날인 5일에는 시장경제신문이 “이번 이상 외환거래의 80% 가량이 중화권으로 갔고 (거래 관련) 업체의 주인이 조선족인 정황이 나온 데다 지난달 국정원장과 법무부 장관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세계은행 등에 출장을 다녀온 것을 두고 안팎으로 무성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공은 검찰로…국정원까지 내사 나서자 ‘대북송금설’ 솔솔

이런 가운데 한 정보소식통은 “이번 이상 외환거래를 둘러싼 정황을 두고 과거 대북송금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때와 같은 단순 외환거래가 아닐 수 있다”면서 국정원 등에서는 북한이 낀 ‘삼각 대북송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과 중국, 제3국이 연계된 ‘삼자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에 드러난 이상 외환거래 또한 이런 ‘삼자 거래’와 관련된 돈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북한의 이동통신회사 ‘고려링크’를 하나의 예로 들었다.

고려링크는 이집트 이동통신업체 ‘오라스콤’이 2008년 1월 설립한 회사다. 오라스콤이 75%, 북한 체신성이 25%의 지분을 가졌다. 고려링크는 3G통신으로 시작해 북한에서 가입자를 늘려갔다.

2010년 12만 명이던 가입자는 2017년 말 기준 35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오라스콤이 고려링크를 통해 북한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2015년 말까지 약 6억5300만 달러(약 8480억 원)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도 연간 수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고려링크가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본 김정은은 욕심을 냈다. 북한 당국은 2013년 ‘강성네트’를 시작으로 ‘별’ 등 독자적인 이동통신업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고려링크 가입자들에게 강성네트나 별로 이동 가입할 것을 종용했다.

고려링크 가입자가 크게 줄어들자 오라스콤은 2017년 11월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수익금을 본국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2011년부터 OECD의 FATF(자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와 미 재무부의 FinCEN(금융범죄단속반) 등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를 통해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 자금 거래”를 막아버리면서 송금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여기다 북한 당국이 외화 반출을 막은 것이다.

오라스콤은 이후 여러 차례의 노력 끝에 2018년 12월 유엔 안보리로부터 “고려링크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하지만 대북제재로 달러가 부족해진 북한 당국의 방해로 수익금 반출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결국 2020년 11월 북한에서의 수익금 반출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당시 조선일보는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이 지난 10월 홍진욱 이집트 주재대사와 만나 ‘6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는데도 북한 당국의 반대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며 ‘사실상 반출을 포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이런 오라스콤의 수익금을 해외로 반출하지 않는 대신 모종의 거래를 통해 한국과 중국을 거쳐 수익금의 일부를 이집트 등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거래가 한두 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정보기관에서 나온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2020년 11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오라스콤처럼 대규모 투자를 한 뒤 수익은 물론 투자금조차 회수하지 못한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2012년 북한 광산에 3700만 달러(약 480억 원)를 투자했다가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중국 대기업 ‘시양그룹’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 2010년 압록강 하구에 있는 황금평과 위화도에 거액을 투자한 중국 대기업들 또한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금융감독 당국 경고에도 이상 외환거래 묵인한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

정보소식통이 전한 이야기는 현재 검찰과 국정원 등이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조 단위의 외화가 해외로 흘러나간 것을 묵인한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크다.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은 신한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의 외환 담당 부서장들을 대상으로 화상회의를 열어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거래에 대해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김치 프리미엄과 관련해 하나은행에서 2018년부터 2021년 초까지 3000억 원 규모의 이상 외환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지난해 3월 파악해 검사를 진행한 데 따른 경고였다. 금감원 측에 따르면 해당 이상 외환거래는 송금 받는 쪽이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였다.

당시 금감원은 5대 은행 외환 담당부서장에게 외환거래법상 확인 의무, 자금세탁방지법상 고객확인 제도, 암호화폐 거래소의 안전한 자금관리 등을 확인하는 ‘고객확인제도(EDD)’를 철저히 준수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1년 남짓 지난 뒤 5대 시중은행에서 몇 배 이상의 거액이 해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비정상적인 외환거래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한편 법조계와 은행권 안팎에서는 지난해 3월 금감원이 확인한 하나은행의 이상 외환거래 사례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나 미국, 홍콩 등과 달리 중국의 경우 공산당이 눈감아주지 않으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 없는데 이번 7조 원대 외환을 송금 받은 중국업체 다수가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게 이상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와 은행권 안팎에서는 북한이 연루돼 있는 불법자금거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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