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사실상 46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불복 선언과 동시에 법정투쟁을 선언했지만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전 세계는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일본·중국과이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이 전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현재 미국 사회의 반중 감정을 쉽게 사그라들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미중 간 갈등 양상, 특히 무역 분쟁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고, 친중 정책을 내세우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9월 28일(현지시간) DBS그룹리서치의 타이무르 바이그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CNBC의 인터뷰 보도가 대표적이다.
바이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대선 결과가 중국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불안정이 좀 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변동성이 낮을 수도 있고, 더 많은 합의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양국 간 긴장감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후보의 공약에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 폐지나 중국기업에 대한 제재 해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민주당 또한 공화당처럼 무역에서는 미국 이익이 우선이라는 지적이었다.
CNBC 또한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미국의 대중정책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중국의 보복관세가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타격을 줬으므로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속하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주류 언론들의 전망은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 유세 기간 중에 내놓은 공약과 연설을 바탕으로 했다. 대부분은 대중국 관세 등 무역 분쟁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공약 가운데 중국과 협력이 없으면 이루기 어려운 부분들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후협약 재가입이다.
세계 주류언론의 전망 “바이든 시대, 미중관계 회복 어렵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7월 14일(이하 현지시간) 델라웨어 유세 연설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4년 동안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그린 에너지(신재생 에너지) 산업 육성에 2조 달러(한화 약 2270조 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고 2050년까지 미국의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연방정부 법무부 내에 환경 및 기후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트럼프 정부가 없앤 환경 관련 규제들을 오바마 시절로 되돌리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이어 “코로나 때문에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도로, 교량, 철도, 자동차 산업, 광대역 통신망 정비를 하면서 시간당 최소 15달러짜리 ‘노조 일자리’ 수백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바이든 당선인은 덧붙였다.
바이든 당선인은 “유색인들이 사는 취약 지역에서 환경오염을 저지르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즉 필요한 자금은 오바마 정부 때 도입에 실패한 ‘탄소배출권 거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탄소세’를 신설, 기업에 부과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 공약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측과의 공동 태스크 포스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그는 이 공약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 11월 4일 대선이 끝난 뒤에 바이든 당선인은 트위터에 “앞으로 77일 후에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공약은 사실 중국과 관련이 깊다. 지난 10월 27일 바이든 당선인은 미주 지역 중화권 매체 ‘월드저널’에 기고를 했다. 이 매체는 친공산당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 가정의 더 번영하는 미래를 위해(More Prosperous Future For Our Families)’라는 기고문에서 “보건의료와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중국과 협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은 또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고 강점을 살리며 세계 동맹국들과 리더십을 새롭게 하는 방향으로 대중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재가입해 중국이 이 협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계 이민자에 대한 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런데 파리기후변화협정의 내용은 미국은 물론 서방국가에는 불리한 부분이 들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중국에는 2030년까지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기금인 ‘녹색기후기금’을 통해 중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데 30억 달러를 지원하게 돼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정 가입 43개 회원국이 마련한 100억 달러 가운데 미국의 분담금은 30억 달러다. 오바마 정부는 여기에 27억 달러를 냈다. 사실상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약이다.
신재생 에너지 산업 육성도 그렇다. 바이든 후보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측의 구상은 석유와 석탄 대신 원자로를 건설하는 게 아니다. 태양광·풍력 발전 시설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비는 중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20년 9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 중국의 태양광 설비 수출은 207억 달러에 달한다. 2018년보다 25% 가량 줄어든 수치이지만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미국의 2018년 태양광 발전 시장 규모가 74억7860만 달러라는 KOTRA의 보도를 생각하면 그 규모는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의 전국태양광발전협회가 지난 7월 디지털타임스에 밝힌 데 따르면 중국산의 태양광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중국은 또한 해외 62곳에서 태양광 발전시설을 건설 중이다. 규모는 12.6Gwh에 달한다. 풍력 설비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풍력 발전기 체계나 부품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건설 형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이 해외에 수출한 풍력 발전기 수는 1950대나 된다.
