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 차기 미국 대통령은 확정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은 조 바이든을 당선인으로 가정하고 보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가능성이 높은 전망일 뿐이다.
절차적으로도 미국의 대통령은 11월 3일 각 주에서 국민들이 뽑은 538명의 선거인단이 12월 14일에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차기 대통령이 누구라고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물론 선거가 평소처럼 정상적이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심각한 시비와 다툼의 여지가 없었다면 각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의 수로 한쪽의 당선을 확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유례없는 보편적 우편투표를 진행하면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최소 6개의 경합 주(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에서 치열한 법적 소송이나 재검표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맞다.
물론 트럼프가 다시 승기를 잡으려면 부정투표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그 부정선거의 결과로 선거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주어진 수 주 내에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분명한 패자는 주류 언론
하지만 소송이나 재검표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미국 선거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교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예측이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거의 모두 완전히 엇나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은 민주당의 바이든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것을 예견했다.
상하원 선거도 ‘블루웨이브’, ‘블루쓰나미’ 등의 표현을 써가며 민주당의 압승을 단언했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해 크게 망신을 당한 여론조사기관들은 그동안 표본오류를 수정했다고 주장하며 이번에는 높은 정확도를 자신했지만 오히려 2016년보다 더 큰 차이로 예측에 실패했다.
한 예로 뉴욕타임스와 여론조사기관 시에나(Siena)는 바이든이 플로리다에서 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4%, 오하이오에서 9% 표차로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세 개 주 모두 트럼프가 가져갔다. 오차범위도 한참 벗어난 전망이었다. 또 다른 경합주인 위스콘신에 대해서는 바이든이 6.7%의 표차로 이길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 99% 개표 시점에 불과 0.6%의 표차로 앞서고 있다. 위스콘신은 트럼프 측이 재검표를 신청한 주 중의 하나다.
상하원 의석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언론은 선거 직전까지 대부분 ‘블루웨이브’를 예견하며 민주당이 상원 다수를 뺏어오고 하원에서도 최소 여러 의석을 뺏어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원에서 공화당은 현재까지 한 석만 뺏긴 상태다. 내년 1월 조지아 주 의석 2개를 지켜낸다면 52석으로 다수를 유지하게 된다. 하원에서도 예상과 달리 공화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최소 5석, 많게는 11석까지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예측이 맞아떨어진 여론조사기관은 2016년에도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트라팔가 그룹이다. 많은 주류 언론들이 2016년에는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조롱하며 트라팔가의 조사결과는 여론조사 종합 평균에 반영조차 하지 않았다.
트라팔가 그룹은 이번에도 트럼프가 근소한 차로 당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될 경우 결과적으로는 틀린 셈이 되지만,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에 비해 트라팔가 그룹이 가장 적은 오차로 결과를 예측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트라팔가 그룹은 거의 유일하게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주에서의 트럼프 승리를 예상했다. 위스콘신의 경우도 트라팔가는 0.8%로 바이든이 앞설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 표차는 0.7%였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은 두 자리 수 퍼센트로 바이든이 이길 것이라고 잘못 예측했다.
많은 사람들은 여론조사기관들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그들의 평판과 언론사와의 추후 계약을 좌우하기 때문에 편파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16년의 치명적인 잘못된 예측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책임을 진 여론조사기관은 단 한 개도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의 반복된 예측 실패는 이미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그들의 고객은 팩트가 아니라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류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류미디어 언론은 막대한 계약금을 지불하고 그들의 편향된 취향에 맞는 결과를 받아내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재생산해 낼 뿐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인들이 기억해야 할 분명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눈과 귀와 판단력을 사로잡고 있는 주류미디어가 ‘진실의 창’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빠르게 올라갔다는 것 정도다. 특히 10월 초 트럼프의 코로나 감염과 회복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다가 22일 마지막 대통령 후보자 토론을 기점으로 급격히 올라갔다.
이즈음 이미 사전투표를 한 사람들이 투표를 바꿀 수 있느냐는 구글 검색이 상위에 기록되기도 했다. 전면적 우편투표가 없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원래대로 선거일에 투표했다면 트럼프가 거뜬히 승리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준 자유당(Libertarian Party)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합주에서 자유당의 조 조겐슨 후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표차 이상을 가져갔다. 애리조나의 경우 바이든이 고작 0.5%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조겐슨은 1.5%의 표를 차지했고, 펜실베이니아에서는 0.7%의 표차로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서고 있을 때 약 1.15%의 표를 가져가고 있었다.
위스콘신과 조지아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당을 선택한 미국인들의 상당수가 실제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보수진영에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선택권이 좁혀진다면 대부분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을 선택했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는 1950년대와 60년대 사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이뤘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연합을 상기하고 이들을 다시 흡수할 필요가 있다.
