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진중권은 어떻게 펭수가 되었나?
[논단] 진중권은 어떻게 펭수가 되었나?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승인 2020.09.23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7 사태와 ‘우리식 보수주의’
진중권 현상이란 게 실은 별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 서 펼쳐지는 일들을 약간의 재미와 유머 코드를 가미해 전달할 뿐이다.
진중권 현상이란 게 실은 별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 서 펼쳐지는 일들을 약간의 재미와 유머 코드를 가미해 전달할 뿐이다.

2019년 2월 27일은 대한민국 보수진영에 2017년 3월 10일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날이었다. 2017년 3월 10일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인용한 날이다. 2019년 2월 27일은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 앉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의 당대표로 선출된 날이다. 자유한국당이 탄핵 불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날인 셈이다.

필자는 박근혜 정권의 2인자를 당수로 태연하게 뽑은 자유한국당 3차 전당대회의 풍경을 뇌리에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필자는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현장인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으로 행사의 이모저모를 취재하러 직접 가봤더랬다.

전당대회는 명불허전의 가관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황교안 전 총리를 압도하는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한 여론조사 수치는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은 여전히 ‘박근혜판 동토의 왕국’이었다. 전당대회장에 모여든 자유한국당의 열혈 책임당원들에게 박근혜는 박해받는 순교자였다.

친박 일색의 이념적 색깔 이상으로 기괴하면서도 이색적 풍경은 탑골공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을 주는 참석자들의 노쇠한 연령대였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청년층은 고사하고 필자 또래의 중년 세대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중년 남녀들은 전당대회 실무를 지원하려고 사무실 바깥으로 출장 나온 자유한국당 당직자들뿐이었다.

친박이 씨줄이 되고, 노인들이 날줄이 된 전당대회 개표 결과가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형국이 돼버린 것은 따라서 전혀 이상한 노릇이 아니었다. 나무위키의 설명에 의하면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폐쇄된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기술과 제품군이 세계시장의 보편적 추세와 동떨어진 방향으로만 진화를 거듭하다가 파충류인 이구아나 도마뱀이 대장 역할을 하는 고립된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처럼 치명적으로 낙후되는 일”을 의미한다. 휴전선 너머의 북한 정치체제와 대한해협 건너의 일본 대기업들이 퇴영적인 갈라파고스 현상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방불케 하는 ‘우리식 보수주의’ 노선을 선포한 자유한국당의 당대표로 황교안 전 총리가 선출된 사건은 우파 입장에서는 그나마 선방에 성공한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전당대회 현장에서 단연 각광 받은 당대표 후보자는 심지어 황교안보다도 더욱더 수구꼴통스러운 행태를 서슴없이 보여 온 김진태 전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김진태는 책임당원 3만 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으스대며 전당대회에서의 이변 연출을 자신만만해하던 터였다. 탄핵을 부정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가히 아이돌 스타급이었다는 뜻이다. 파충류는 될지언정 양서류로 결코 퇴화할 수만은 없다는 자유한국당 일부 지지자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이 ‘김진태 당대표 체제’라는 희대의 막장 코미디 체제의 등장을 가까스로 막아냈다고 하겠다.

권력관계의 본질은 먹이사슬

서론이 길었다. 허나 결론은 사실상 이미 도출되었다. 친박은 대한민국 정치생태계의 토대를 이루는 식물성 플랑크톤이기 때문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모든 해양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있기에, 동물성 플랑크톤이 있고, 동물성 플랑크톤이 있기에 우리가 그 이름을 쉽게 외우는 동물들이 상위 포식자의 위치에서 생명체로서 서식할 수 있다.

탄핵을 인정하지 않는 친박들이 있는 덕분에 황교안 체제의 출현이 가능했다. 2019년 2월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황교안 전 총리를 누르고 당대표에 선출됐다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제1야당을 등에 업고 현재와 같은 인지도와 동원력을 누리기는 굉장히 어려웠으리라.

필자는 지난 연말연초에 걸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을 차례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필자와 두터운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김 이사장과 변 대표는 대부분의 현안들에 정반대 시각을 고수했다. 한데 한 가지 지점에서만은 두 사람의 견해가 확실히 통일되었다. 황교안이 있기에 전광훈이 있다는 시각이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은 박근혜 정권의 2인자라는 데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황교안의 본질적 진면목은 그가 개신교 전도사라는 맥락에 가 닿는다. 황교안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 장악 시도에 항의해 청와대 정문 앞에서 삭발을 강행하자 그의 등 뒤에서 울려 퍼진 주요한 배경 음악은 찬송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추종자들이 유사종교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풍김으로써 사회적 물의와 시비의 원인을 제공해왔다. 그렇지만 세 사람 모두 종교를 실제로 정치에 노골적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무개념의 망발마저 불사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 특정 종교 신도들을 불러 모아 세 과시에 나서지는 않았다. 반면에 황교안 전 대표는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무시한 채 아무런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종교를 정치에 개입시켰다.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으로 말미암아 임기 중에 탄핵당한 정권의 2인자가 호출한다고 해서 쪼르르 달려가는 종교인의 수준은 물어보나 마나다. 황교안이 종교를 정치에 끌어들였다는 사실 못잖은 문제는 그가 끌어들인 종교인이 시쳇말로 후져도 너무나 후졌다는 사실이다.

