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덕분에 재주를 부릴 수 있었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덕분에 재주를 부릴 수 있었다
  • 황 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승인 2021.11.1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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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엄청난 현상이다. ‘오징어 게임’ 말이다. 정작 한국인들에게도 잊혀져가고 있던 심지어 젊은 사람들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놀이들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의외라면 의외다.

다양한 민족이나 지역의 소재들에 할리우드라는 글로벌 문법을 결합한 ‘글로컬리즘(glocalism)’의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글로컬리즘이란 용어에는 자본이나 기술적 우위를 점거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의 새로운 형태의 문화제국주의 지배 수단이라는 비판적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기생충·BTS 같은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시장을 강타하고 있다는 뿌듯함 뒤에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글로벌기업들이 독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오징어게임 역시 이런 비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다. ‘재주는 오징어게임이 부리고 넷플릭스만 배불린다’는 식이다. 이뿐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하청기지’ ‘한국법을 무시한 배짱 영업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소비자 후생까지 저해하는 사회악’ 같은 비난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모 국회의원은 단돈 220억 투자해 1166배인 28조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마치 화천대유 대박처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넷플릭스의 시가총액 변화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크게 과장된 주장이다.

그렇지만 미디어 산업계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이것과 거리가 있다. 오징어게임을 두고 쏟아져나오는 비판들은 민족 혹은 애국 감성에 호소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보려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노림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겨가면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은 구글이나 망사용료 지급에 매우 소극적인 넷플릭스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국회에서는 이런 비판들과 섞여 넷플릭스가 한국 영상콘텐츠 시장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다는 주장들을 서슴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구글의 세금 문제나 넷플릭스의 망사용료는 오징어게임 수익분배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미디어 플랫폼사업자의 영상콘텐츠 투자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7년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 진출한 것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수치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 넷플릭스 유료가입자는 300만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의 전체 가입자가 2억 명을 조금 상회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큰 비중이 아니다.

유튜브·넷플렉스 한국시장 성공이 의미하는 것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의도는 다양한 지역의 소재들을 할리우드식 글로벌 영상문법을 가지고 글로컬리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k-pop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영역에서 나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류 콘텐츠는 저가의 제작비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진출과 함께 최초 투자한 작품이 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영화 ‘옥자’라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킹덤’ ‘미스터 션샤인’을 비롯해 최근에는 ‘스위트 홈’ ‘D.P’ 등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올 하반기에도 ‘고요의 바다’ ‘그날 밤’ ‘헬바운드’ ‘글리치’ 같은 드라마와 ‘서울대작전’ ‘카터’ 같은 영화들도 예정되어 있다. tvn이나 jtbc 같은 인기 채널들의 상당수가 넷플릭스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닐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영상제작사업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상파방송 3사를 비롯해 방송사들의 불공정 외주 갑질은 오랫동안 한국 방송·영상산업의 고질적 병폐가 되어왔다. 제작비 삭감과 지연 지급, 내용간섭 등은 독립제작사들을 사실상 대형 방송사들은 하청업체로 전락시켜버렸다.

그 결과 콘텐츠 질과 경영 상태가 모두 부실해지면서 방송매체 급증에도 영상콘텐츠산업은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렀다. 넷플릭스 한국시장 진출은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1회분 편당 단가 20억 원 이상은 5억 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시장에서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황동혁 감독도 말했던 것처럼 전체 제작비에 10%를 더해 사전에 지급하고 제작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은 한국영상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물론 과감한 투자는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드라마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100억 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넷플릭스의 정교한 콘텐츠 제작 알고리즘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에서 나오는 넷플릭스가 모든 수익을 독식한다는 주장은 영상콘텐츠 산업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징어게임으로 넷플릭스가 획득한 수익은 약 1조 원 정도로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가 오징어게임처럼 대박이 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 넷플릭스에 들어가보면 들어보지도 못한 듣보잡 콘텐츠들도 적지 않다. 또 ‘마르코 폴로’처럼 큰 돈을 들였지만 쪽박을 찬 시리즈들도 있다. 즉, 영상콘텐츠 산업은 고위험 고이익(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인 것이다.

그 이유는 콘텐츠 이용자들의 선호와 제작자들의 판단이 반드시 일치할 수 없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징어게임 같은 성공한 콘텐츠는 좋게 보아 10편에 한 번 정도 심지어 수십 편에 한 번 정도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기회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설사 오징어게임으로 1조 원의 수익을 얻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신 오징어게임에서 거둔 수익을 향후 한국 콘텐츠 시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가 한국 영상콘텐츠 시장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적지 않다.

‘지난 5년간 5조6000억 원의 경제효과와 1만6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넷플릭스 한국 총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영상콘텐츠 제작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 긍정적인 것은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보다 더 많은 5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를 의식한 듯 한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디즈니플러스도 한국 영상콘텐츠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선량한 기업’ 이미지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쩌면 반세기 이상 한국 방송영상산업계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선순환 투자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상파방송, 유료방송, 영화, 인터넷 포털 같은 한국의 플랫폼사업자들은 콘텐츠 투자보다 가입자.이용자를 독점해 콘텐츠 사업자들을 압박하는 갑질 사업자로 군림해왔다.

이처럼 척박한 영상콘텐츠 제작환경에서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들의 국내시장의 진출은 매우 쉬울 수 있다. 더구나 넷플릭스처럼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과 견고하게 연대하면서 한국시장을 점령해나간다면 어쩌면 속수무책일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한다고 국내 미디어사업자들이 OTT 연합군을 만들고, 정치권에서 우리도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어야 낸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솔직히 허망해 보인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OTT 사업자들을 기존 방송사업자와 같은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수구적 태도는 결코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정치권 주장이 기존 사업자들의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수구적 로비와 연관이 있다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사족이지만 영상콘텐츠 산업은 제작자의 창의력을 가치로 하는 산업이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황동혁이라는 감독의 가치가 지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마 황동혁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 지금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 많은 제작비를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있었기 때문에 재주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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