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론 법안인 국정원 개혁법을 놓고 여야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국정원의 명칭과 대공 수사기능을 대폭적으로 바꾸려는 민주당은 과거 국정원이 적발한 종북 RO 이석기 및 통진당 세력들과 선거연대 등을 했다. 일심회 간첩사건에서는 노무현 청와대 인사와 주요 핵심들의 연루가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역사를 지우고 싶은 것일까.
물론 국정원은 지난 2012년 대선과 박근혜 정부 시절 자신의 영역을 스스로 규제하지 못했던 잘못도 있다. 하지만 국정원이라는 조직은 군대와 같아 대통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국정원을 온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헌법수호청과 이스라엘 모사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2012년 2월 독일은 좌파 정치인 대규모 사찰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독일의 헌법수호청이 ‘좌파당’의 당수 게지네 뤼치와 그레고어 기지 원내대표 그리고 페트라 파우 연방하원 부의장 등 굵직한 정치인들을 사찰해 왔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당사자들의 항의는 격렬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 사찰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여당인 그뢰에 기민당 사무총장은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정치권 대상으로 방첩수사 한 獨헌법수호청
더 놀랄 만한 것은 헌법수호청장의 태도였다. 니더작센 헌법수호청의 바르겔 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놓고 “좌파당 의원들에 대해 비밀정보기관적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것. 독일 집권 여당과 헌법수호청이 당당할 수 있는 데는 배경이 있다.
라이프치히 소재 연방행정재판소는 2010년 7월 좌파당의 원내대표인 보도 라멜로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자유의 한계’였다. “체제 변경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연방법원은 판결문에 명시했다. 그러한 독일의 헌법수호청은 설립된 해인 1950년부터 1993년까지 377개의 반체제 단체와 이적단체, 극렬분자 단체를 찾아내 이들 조직을 해체하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또 1986년까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 350여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심사, 그 중 2250명을 탈락시켰다.
현직 공무원과 교사에 대해서도 ‘헌법 충성도’를 조사해 2000여 명을 중징계하고 256명을 파면시켰다. 독일이 이렇게 반체제 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의 적’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 국정원이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 그 기능이 거의 무너졌다는 사실에 있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前 국정원 제1차장)은 “600여 명의 베테랑들이 해임돼 큰 타격을 입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정보기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국가 기구를 명시하는 헌법 어디에도 ‘국가정보기구를 둔다’라는 조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든 국가정보기관은 그 나라의 법집행 기관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는다.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은 정치학자, 법학자들의 두통거리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국정원의 영문표기는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다. 한자로는 國家情報院이라고 쓴다.
이 문제를 연구한 정준표 영남대 교수는 ‘미국의 Intelligence 개념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intelligence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정준표 교수에 의하면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을 ‘인텔리전스’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자국의 정보기관에 적을 제거하는 은밀한 공작의 ‘닌자(忍者)와 적의 정보를 은밀히 캐내는 밀정(spy)으로서 ‘간자’(間者)의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에 Intelligence를 공개된 정보와 지식으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정보기관에 이를 분석하는 학자(學者)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적에 대한 공작을 결행하는 모사드
이러한 문제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길규 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정보(intelligence)는 지식인가, 활동인가,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정보는 지식인 동시에 활동이고 조직이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이를 단순히 지식으로 파악하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를 비롯, 국내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인텔리전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는 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사전에 적을 제압하기도 했다. 인텔리전스를 단순히 정보 분석으로만 여겼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의 그러한 ‘학자적 정보기관’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어 2000년 9·11테러 때 FBI가 입수한 테러첩보를 CIA 정보분석관들이 무시하는 상황을 낳기도 했다. 반면 이스라엘 모사드는 2011년 11월 12일 이란 테헤란 인근 미사일 기지를 폭파해 이란 혁명수비대원 17명을 제거했다. 이란 핵무기 개발에 관여한 핵물리학자를 포함해 과학자 다수가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2008년 2월 12일 헤즈볼라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모사드에 의해 암살됐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2인자이자 ‘검은 9월단’의 전략가 알리 하센 살라메, 검은 9월단 지도자 아부 유세푸, 이라크 초장거리포 개발자 제럴드 폴 등 테러리스트와 과학자가 모사드에 의해 제거됐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바로 국가정보기구 이론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학자, 로웬썰(Mark M.Lowenthal)의 ‘인텔리전스’론에 가장 충실한 경우다.
로웬썰은 ‘인텔리전스란 최종정보인 분석물뿐만 아니라 특정 비밀공작 및 방첩활동 그 자체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국가정보기관론은 정설(定說)로 여겨지며 국가정보기관을 ‘정보 수집 및 분석기관’으로 보는 램덤(A. Ramdom)의 주장은 소수 이설(異說)에 불과하다. 문제는 오늘 북한을 주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그러한 소수 이설에 의해 개편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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