지난 5월 1일 바이든 당선인은 아이오와 유세에서 “중국은 미국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튿날 ABC뉴스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은 중국해와 서쪽의 산들 사이에 엄청난 분열이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체제 내의 부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후 중국이 2020년부터 미국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자 트럼프 대통령과 경쟁하듯 중국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 비판은 주로 무역과 인권에 한정돼 있다. 대체 바이든 당선인의 중국관(觀)은 뭘까.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국무장관에 내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 해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지난 10월 13일 ‘밀켄 글로벌 컨퍼런스 2020’에 참석한 그는 “중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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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중국은 우리 경쟁상대 아니다”…그 속뜻
수전 라이스 전 보좌관은 “중국 문제가 미국에는 큰 도전인 것이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 미국과 중국 모두 극단으로 치달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글로벌 보건 위기와 핵확산 방지, 기후변화 대응 등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현안이 매우 많다”며 “중국과 효율적으로 ‘경쟁’하되 협력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라이스 전 보좌관은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 미국의 이익을 확고히 지킨다는 원칙 아래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민자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이스 전 보좌관이 오바마 정부 시절 유엔주재 대사 등을 지냈고, 올해에는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끝까지 경쟁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결코 허투루 들을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에 더해 봐야 할 부분이 과거 바이든 당선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어떻게 평가했느냐는 점이다. 2015년 바이든 당선인은 시진핑 주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시진핑과는) 일반적인 대화를 넘어 수많은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그의 솔직함, 결단력, 문제 처리 능력에 감명 받았다”며 시진핑 주석을 높게 평가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 초 코로나 확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자 “히스테리컬한 외국인 혐오”라고 맹비난하며 중국발 입국 금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바이든 정부는 “겉으로는 중국과 대립, 여러 분야에서는 협력”이라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는 반중 성향이 강한 일본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게 될까. 여기서 중요한 힌트가 바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시절부터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에는 미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방한, 김 전 대통령과 오찬을 갖는 자리에서 넥타이를 서로 바꿔 맸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 넥타이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는 부적이 될 것이라며 얼룩이 묻었음에도 세탁 한 번 하지 않고 보관 중이라는 에피소드가 국내에 알려진 바 있다.
이런 김 전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일본 정치인이 있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다. 1939년 와카야마현 고보시에서 태어난 니카이 간사장은 아베 정권은 물론 스가 정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막후 실력자다. 아베 전 총리가 퇴임을 밝힌 직후 스가 관방장관을 총리감으로 내세운 것이 니카이 간사장이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을 찾아 우호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한국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김대중 정부부터다.
1999년 한일장관회의에서 만난 박지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는 의형제를 맺었다. 지난해 8월 한일 관계가 극으로 치달을 때 니카이 간사장은 한일의원연맹 관계자와의 약속도 취소했지만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는 별도로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박지원 국정원장 다음으로는 이낙연 총리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니카이 간사장의 한국 인맥은 모두 김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니카이 간사장 또한 2001년 한국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 니카이 간사장은 중국과도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과거 장쩌민이 국가주석일 때부터 친중파였다. 중국 CCTV는 2015년 5월 3000명 규모의 일본 방중단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방중단은 니카이 자민당 총무회장이 이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17년 5월과 2019년 4월 니카이 간사장은 아베 총리 특사 자격으로 시진핑 주석과 만나 중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니카이 간사장이 어느 정도 친중적 성향인지는 2020년 7월 보도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중국이 홍콩에서 보안법을 시행하며 시민들을 탄압하자 자민당 의원들은 “시진핑의 방일에 반대한다”는 규탄 결의안을 내려 했다. 그러자 니카이 간사장이 만류하며 홍콩 국가안전법만 규탄하는 것으로 결의안 수위를 낮췄다고 당시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려하면 향후 한일 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지난 10월 11일 브라이언 매키언 전 미 국방부 수석 부차관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당시 매키언 전 부차관은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유럽·아시아의 핵심 동맹 일부와 즉시 통화해 ‘미국이 돌아왔다.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만 따로 놓고 볼 때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기조를 바탕으로 보면 친바이든 정부와 여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매키언 전 부차관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바이든 후보는 수년 간 고통을 겪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실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인도적 지원이 북한에 들어가도록 보장하고,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이 이런 물품을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존 대북제재 틀 안에서 검토하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 정부와 협력해 이산가족 상봉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포함해 관련 목표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제재에도 아랑곳 않고 ‘인도적 대북지원’을 하려는 문재인 정부·여당의 뜻과 일치한다.
즉 이런 상황을 모두 종합하면 미국과 중국, 일본 간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정부 때처럼 미국과 일본이 함께 중국을 압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속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또한 한동안은 바이든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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