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나라 곳간이 위험하다.... 기본소득제를 위한 조건
[전문가분석] 나라 곳간이 위험하다.... 기본소득제를 위한 조건
  •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20.05.2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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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룡 국세청 소득지원국장이 정부세종2청사에서 코로나 극복 ‘568만 저소득 가구에 근로·자녀장려금’ 신청 등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
이청룡 국세청 소득지원국장이 정부세종2청사에서 코로나 극복 ‘568만 저소득 가구에 근로·자녀장려금’ 신청 등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

‘복지국가’라는 용어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책 목표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복지가 필요 없는 국가가 복지국가일 것이다. 모든 국민이 복지제도에 의존하는 국가가 있다면 이러한 국가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노예국가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선택적 복지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다. 적격성 검증(means test)를 통해 지원이 필요한 대상을 선정한다. 조합주의적 복지시스템은 조합주의적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 시행됐다. 보편적 복지시스템은 사회주의적 복지시스템으로서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용됐다.

사회주의자 Ferdinand Lassalle가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진 국가를 야경국가로 조롱했고, 대한민국의 교과서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조롱이 아무런 비판 없이 재 기술됐다. 자유주의 국가는 재산권과 인권,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선택을 극대화하는 복지제도를 유지했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사회주의 물결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복지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 지원 규모를 늘렸다.

1980년대부터 보편적 복지시스템은 개혁되고 국가지원금을 축소됐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회의가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복지제도인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사회주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의료, 교육 그리고 주택 부문에서 시장의 역할을 배제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체제를 근간으로 구축된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계급투쟁을 목표로 하는 만큼 사회적 형평성을 최우선 하면서 재분배를 위한 사회정책을 추진한다.

대한민국은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미 코로나 사태에도 비대면 의료를 부정하고, 유치원까지 국가가 장악하려 하고 있다. 주택시장에서 국가개입을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현 정치적 상황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복지제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심소득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제안으로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은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를 복지제도의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복지제도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면서 거대한 관료조직의 비효율성으로 멍들어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밀턴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를 옹호했다.

첫째, 국민에게 자유를 확대한다. 현재의 복지제도는 공무원들에게 많은 부분 권한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어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에게 공무원들의 지휘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정부의 관료제도의 비효율성을 삭감할 수 있다. 셋째, 현재의 복지제도보다 일하는 유인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 넷째, 동일한 대우를 통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다. 다섯째, 기본소득제가 결코 사회주의적인 제도는 아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프리드먼은 주장했으나 아직도 그의 주장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기본소득제의 문제를 보완한 안심소득제라는 대안도 있다. 안심소득제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한 근로장려금제도(EITC)다. 기본적으로 노동 유인을 확보하면서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각종 공적부조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처럼 복지제도의 평가 기준복지제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아서 오쿤(Arthur Okun)이 주장했던 것처럼 형평성과 효율성이 서로 상충관계가 있다면 복지제도가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과연 복지제도가 얼마나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효율성을 오히려 증진시키는 복지제도는 없는가, 복지제도가 가난을 없애는가. 가난을 구제하는 것에 대해 최저한에 그쳐야 한다는 최소주의자(minimalist)의 입장이 있다.

비타민 영양제도 과잉이면 몸에 오히려 해롭다. 효율성과 형평성의 상충관계 속에서 가난 구제의 대상과 지원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난이란 개념의 측정이 매우 어렵고 실제적으로 상대적으로 측정하는 만큼 가난의 국가 간 비교는 그 자체가 어렵다. 가난 구제의 충분성과 지원의 적정성도 역시 상대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과연 선진국의 가난한 사람과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 간 가난의 정도를 비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비효율적 복지제도 정비해야

현재 정치적 입장에서는 항상 상대적 가난 구제와 지원을 선호한다. 투표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복지제도의 변형이다. 결과적으로 절대적 가난 구제에서 상대적 가난 구제로 이슈가 달라진 상황에서 가난의 해결은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로 전락했다.

사회적 평등은 복지제도의 구호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과연 사회적 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다르다. 드원킨(Dworkin)은 사회적 평등(social equality)을 동일한 배려와 존중(equal concern and respect)으로 평가했다. 평등은 동일한 신분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과거 신분제 사회나 암묵적 차별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대우를 받는 사회로의 전환이 사회적 평등으로 정의될 수 있다.

기회적 평등(equal opportunity)은 오랫동안 사회적 평등의 기준이 돼 왔다. 기회적 평등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을 복지제도의 목표로 삼기도 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결과적 평등을 주장하고 강제적인 방법으로 사후적 소득을 평등화시키는 데 그들의 정치적 정열을 바쳤다. 조세로 사전 소득을 교정해 사후적 소득의 평등을 만드는 결과적 평등의 주장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재정을 사용하게 되면 사회적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더욱이 복지제도의 보호 속에서 복지 혜택만을 누리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들은 복지의 그늘을 만들고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적 배척 속에서 더 어려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복지제도는 결과적으로 복지제도가 지향했던 사회적 통합과 포용과는 거리가 먼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회적 안정은 사회주의자들이 시장경제를 공격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이슈다. 사회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경제적 불안정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회 불안이 조성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수시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사회 내부에 축적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더 이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문제다. 폰지 게임(사기적 피라미드 편집자注)으로 제도를 운영하게 되면 당연히 장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이득을 얻고 향후 다음 정권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만드는 정치 세력은 사회 악이다.

복지제도가 수혜자들의 자립을 도모하지 못하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야기된다. 복지제도는 제도의 틀 속에서 자립해 복지 수혜의 대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만약 제도가 이를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러한 제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포용의 대상이 다른 사람의 혜택 위에 군림한다면 그 사회의 통합과 발전은 요원하다. 복지가 권리라는 주장은 부도덕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부도덕한 주장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도 사회 통합을 해치는 사회악으로 볼 수 있다.

복지제도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준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제시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 하나의 제도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순위를 두고 선택하는 현실적 고려가 필요하기도 하다. 적어도 지난 역사를 볼 때 시장경제 체제가 사회적 포용을 증가시키고 효율성과 경제 성장을 도모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난을 줄였다. 사회적 기회를 증가했고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됐다. 만약 시장경제 체제를 흔드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시장경제의 성과가 떨어지고 문제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 이후 세계사에서 암적 존재로 작용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후 사회주의 폭력성과 전체주의적 속성으로 인류가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제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한 복지제도를 모색할 시점으로 보인다. 각종 복지를 빌미로 도입된 많은 정책들은 선심성 정책으로 정책의 기본 틀조차 갖추지 못했거나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한 국가에서 용도 폐기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정책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는 정책은 하나도 없다. 법 제도로 고착되어 의무적 재정지출을 증가시키면서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국가채무만을 늘리고 있고, 향후 재앙을 잉태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몽상적 세계관에서 시작된 교육, 의료, 주택에 대한 사회주의적 집착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기회는 불평등해졌고 가격은 폭등하는 등 문제만 폭증했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니 책임지지도 않는다.

재정의 고갈은 만인의 투쟁으로 진화됐다. 나치 지지자들이 횃불을 들고 거리를 횡보하던 히틀러 시대가 재연되는 양상이다. 분노로 가득 차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한다. 동성애자, 탈핵주의자, 인간중심철학 지지자, 복지사회주의자, 거짓말쟁이들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능멸하며 다른 사람의 노력 위에 군림하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흔드는 양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의 전면적 검토 없이는 미래는 더 불확실해진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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