실패로 드러난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
이번 선거에서 도출된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바로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히스패닉과 흑인, 유대인, 백인 여성, 심지어 LGBTQ들의 지지도가 더 상승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뽑은 히스패닉의 비율은 2016년 29%에서 올해 31%로 2%가 늘었다.
흑인들의 지지율은 4년 동안 8%에서 11%까지 증가했다. 이는 주류 언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 ‘동성애혐오주의자’ 등으로 포장한 것과 전혀 대조되는 결과다. 올해 ‘흑인생명도 귀하다(BLM)’는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폭동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또한 이번에 공화당은 15명의 신인을 포함한 최소 26명의 여성들을 하원에 진출시키면서 역대 가장 많은 여성 하원의원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과 좌파들의 소외계층을 이용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전혀 효과가 없거나 반감만 사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이번 공화당이 얻은 비백인 표의 비율은 26%로 196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흥미롭게도 백인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58%에서 55%로 약 3% 감소했는데 이는 주류 언론 미디어의 주요 고객인 고학력 엘리트 백인들의 지지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백인들의 반발(whitelash)’이라는 언론의 프레임도 거짓된 신화임이 드러났다.
한편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76%로 2016년에 이어 계속 유지했다. 바이든을 선택한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는 23%에 불과했다. 이는 신앙의 자유, 낙태반대, 건국정신 회복, 가정보호 등 트럼프 대통령의 분명한 보수주의적 정책 기조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4년의 임기 동안 공화당을 다시 링컨이 만들었던 ‘미국인의 당,’ ‘중산층의 당,’ 원래의 ‘Grand Old Party’로 회복시킨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엘리트 수도권 백인 고학력자의 당으로 전락했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 내에서는 당의 급진적인 정책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실패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선거 직후 소집된 회의의 유출된 녹취록에서 애비게일 스팬버거 의원은 이번 패배의 원인이 당의 사회주의적 기조와 ‘경찰예산 삭감’(BLM의 요구)과 같은 급진적인 입장이었다며 다시는 ‘사회주의’라는 말도 꺼내면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재선에 성공한 민주사회주의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그린뉴딜이나 전 국민 건강보험과 같은 법안에 나와 공동 서명한 사람들은 한 명도 낙선하지 않았다. ‘경찰예산 삭감’이나 ‘사회주의’로 공격하는 것은 인종혐오적인 공격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민주당은 극좌 성향의 의원들에 휘둘리며 사회주의적 이념에 잠식되는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 사회주의 세력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버니 샌더스는 선거 전 주에 ‘스쿼드(the squad)’라 불리는 극좌 성향의 하원의원들과의 공개된 면담에서 “우리는 우리 사람들을 동원해서 바이든을 FDR(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또 하원 원내대표 연임을 시도하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지난 10일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이념에 반대하거나 사회주의자들을 당내 주요직으로 등용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는 우리 당의 입장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태도다. 켈리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AOC가 하원을 주도하고 있다. 그녀가 동의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할 정도다”라고 고발했다.
이와 같은 민주당의 의석 확보 실패와 분열은 미국 보수진영의 ‘아메리카 vs 사회주의’ 프레임이 매우 정확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78세 고령의 바이든 후보가 최종 당선이 되면 실세를 쥐게 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의회 법안 표결을 기준으로 봤을 때 버니 샌더스보다 더 진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보수진영에 큰 위기이고 극복해야 할 고비이지만 어쩌면 큰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계속 사회주의와 정체성 정치를 고집할수록 미국인들과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2년 후에는 하원까지 공화당이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상하원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범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레임덕 정권이나 다름없다. 이미 공화당 미치 맥코넬 상원의장은 바이든의 내각 구성과 인사권 하나하나에 태클을 걸 것을 내비쳤다. 게다가 민주당은 각종 부정선거 시비로 새 정권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당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트럼프 임기 내내 러시아 선거개입 의혹으로 집요하게 괴롭혔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트럼프라는 인물과 현상을 앞으로 어떻게 승화시키느냐는 것이다. 7200만에 가까운 공화당 역대 최대의 득표를 거둔 이번 선거로 사실상 공화당 내 반(半)트럼프 세력은 더 힘을 잃었다. 결과적으로는 재임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가 그 특유의 인간미와 괴짜스런 매력으로 일궈낸 거대한 팬덤 만큼은 공화당이 절대 사수해야 하는 지지 기반이다.
트럼프의 선거부정 관련 소송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선 인물들만 봐도 공화당 내 트럼프의 필연적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테드 크루즈, 니키 헤일리, 탐 코튼 등 모두 2024년 대권 유망주들이다.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의 캐릭터를 극복하고 그의 견고한 지지층을 미국 보수의 든든한 기반으로 흡수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조평세
미래한국 편집위원·트루스포럼 연구위원
킹스칼리지런던 종교학과 졸업
킹스칼리지런던 분쟁안보개발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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