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논단] 탄핵의 강에 가로막힌 대한민국
[미래논단] 탄핵의 강에 가로막힌 대한민국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20.12.16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막장 정국의 극치를 보여준 추미애 사태로 인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최저점을 경신했지만 구주류인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아직도 싸늘하다. 혼란의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안세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연 권력에 대한 견제와 타락한 정권에 대한 심판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낡은 메시지만을 던지면서 왠지 모르게 구태스러운 정치적 이미지를 계속해 지키고 있다는 보수에 대한 평가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야당과 근본주의적 분위기의 보수 우파가 아직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는 탄핵 이전의 옛 모습을 견지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의 원상복구만을 바라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과거의 메시지에 갇혀 탄핵의 강가에 머무는 보수 우파인 구주류는 집권층인 신주류의 영원한 공격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탄핵무효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운 박근혜 지지자들. 탄핵의 충격은 보수세력에 상처를 줌과 동시에 앞길을 막는 족쇄가 되었다

신주류의 유일무이한 정책인 적폐청산의 배경에 있는 백년전쟁의 이데올로기 역시 똑같이 과거에 근거를 둔 것이다. 신주류와 구주류 모두 현실보다는 과거의 좋은 시절을 희구한다. 차이가 있다면 구주류는 건국과 1960년대를 그리워하고, 조선왕조 양반 흉내에 익숙한 신주류는 더 멀리 조선 영정조 시대 정도의 과거를 사랑할 정도로 퇴행적이다. 탄핵의 강가에서 모두가 나름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희구하며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탄핵의 강이 대한민국을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로막고 있다.

탄핵 사건의 충격은 구주류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족쇄가 되었다, 구주류의 논쟁의 대부분은 강을 건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옛 모습 그대로의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이다.

탄핵 사건 이전으로의 원상 회복이 전제되면서, 구주류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일거에 해소하고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해결책이 외부에서 혜성같이 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황당한 기대감이 탄핵 직후의 미국의 북한 폭격설과 최근의 4·15 부정선거 음모론에 이르기까지의 심정적인 배경이다.

야당의 변신 움직임은 방법이나 지향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시대의 변화를 깨닫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이다.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필요에서이다. 그러나 탄핵의 강 앞에 머무는 보수 우파는 다급함이 없고 구체적인 방안 모색 없이 변화를 거절하고 이뤄지지 아니할 꿈에 잠겨 있다.

작년 10월 조국사태로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을 때 보수 우파 세력의 집회는 정치적 방향 제시에 실패했고 보수 우파는 시민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을 상실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종교집회 유사한 형태를 띠면서 남의 탓만을 하며 과거로의 회귀만을 주장하는 분위기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목표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 주장을 접하면서 광장에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의 광장 상황은 보수 우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그후의 보수 우파 운동의 전개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모색하면서 시민들을 설득해 정국을 끌어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탄핵의 강을 건너지 않고 옛 모습을 유지하며 과거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시민들이 구주류를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시대를 역류하려는 구주류 우파

탄핵의 강가에 머물러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 안타까운 처지의 구주류의 문제는 소통이 불가능한 낡은 메시지를 고집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지도자와 정치세력의 부재로 나타난다. 문제의 원인은 지난 4년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탄핵 사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대선전에 보수 진영에서 대통령에 박근혜가 당선되면 보수가 망하고 문재인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 차선책에 의존한다는 것은 정치력의 부재를 보여준다. 보스 정치시대가 지나간 이후 변화된 시대에 대처하는 메시지를 못 만들고 다음 세대 리더를 세우지 못했다. 과거의 가치로 연명하며 과거의 사람에 의해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왔다.

시대가 변화하고 사조가 달라져 70-80년대의 민주와 독재라는 프레임은 잊혀져 가고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 역시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정치인 출신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대선에서 시민들은 보수와 진보가 돌아가면서 집권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그만큼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보수는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메시지를 생산하지 못했다.

구주류가 내세우는 자유라는 가치는 그동안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의 대중적 용법이 초래한 오해와 함께 구주류의 소통이 어려운 태도로 인해 가치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빈 공간에 결집력이 있는 586 운동권 정치세력에 의한 세대 교체가 있었고 80년대 운동권의 사유방식은 시간이 지나서 시대의 주류 정신이 되었다. 현실을 이끌어가는 메시지와 책임 있는 지도자 및 정치세력의 부재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인 지난 30년에 걸쳐 진행되어온 현실이다.

30여 년전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표현으로 서구 세계 중심의 자유민주정의 승리를 이야기했지만 다원주의의 진전과 권리 요구의 증대 및 시민 정체성의 해체가 초래한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세계의 자유민주정은 위기에 처해 있다.

건국과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 이후 시대인 지난 30년을 지내온 6공화국도 역시 같은 위기에 처했다. 6공화국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면서 그렇게 비판하던 세력이 권력을 잡더니 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추구하면서 권력의 사유화에 몰두하고 있다. 6공화국의 체제는 시대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종말을 고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정을 모색하지 못한 채 민주화의 과실만을 누려온 결과가 민주정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마땅하다.

한 시대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는 새천년 이후 화두로서 제기된 ‘공정’이라는 주장에서 이미 표현되었다. 민주화 이후 97년 금융위기와 이어진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실에서 공정이라는 문제 제기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하나였다. 공정 주장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그리고 이념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요청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세상은 그전 세대의 낡은 이념에 가린 과거 질서를 희구하는 역사의 전쟁터였다. 대치된 전선에서 공정이라는 문제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신주류로 세력이 교체되었을 뿐이고 근본적인 환경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해 오던 진영은 탄핵 사건과 그 이후의 조국 및 추미애 사태에 이르러 파산하고 말았다. 진영은 사라지고 낡은 이념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권력자와 추종자 그룹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라는 약탈이 전개되고 있다. 공정의 요구는 권력이 사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런 요구가 우려했던 바로 그런 상황에 지금 우리 모두가 놓여 있다.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탄핵의 강가에 머물러 뒤를 돌아보고만 있을 때 미래는 없다. 지나간 사건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과거를 복원하는 것으로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에 서 있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탄핵의 강가에 머물러 있어서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진행에 일조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입만 열면 나오는 검찰개혁이라는 신주류의 구호는 단지 권력 사유화 관철의 다른 표현이고, 권력의 획득과 유지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고 민주정의 견제와 균형 장치를 제거해 공화국을 허무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6공화국의 해체와 그들만의 나라, 그들만에 의한 왕국의 건설이라는 시도가 탄핵의 강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지난 시대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요청되고 있다. 2021년을 앞두고 우리의 시선이 지난 4년의 시간에 머물러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과거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의 지난 30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고, 지난 70년 대한민국의 궤적을 돌아봐야 한다. 이 강을 어떻게 건너가고, 어떠한 터전에 발을 딛고, 어떻게 새 아침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서울대 졸업
전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