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2012)과 2018년 10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서 촉발됐다. 문제의 핵심은 강제징용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되었는가 하는 데 있다.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 당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합동위원회(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위원장,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등이 주도)’가 구성되어 7개월여 동안 수 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에서 받은 무상 3억 달러에 강제동원(징용) 피해보상 자금이 포함되었으므로 강제징용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이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가 그때 받은 돈을 경제건설에 쓰느라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고, 특히 1975년 피해자 보상을 할 때 강제동원 부상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하여 도의적·원호적 차원에서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하여 2015년까지 징용 피해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 7만 2,631명에게 6,184억 원을 지급했다(송종환, 뉴스인사이트 2019.7.24).
그런데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 여운택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들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의 대법관 다수는 청구권협정은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칙적으로 부인하였다는 점에서 또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들어 위와 같이 판결하였다.
경제전쟁의 원인,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그러나 1965년 청구권협정은 양국 정부 간의 청구권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또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제5항)은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고 되어 있으며, “피징용 한국인의 보상금”이라는 항목을 명기하고 있다(김태훈 미래한국 2019.8.2).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유상재정자금 2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보상 문제를 한국정부에 이양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관련자들에 대해 197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 사이에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도 청구권협정에 배상청구권까지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이견이나 논쟁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김태훈 미래한국 2019.8.2) 그런데 한국의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판결한 것은 국가 간의 합의를 뒤집는 행동이었다. 이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정권의 외교부는 “삼권분립의 국가에서 정부가 법원의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만을 고수했다.
이런 상태에서 징용피해자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매각(현금화)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일 청구권협정에는 협정 내용과 관련한 논란이 있을 시 한국대표 1인, 일본대표 1인, 한일 양국이 협의한 제 3국 대표 1인을 포함하여 중재위를 구성하기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한국 정부에 중재위 구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2005년 민관위원회의 결론도 있어 한국이 불리할 것으로 보고 계속 거부한 것인데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명분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한일 경제전쟁의 신호탄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적 협정(한일 청구권협정)을 뒤엎었기 때문에 양국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송종환 전 유엔 공사는 “외교 관련 재판 때 행정부 판단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principle of judicial self-restraint)이 있다. 우리 법원이 국가 간에 맺은 조약을 뒤엎는 판결을 한다면 앞으로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와 조약과 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려 하거나 또 체결하려고 할 때 먼저 법원의 의견을 받아오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송종환 뉴스인사이트 2019.7.24). 김태훈 한변 회장도 “선진 자유민주국가는 ‘사법자제의 원리’에 의해 한 국가가 외교정책 문제에 관한 두 목소리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일 갈등의 해결 방안으로서 청구권협정 상의 분쟁해결 절차를 준수하는 방법, 국가의 정당한 보상 방안, 한국 정부의 판결금 위자료 채권 양수(소유권을 타인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을 것을 약정) 등을 제시했다(김태훈 미래한국 2019.8.2). 문재인 대통령과 궤를 함께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2018.10.30)에 당연히 영향을 줬을 것이고 이 판결이 한일경제 전쟁의 시작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지원사격이라도 하듯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선동했다. 시대착오적인 ‘죽창가’도 등장했다. 마치 현재의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 일본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 상황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동학농민운동(1894) 당시에 죽창으로 무장한 2만여 명의 농민군이 일본군 200여 명과도 제대로 대적하지 못하고 몰살당한 것을 상기해야 한다. 바로 일본의 신무기인 기관총의 위력 때문이었다. 동학농민군의 패배는 바로 청군과 일본군의 국제간섭과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으로 귀결되었다.
