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의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몰락은 우고 차베스라는 한 지도자로부터 시작됐다.차베스는 가난한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사회주의 정책을 펴나갔지만, 그 결과는 파탄이었다.하지만 처음부터 차베스가 그런 무리한 정책을 펴나간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차베스의 선한 동기를 절망으로 이끌었던가. 차베스의 등장을 지켜 본 신숭철 전 주 베네수엘라 대사를 <미래한국>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약속된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한·중남미협회 건물에 도착했을 때 신숭철 회장은 길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자 신 회장은 기자가 기다리는 회의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통화 중이었고 기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중남미로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문의가 많았던 것이다.“2004년에 베네수엘라 대사를 했지요. 휴고 차베스 대통령은 여러 번 만났습니다. 아주 쾌활하고 개방적인 사람이었어요. 한번 만난 사람들은 흠뻑 빠져들었습니다.”신숭철 전 베네수엘라 대사가 기억하는 차베스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만 그런 게 아니고 일반 국민들한테도 그랬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위만 내세우지 않고 국민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줬죠. 굉장히 친화적이고요. 중남미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성격이 아닌가 싶은데, 국민들과 굉장히 가까웠어요. ‘헬로 프레지던트’ 이런 라디오 프로그램에 국민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고 그랬으니까요. 굉장히 인상 깊은 모습이었죠.”
차베스 대통령은 1999년 취임한 뒤 2002년 군부 쿠데타로 며칠 동안 섬에 유배됐다가 다시 복권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당시 야당은 차베스에 대한 대통령 국민 신임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고 2004년 8월 15일 국민투표에서 야당의 안이 59%로 부결돼 차베스 권한이 훨씬 강해졌다. 신숭철 전 대사는 그 시기에 부임했다. 그 때 베네수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가 베네수엘라에 부임해 있을 때는 지금 언론에서 얘기하는 상황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잘 나가던 상황이었고 세계도 차베스 정책을 주목하던 시기였어요. 차베스 정권이 탄생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인구의 분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 가진 사람들과 빈민층의 격차가 굉장히 크지요.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에 먼저 이익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려 했습니다. 또 하나는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인식의 문제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베네수엘라는 석유 등 자원이 많은데, 그 자원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 석유기업들에게 착취당한다는 인식이 컸습니다.”
차베스의 선한 의도, 가난한 국민을 구하라!
당시 미국은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원유를 그대로 가져가 정유해 팔았다. 베네수엘라 국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현지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기에 자국의 자원을 착취당한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했다. 신 전 대사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러던 차에 차베스라는 사람이 나타났단 말입니다.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는 그런 배경 측면이 있던 것이죠. 차베스가 처음 집권했을 당시에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기보다 온건한 사회주의적 정책을 폈습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비슷한, 오히려 룰라보다 더 입장이 온건한 좌파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룰라를 능가하는 좌파적 정책을 취하게 됐죠. 그런 식으로 베네수엘라 역사는 진행된 겁니다.”그렇다면 차베스는 어떤 이유로 강성 사회주의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일까?
“기본적으로 차베스가 사회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일 수도 있고... 집권 과정에서 자신이 정권을 오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그런 생각으로 처음 한 일이 헌법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제헌의회를 구성해 헌법을 새로 만들었죠. 국민투표를 거쳐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는데 헌법에 사회주의 요소를 상당히 많이 넣었습니다. 대통령 임기도 좀 늘리고요. 어쨌든 헌법에 따라 빈민층에 대해 여러 가지 배려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 한 예로 정부가 서민용 시장인 ‘메르깔’을 열어 생필품 등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해줬죠. 그러면 서민들은 좋아할 것 아닙니까. 또 하나는 지역위원회 이런 걸 만들어 주민들 자치를 통해 정부에 입장을 내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민주주의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 사람들도 참여민주주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국민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지요.”신숭철 전 대사가 기억하는 차베스의 변화는 한 마디로 베네수엘라 국민의 절대 다수에 달하는 빈민층을 구제하고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선한 동기였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에 그런 극심한 빈부격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베네수엘라는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스페인이 지배했던 지역에서는 백인들이 사회적으로 상층을 차지하고 있고, 원주민 인디언들이 그 밑에 있지요. 그런 식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계층 극복이 어렵습니다. 물론 하위계층 그 중에서도 부자가 되거나 고위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직도 계층사회입니다.”결국 베네수엘라의 빈부격차는 식민지배로 인한 부의 편중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석유 매장량이 많았다. 그런 자원을 가지고도 어떻게 빈부격차 해결에 실패했을까. 그 답은 차베스의 권력 강화를 위한 국유화에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자원을 미국에 그냥 뺏기고 있는 것 아니냐, 미국에 착취당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자기돈 들여 개발하면 훨씬 더 이익이 남을 것이라고 보고 국유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냥 뺏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 보상하면서 석유자원을 국유화했어요. 국유화라는 건 지분의 51%를 베네수엘라 정부가 갖는다는 의미죠. 그렇게 진행했는데, 마침 석유 값이 올랐잖아요. 