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는 직업인이면 신문을 보는 방식이 대개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무실의 큰 테이블 위에 일본 전국지들(요미우리, 아사히 등 5~6종류)을 늘어놓고 지면을 비교한다. 한 눈에 들어오는 지면들을 보면 그날의 일본 사회의 화제거리, 분위기가 잡힌다.
내가 보기에는 뻔한 문제를 진부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랜 세월 동안 고착된 저들의 관점에서 고른 제목만 봐도 내용을 읽는 수고를 덜게 해준다. 솔직히 잡지 광고 쪽에 눈이 더 간다. 실은 미디어 보도는 정보를 얻는 것보다 일본인들의 관점을 보는 쪽이 흥미롭다.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미중전쟁과 투표 후 아직도 혼란한 미국 대통령 선거-‘미국의 내전’을 전하는 일본 언론을 통해 특별히 주의하지 않아도 세상사를 보는 일본인들의 관점에 마주치게 된다.
도쿄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국제문제전문가나 언론 관계자 등은 대개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후 최악이라고 한다. 양국관계를 측정, 판단하는 기준과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흔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최악’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피곤하니 한국과 엮이지 말자는 주장은 물론이고 차라리 ‘단교하자’ 하는 게 낫다는, 소위 양국관계 리셋을 입에 올리는 이들도 있다.
미중전쟁과 ‘미국의 내전’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 일본 사회의 관점은 일본인들의 세계관, 전략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고 이는 한일관계의 관리에도 도움이 되는 귀중한 데이터를 얻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일본 사회는 올해 미중전쟁이니 ‘미국의 내전’보다 코로나 때문에 일본인들이 두려워하는 거대 지진 혹은 그 이상의 타격을 받았다. 작년 이맘때쯤 중국에서 시작된 폐렴 바이러스 때문에 도쿄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게 될 줄 누가 상상했던가. 팬데믹으로 일본 경제가 멈춰설 것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던가.
그러니 생활인들에게는 미중전쟁이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의 운명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미중전쟁과 ‘미국의 내전’ 상황에 대한 관점과 대응은 중요하다.
일본이 미국은 정확히 못보는 이유, 언론의 자기 검열
일본 언론이 국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흔히 중국이나 미국 등 일본이 쉽게 다루기 어려운 큰 문제들은 가급적 지나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들, 즉 중국과의 센카쿠제도 마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태평양전쟁 중 징용공 문제, 납북 일본인 문제 등을 크게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친일’, ‘반일’이 중요한 기준, 결정적 관점이 된다.
일본 사회 특징의 하나를 담합(談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론의 경우 놓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엄격한 검열, 자기 검열이 작동하고 있는 문제이다. 나이 먹은 일본인들은 흔히 일본이 태평양전쟁 패전 후 연합군 점령 하에서 겪은 엄격한 언론 검열, 통제를 분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일본 언론은 스스로 75년 전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검열 이상의 검열체제인 것이다.
일본 사회, 일본 언론에는 터부가 많다. 특히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터부가 있다. 최근에는 좀 변했지만 중국이나 좌파를 자극하는 것도 터부였다. 그리고 현재 자기 검열의 기준은 글로벌리즘과 PC (political correctness)로 요약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언론의 자기검열을 알고 있다.
언론이 자기검열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아무튼 언론의 자기검열이 이제는 체질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엄격한 자기검열 체질이 언론의 기능을 왜곡시키고 언론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우습게도 언론은 자기검열을 쉽게 정당화한다.
바로 글로벌리즘과 PC 덕분이다. 즉 미중전쟁과 ‘미국의 내전’ 문제에서도 일본 미디어들은 미국의 빅미디어, 빅테크, 미 민주당 등 글로벌리스트들이 설정한 기준을 수용함으로써 즉, 다수 편에 섬으로써 편리하게 넘기고 있다.
언론이 압도적인 다수파를 형성, 스스로가 거대한 오만한 권력이 되면 이미 진실과 팩트는 무시해도 되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전하고 싶은 것만 전한다. 미국의 빅미디어의 못된 것을 배운 것이다. 이번 미국 선거에도 빅미디어, 빅테크의 주장과 선동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우리는 올해 팬데믹 사태를 통해 서구문명의 선진국들의 민낯을 봤다. 복지국가로 알려져 왔던 선진 제국들의 맨 얼굴도 봤다. 글로벌리즘이 초래한 결과가 무엇인지도 봤다. 글로벌리즘이 소련방 해체 후에 대신 나타난 전체주의라는 현실을 봤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미국정치가 얼마나 부패, 망가졌는지 알게 되었다. 트럼프 덕분에 미국의 빅미디어, 빅테크가 얼마나 거대한 권력 집단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미국 정치인들 중에 선출직 정치인들, 리버럴 세력과 그들과 결탁한 관료 등이 파렴치한 권력자, 사악한 독재자, 악당이 된 것을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건국 혁명과 남북전쟁 이래 또다시 혁명과 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있었던 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사실 미국의 환부, 자유민주주의 공화제의 문제가 드러나는 데 너무 시간이 걸렸다. 이는 위기를 정직하게 진단하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체, 본질을 진단하고 이를 사실로 공개하고 대응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모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의 아주 큰 부분이 스스로가 거대 권력이 되어버린 언론에 있다. 예전부터 쿠데타를 성공시키려면 언론, 미디어 장악이 필수적이었는데 지금은 언론이 자유민주체제를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주역이 되었다. 권력과 결탁한 언론, 미디어가 독재체제 수립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하기는 많은 사람들이 미중전쟁이 어째서 ‘문명의 전쟁’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트럼프주의’ 라는 용어는 아예 이해할 수 없다. 일본에도 학교와 사회교육에서 그러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그런 담론도 형성되지 못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 견해보다 언론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무작정 비판,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빅미디어의 영향이다. 반대로 종교적 믿음 차원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11월 마지막 주말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위가 도쿄 긴자에서 있었다. 7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성조기와 일장기를 들고 미일동맹 강화를 외친 행진은 신선하게 보였다. 최근 도쿄 도심에서 미일동맹 반대를 외치는 데모를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빅미디어들이 한결같이 바이든의 당선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언론의 편향 보도를 규탄하는 시위였기에 신기했다.