만약 일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문제이면 그 역도 가능하다. 즉 김세의 전 MBC 기자의 지적과 같이 일본 대법원이 원래 자국의 기업이었던 수많은 기업들에 대하여 한국과 똑같은 논리로 한국내에 있었던 과거 일본 자산에 대한 반환을 인정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김세의 가로세로 연구소 유튜브 방송 <일본이 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위협은 바로 이것> 2019.8.4)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과거 일본기업들의 후신들이 많다. 예컨대 OB 맥주(쇼와그린맥주 ), 하이트(삿포로맥주), 한화(조선유지), 선경(선만주단, 교토직물), 해태(나가오카), 동양시멘트(오노다시멘트), 신세계(미쓰코시), 미도파(조지아), 삼성화재(조선생명), 제일제당(모리나가), 오리온(토요쿠니), 쌍용(조선방직), 한국생사(아사히견직), 한국주택공사(조선주택영단), 벽산(아사노시멘트), 한국전력(경성전기), 대한통운(조선미곡), 메리츠해상보험(조선화재보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업들에 대해 일본에서 자산 반환을 청구하면 또 다른 파국이 오고 만다. 만약 이것이 좌파 정권이 노린 것이라면 크게 성공한 셈이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국의 대법원은 법일반원리(소멸시효, 법인격의 소멸, 기판력의 승인)를 무시하고 ‘보충적인 원칙(신의성실의 원칙,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 위반 금지 등)’을 들어 쉽게 돌파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것은 법리의 남용이자 특혜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다른 민법의 일반조항들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도 이런 특혜를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도 역사학계·정치권·국민 공론의 장 등에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사법부만큼은 그 정치적 의미보다 법 일반원리에 위반되지 않게 하려는 데 노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우리가 (해당 협정) 당시 일본 측에 요구한 8개 항목에는 피징용 한국인에 대한 기타 청구권과 같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요구들이 포함돼 있으므로 이미 개인의 청구권은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김태규 ‘日강제징용 판결은 법리 남용’ <위키리스크 한국> 2019.8.1)
결론적으로 김태규 부장판사는 미국의 사례를 제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이 일본 철강회사에 배상을 청구한 미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후손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원고가 받아야 할 빚을 충분히 갚을 만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김태규 ‘日강제징용 판결은 법리 남용’ <위키리스크 한국> 2019.8.1)
이와는 별도로 일본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한국 수출량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즉 보통 산업용으로 수출되는 불화수소의 양은 거의 일정한데, 문재인 정부 들어 그 양이 눈에 띄게 늘었고, 한 번에 3년치 고순도 불화수소 주문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불화수소는 유통기한이 짧아 생산된 지 2주정도 지나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 3년치 불화수소 용처에 대해 답변해달라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G20 오사카회의 때까지 답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제 G20 회의에서 답변을 하지 않았고 G20 공식 행사들에도 문 대통령이 거의 불참했다. G20이 끝난 후 일본은 이를 본격적으로 문제삼기 시작했고 한국정부는 “품질상의 문제로 반품처리됐다” 라고 답변했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2019년 1~5월까지 한국으로 수출한 불화수소의 양은 39.65톤인데 반해, 일본이 한국으로 부터 수입(반품건 포함)한 불화수소의 양은 고작 0.12톤(0.3%) 밖에 되지 않았다. 99.7%가 중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윤상직 의원 “日수출한 불산 99.7% 통계상 사라져”<MBC> 2019.7.12). 이에 대해 일본은 북한 또는 이란으로 유입 가능성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 있어서도 치명적인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일본의 선전포고
일본은 이 같은 한국 대법원의 행태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한국에 대한 수출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를 결정했다. 이에 문 정권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맞대응하고,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우려나 화해 협력의 목소리를 친일파로 매도해 함구시키고 있다. 마치 50년 전 유신시대로 돌아간 착각이 들 정도다.