재수감되는 전광훈 목사.
재수감되는 전광훈 목사.

‘빤스 목사’ , 이 낯 뜨거운 한마디로 전광훈을 둘러싼 논란이 총화된다. 전 목사는 비루한 물질적 욕망을 상품화시키는 ‘(株)예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예수를 구세주로서가 아닌 주식으로 환대하는 사이비 목자에게 일관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전광훈 목사는 2016년 10월의 설교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악령과 가까이 하는 여자”라고 맹비난하기까지 했다. 그가 박근혜에 대한 의견을 180도 급전환한 데는 태극기 부대의 쌈짓돈을 노리려는 얄팍한 속물적 동기 이외에는 현실적으로 달리 소명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 유형의 독감만 유행해도 대규모 군중집회를 요란하게 홍보해가며 무리하게 조직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의 지탄과 빈축이 두려운 탓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필자의 인식과는 차원부터가 다른 듯싶다. 그들에게는 욕하는 사람 100명이 아니라,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 1명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는 와중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강행하면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거둘지는 명약관화했다. 백이면 백 야당 피박, 여당 대박이었다.

그럼에도 전광훈 목사는 기어이 집회를 밀어붙였다. 전국적 여론이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 민심이 우선인 자유한국당 소속의 몇몇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나중에 사달이 크게 나고 만 집회에 기를 쓰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후에 전개된 사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이다. 문재인 정권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했고,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까지 개명했던 야당은 횡액에 가까운 팀킬을 제대로 당했다. 국민의 인식에서 전광훈과 미래통합당은 원팀이었기 때문이다.

왕서방과 곰은 진정한 한 팀이 될 수가 없다. 재주는 곰이 고생스럽게 부리고, 돈은 왕서방 혼자서만 독식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으로 다시금 간판을 바꿔 단 미래통합당은 8·15 태극기 집회가 보수진영에 초래한 정치적 대참사는 겪고 나서야 자기네와 탄핵불복 세력이 한 팀이 아니란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날로 먹는 문재인, 더 날로 먹는 진중권

문재인 정권 내부에서 무슨 대단한 전략가나 엄청난 선동가가 맹활약하는 까닭에 총선과 대선과 지방선거의 승리에 뒤이어 지난 총선에서마저 집권세력이 역대급의 기록적 대승을 거둔 것은 아니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성적표만 놓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공영방송을 땡문뉴스로 시작해 문비어천가로 끝나는 단군 이래 최악의 어용방송으로 타락시켰다. 검찰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행동대장으로 내세워 조폭식으로 무지막지하게 접수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미향 열린민주당 의원으로 대변되는 음습한 각종 부정비리 의혹들은 가짜뉴스라고 딱 잡아떼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는데, 실업자는 되레 넘쳐나는 실정이 증명하듯 민생경제는 총체적 파탄지경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제갈공명이 살아나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를 책임지고, 괴벨스가 부활해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도 여당이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다른 일은 다 해도 한 가지 행동만은 절대 하지 않는다. 목마르다고 양잿물 마시는 짓이다. 황교안은 대권에 목이 말랐다. 그래서 전광훈이라는 양잿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더랬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즉시 빠져들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야당을 상대로 정부여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것처럼 쉬운 일도 이 세상에 없다.

진중권 현상이란 게 실은 별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말과 글을 통해 있는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하면 된다. 물론, 약간의 재미와 유머코드를 가미해가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에 진력해온 작업이 바로 그거다. 고도의 교양과 폭넓은 지식이 요구되는 일들이 아닌 것이다.

보수 성향의 정치 평론가들은 작금의 정치구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유의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운동장의 기울기가 아니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구조다. 친박 또는 태극기 부대가 플랑크톤으로 있고, 전광훈과 그의 후견인인 황교안은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증식하는 크릴새우이며, 문빠들은 참치떼로 활동하는 아주 단순한 연결고리이다. 그러면 진중권은? 참칫길만 행복하게 걷고 있는 펭수일 따름이다.

생태계의 최종 포식자는 먹이사슬의 아랫단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이하는 법이다. 필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황교안 전 대표가 문을 따주고, 전광훈 목사가 데리고 들어온 극우 기독교 극단주의 집단과 결별하는 때가 진중권의 본격적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진중권의 먹잇감인 이른바 대깨문들의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는 연유에서이다.

진중권은 영악한 사람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다. 시한부 전성기를 맞이한 진중권 전 교수가 이번 기회에 넉넉한 노후자금을 꼭 마련하기 바란다.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서남투데이 편집위원
전 정치플랫폼 서프라이즈 초대 편집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