일본에서도 거대 미디어가 공급하는 부정확한 정보를 거부하고, 스스로 세계와 소통하며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발간 부수를 자랑하던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신문들의 발행 부수가 지난 수년간 급감하고 있다. 이미 최성기에 비해 발행 부수가 30% 내외가 줄었다고 한다. TV 방송들도 지상파와 위성방송 중심을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론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국가 정책도 헤매게 된다. 일본은 동맹인 미국에 센카쿠 제도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을 기회 있을 때마다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일본인들은 미중전쟁은 자신들(일본)의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속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태도이다. 혹은 웃기게도 노무현의 ‘중간자론’처럼 일본이 미중 사이에서 화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일본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가한 것은 사실 미국으로서는 황당한 일이다. 미중전쟁의 핵심전략은 잘 알려진 대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 포위망 구성이 안보전략의 기둥이다. 미국, 호주, 인도와 함께 쿼드를 추진하고 인도양에까지 해군을 보내 연합작전 훈련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을 돕는 결과인 RCEP에 참가한 것을 자랑하면 미국은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일본도 미국에 섭섭한 감정이 있다. 미 재무부는 2020년 2월 대미외국투자위원회 (CFIUS) 화이트리스트 발표에서 일본을 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제외됐다. 호주, 캐나다, 영국만 남겼다. 미국과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와 같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굳건한 관계라고 자부하고 있던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차별과 배신을 느꼈어도 이상하지 않다.
미일동맹도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하다. 미국은 NATO 동맹들에게는 국방비를 GDP의 2%를 지출하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2%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 일본은 당장 국방비 2%나 전시 태세가 불가능하다.
지진과 화산, 태풍 등 자연 재해에 대한 대비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유사 상황에 대한 대비를 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중국에 대해 독자적 억지력을 가지려면 간단하다. 국방비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가지면 된다. 그러나 미국은 간단하게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일본에는 격렬한 반중파도 적지 않지만 친중파도 아주 많다. 일본은 총리가 헌법상 국가원수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한일중 정상회담에 시진핑이 아니라 리커창이 나오는 것을 받아들인다. 즉 시진핑의 상대는 천황이라고 생각하는 정말 우스운 나라이다. 중국에 대한 이 어이없는 대응은 현실 정치의 근저에 종교와 가치관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재정립 시급
언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일본 사회에는 언론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 하기는 언론에 지배당하는 사회에서 언론을 견제할 게 뭐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각성하는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도 미디어의 보도를 따라간다.
일본 당국의 한반도에 관한 정보역량 강화 노력과 관련, 흥미 있는 보도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씨앗이 되었던 최서원(최순실) 소문을 기사화해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던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가토 타쓰야(加藤 達也)가 지난 여름 신문사를 사직하고 내각정보조사실에 들어갔다고 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지라시를 인용해 ‘사실보도가 아닌 오보’를 낸 신문기자를 내각정보조사실이라는 정보기관이 채용하도록 한 것은 아베 전 총리라고 한다. 한국 정부에 의해 부당한 탄압을 받은 언론인이라는 허구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사실 일본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평양이 만들어낸 한국에 대한 모략을 사실로 만들어왔다. 그러한 실패, 과오는 지금도 반성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일본 당국은 긴박한 한반도 상황에 대비하여 정보기관에 전문가를 보강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어느 사회든 변하지만 일본도 우리에게 익숙한 친절하고 경우 바른 일본인, 잘 단합된 일본 사회라는 인상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일본은 동서냉전 종식과 함께 겪는 버블 붕괴(1989년) 후 혼란에 빠져든다.
돌연 일본을 덮쳐온 버블 붕괴라는 악몽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 많은 사람이 일본이 문명사적으로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좌절을 느끼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 체념하게 된다.
많은 일본인들이 미국도 리먼 쇼크 이후 쇠퇴한다고 믿는다. 미국을 이미 정점을 지난 과거의 패권국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이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위협은 연구하지만 공산체제주의를 자유민주체제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일본인들의 변화와 속마음은 주류 미디어가 아닌 익명의 인터넷 글이나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다. 유튜브에는 지금까지 발신 기회가 없던, 주장하고 수다 떠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를 거부, 거침없이 비판한다.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상상력이 부족하다. 메이지유신의 일본인은 볼 수 없다. 중동에서 ‘아브라함 협정’이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도 서태평양,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매뉴얼 대로 행동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이는 매뉴얼을 만든 자가 일본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는 뜻이다. 매뉴얼대로 사는 데 익숙하게 되면, 익숙한 것이 가장 편한 상태가 되면,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한다. 당연히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타협을 큰 미덕으로 중시한다. 그리고 악을 악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결국 잘못된 결과와, 악도 기정사실화할 위험이 큰 것이다.
한국은 미래에도 일본과 함께 협력해야 한다. 미중전쟁에 따라 급속히 변화, 전개될 새로운 국제질서를 앞두고, 한일이 서로 고치고 보완해야 할 문제를 서둘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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