이제 식품 목재 외에는 거의 전 품목이 수출 시 개별 허가를 거쳐야 한다. 전략물자는 미사일이나 군용차량 등과 같은 민감한 품목도 있고 공작기계, 직접회로 등과 같은 비민감한 품목도 있는데 이 부분을 모두 개별허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발전기나 진공펌프 등과 같은 비전략물자는 캐치올규제(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라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경우, 수출 통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2018)에 따르면, 일본 의존도가 특히 높은 품목은 방직섬유제품 관련 99.6%, 화학공업제품 98.4%, 차량항공기기 97.7% 등이다. 일본의 조치는 화학 분야와 기계류에 직격탄이 된다. 당장은 반도체 다음에는 배터리 분야인데 이 품목은 국산대체가 불가능하다.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하지만 핵심부품인 파우치필름은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A급 파우치는 일본만 생산하고 있으며,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3∼4년 안에 일본 기술력을 따라 잡을 상황이 아니다. 요즘에 제품은 소재 항목까지 모두 계약한다. 갑자기 국산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수소전기차의 경우 탄소섬유도 일본에서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항공기 소재인 탄소섬유의 기술격차도 매우 큰 상태다. (채널A 뉴스톱10 2019.8.2)
더구나 일본의 공격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 1차 경제보복은 수출규제의 형태로 반도체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2차 경제보복은 본격적으로 백색국가(A급)에서 제외시켜 한국의 미래먹거리 산업을 구조적으로 봉쇄하고 나아가 3차 경제보복은 금융제재, 조선업, 비자 통제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대부분 좌파 이론가들은 일본의 소재 수출 제한으로 한국의 D램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계의 산업구조는 글로벌 가치 사슬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도 한일 경제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문 정권은 일본 기업의 피해가 클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좌파 정권에 매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 반일 전쟁을 통해 총선에서도 이기고 일본을 고립시키면서 한미일 동맹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일본은 그 동안 끝없이 제기해온 위안부 보상 문제, 사죄의 진정성, 징용문제 등에 이미 지친 상태다.
한일 무역구조
한국은 심각한 대일 무역역조 상태다. 2018년 한국 수출이 305억 달러, 그리고 일본 수출이 546억 달러인데 지난 60여 년 동안 일본의 수출 초과 구조가 바뀐 적이 없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일본 수출의 대부분이 중간재(349.8억 달러)와 자본재(138.4억 달러)라는 점으로 이 두 가지를 합하면 전체 수출의 90%에 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이 흑자를 보이는 품목은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섬유 및 의복에 불과하고 그 흑자 규모도 매우 미미할 뿐이다.
이 상태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받게 될 품목은 대충 1190 여개, 집중 규제를 받게 될 민감품목은 159개 품목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반도체, 전자, 통신, 석유화학 등 주종 수출산업이 그 피해 대상이 되고 있어 심각하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은 오히려 기회라고 하면서 부품 자립도를 높여 이른바 ‘가마우치 경제’를 탈피하는 제2의 독립운동을 시작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비용이자 누출(leakage)이 될 수도 있는 막대한 R&D 투자와 신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도 문제지만 여기서 생산된 것들이 소재 부품으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품질이 떨어지거나 불량률이 높아질 수도 있고 시장성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여 부품 공급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단기적 대응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신기술도 나오기 전에 한국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좌파 정권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일본은 많은 협력을 해왔다. 일본은 미국만큼 헌신적으로 한국을 지원하진 않았지만 “한·일 두 나라를 능가하는 협력 사례를 찾을 수 없을”정도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을 정도로 긴밀하게 국제분업체제 속에서 협력해왔다. 신일본제철 등 일본 철강업계는 박태준의 포항제철 건설을 지원했고(<박태준 평전>), 샤프 등 일본 전자업계가 자국의 반도체 기술을 해외에 제공한 첫 사례는 이병철의 삼성이었으며(<호암자전>) 이런 협력 사례는 라면까지 이어진다. 1965년 이후 30년 동안 일본은 한국에 대한 기술 이전 순위에서 줄곧 1위를 유지했다. 전체 기술 이전 건수의 절반을 일본이 제공했다. 직접투자는 1990년대까지 미국과 1·2위를 다퉜다. 그래서 ‘가마우지 경제’니, ‘모래성 경제’니 하는 말은 한일관계에서 적합한 표현이 아니고 이미 20여년 전에 사라진 말이다. 바로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일본 전자 기업 10곳 전체 순이익을 능가하고 포항제철의 규모가 신일본제철을 앞서기 시작한 시점이다.(선우정 조선일보 2019.8.7) 한국의 산업화 초기 일본의 역할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문정권의 글로벌경제에 대한 무지