100달러, 어떤 때는 150달러 오르니까 재정이 두둑해지다보니 그걸 바탕으로 서민정책을 폈고 다른 나라를 지원할 수도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국가 전체 수출의 96%를 차지하고, 재정수입의 50%와 GDP의 약 3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하락 시 경제 전체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석유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만으로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16년 이후 유가가 일정 부분 회복하면서 대부분의 산유국이 어려움에서 벗어난 것과 달리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따져보면 국유화 정책은 좋지 않았습니다. 요즘 베네수엘라 석유 가격도 떨어졌지만 생산량도 떨어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잖아요? PDVSA라는 석유공사가 있는데요. 내부가 사장, 관리직, 상위기술직, 근로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차베스는 상위직을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으로 임명했어요. 그런데 그 밑의 직원들 상당수를 차베스 정책에 호응을 안 한다는 이유로 많이 해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해외로 많이 나갔죠. 처음 몇 년 간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계들이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데, 고칠 사람이 별로 없는 겁니다. 밑에서 단순히 일하는 사람들은 숙련돼 있지 않아 기름칠 정도는 하겠지만 기계 자체에 대해 노하우가 없다 보니 기계 보수가 안 되는 거예요. 결국 석유 생산량 자체도 떨어지게 됐던 겁니다. 베네수엘라 재정은 석유생산에 크게 의존하는데, 가격도 떨어지고 생산하려니 기계도 안 돌아가다 보니 그런 식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국유화라는 오류의 길, 그리고 반미
결국 차베스는 처음엔 혁신적인 의도에서 그런 국유화 정책들을 펴나갔지만, 결국 의도된 결과를 얻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러면서 차베스는 반미를 내세웠다. 이 모든 파탄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 차베스는 중남미 국가들에게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값싸게 공급하면서 반미 볼리바르 동맹을 추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차베스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는 못했다.“중남미는 한때 좌파 정권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그중 좌파의 리더격이 브라질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그리고 우고 차베스인데 이 세 사람이 성향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차베스는 너무 앞서가는 사람이었고, 룰라는 실용좌파였고, 키르치네르는 그들을 따라가는 식이랄까요? 키르치네르는 차베스처럼 굉장히 강력한 좌파는 아니었는데 한때는 두 사람이 굉장히 관계가 좋아 베네수엘라가 원래 멤버가 아니었지만 가까운 관계 때문에 멤버로 들어왔죠.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마두로가 엉뚱한 짓을 하니까 다시 축출돼 빠졌습니다. 관계는 괜찮았죠.”결국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를 이 볼리바르 동맹국들에게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공하고도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국부만 유출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것.
문제는 차베스의 그런 국내외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은 차베스를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분열된 야당이 차베스의 집권을 연장하다
“베네수엘라는 새로 바뀐 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도 새로 했습니다. 할 때마다 차베스가 이겼어요. 다수당을 차지해서 국회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갈수록 야당 세력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야당이 지리멸렬했던 이유는 하나로 단합되지 못하고 여러 야당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이쪽 파 야당, 저쪽 파 야당이 있는데 지도자들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야당끼리 단합이 잘 안 됐어요.
자기들끼리 하나로 구성해서 누구를 리더로 내세워 그 사람을 돕겠다는 게 아니고 각각 서로 자기가 리더라는 식으로 하겠다는 인식이 강했죠. 물론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 후보라고 한 명 내긴 했는데 결국 그 사람도 안 됐죠. 겉으론 단일 후보를 내세워도 야당 내부적으로는 지원도 안 되고요. 그런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당 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일부는 가택연금 당하고 또 일부는 외국으로 축출당하기도 했는데, 국내에 있는 사람들마저 단합이 잘 안 되는 게 아주 치명적이죠.”
베네수엘라가 국가 파탄의 길에서 차베스 대통령을 교체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야당 정치 세력의 분열이었다. 차베스는 영리하게도 기존의 대의민주제에 환멸을 느낀 다수의 빈곤층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보다 급진적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신숭철 전 대사는 베네수엘라 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이 갖는 정치적 특성을 잘 이해할 것을 당부한다.
“같은 우파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상당히 바뀝니다. 그런 변화가 있습니다. 일종의 사람 중심, 리더 중심으로 정책이 운영되는 면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그렇게 보입니다. 과거 제가 멕시코에 처음 부임했을 때가 1980년대 초였는데, 그때 대통령이 바뀌면 청소부도 다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웃음)”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는 우리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 한국이 베네수엘라 모델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더 실감 있게 다가왔다. 여기에 신숭철 전 대사는 당부하는 말을 보탰다. 베네수엘라 때문에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잠재력이 여전히 크다’며 중남미국들을 ‘저평가 베네수엘라 가능성은 열려 있어 우량주’에 비유했다.
“보통 중남미 하면 거리가 멀다는 것, 또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는 것, 마약 갱들 얘기하면서 안전도 불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인식이에요. 정치적으로는 이미 설명 드렸고요. 경제적으로도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대외개방정책을 폅니다. 그 다음 사회 안전 면에서도 비교적 안정돼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가 전통적인 시장에서 대체시장을 찾으려면 중남미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과 같은 국가들은 우리와 지향하는 점이 같거든요. 미국 투자 환영하죠. 임금 저렴하죠. 투자하면 절차도 지원해주죠. 우리는 그와 같은 국가로 진출해나가야 합니다. 한·칠레 FTA 사례에서 보듯 우리에게 이익입니다. 칠레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1위로 우리가 시장을 잡았습니다. 베네수엘라도 그런 점에서 우리가 무조건 경원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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