이번 한일경제전쟁은 좌파 정권의 무능과 현대 경제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제대로 된 국제경제 전문가와 외교전문가가 청와대에 없다는 것이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현대의 경제는 글로벌 밸류 체인(부가자치공급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비교우위와 핵심역량, 요소부존도 등의 격차에 따라 불가분의 상호의존 망에 갇혀 있다. 즉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기술, 소재, 부품, 반제품, 완제품 등이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디마디 접속이 원활해야 제품의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없다. 가치사슬의 주요 거점에는 생산비의 차이나 기술격차에 따른 불가피한 연결고리가 있고 이것은 WTO 체제 하에서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좌파 정권이 굳이 이 고리를 단절하고 북한식 자력갱생경제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이유가 정말로 한말(韓末)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인들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적을 다 알아도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국력의 차이가 클 경우에는 때로는 삼십육계(三十六計)를 취하기도 하고 화평을 추진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80년 전에 이미 800만 명에 가까운 병력과 세계적으로 우수한 전투기를 대량 생산했으며 항공모함을 가지고 미국과 대적한 나라다. 일본의 기초학문도 한국이 따라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태다. 일본이 100년 넘게 개발하고 보유해온 기술들을 정부 지원 2730억 정도로 자체개발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자폐적이고 유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 동안 중소ㆍ중견 기업들이 소재나 부품 개발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는 철저히 핵심역량이나 요소부존에 따른 분업구조를 강조한다. 이를 두고 ‘가마우지 경제’니,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니 하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무지의 결과다. 이번 사태는 국제적 관행이나 국제규약, 글로벌 경제에 대한 포괄적 인식 등이 없이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한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재나 부품산업은 막대한 R&D 비용은 물론 투자 기간이 길고 위험성이 커 중견 또는 중소기업들이 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했고 설령 개발했다고 해도 대기업이 구매를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가까운 일본에서 품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에 의존할 까닭도 없었다. 2001년 ‘소재ㆍ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소재부품 특별법)’이 제정되었어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은 반도체 소재 특허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국내 특허까지 장악한 상태다. 일본이 겨냥한 한국 반도체 생산 핵심 소재(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투명폴리이미드)의 전 세계 특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본이 독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가지 소재와 관련된 전 세계 특허는 1만 5000여 개인데, 이 가운데 64%를 일본 기업이 가지고 있고 한국 기업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특히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 특허까지 장악한 것으로 확인됐다.(채널A 뉴스A 2019.8.7)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 자해공갈쇼
한일 경제전쟁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좌파 정권은 일본과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의 폐기를 들고 나왔다. 지소미아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제기된 것으로 그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1월 2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간에 서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좌파는 ‘국민의 반일감정을 무시한 밀실 추진’이라는 이유로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고 이명박 정부는 서명을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지소미아는 상대국으로부터 받는 군사정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고 전달‧보관‧관리‧폐기하는 절차에 합의한 것으로 Ⅱ급 이하의 군사비밀만을 교환 대상으로 한다.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32개국과 GSOMIA를 맺고 있으며, 대상국에는 러시아, 폴란드 등 과거 사회주의 블록에 속했던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성격의 GSOMIA를 두고‘제2의 을사늑약’이니 ‘일본의 한반도 군사개입 명분’이니 하는 것은 당치 않다.(김태우 뉴스인사이트 2019.7.9)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일본의 우월한 기술정보와 한국의 인간정보(humint) 등을 공유하거나 상호 보완하는 것은 양국 모두의 안보이익에 부합하다. 특히 일본은 특히 기술정보력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북한 미사일의 사실상 타깃은 한국이다. 북한이 실제로 일본을 향해 핵을 사용하거나 미사일을 날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일본은 적화통일 대상지역이 아니며, 북한이 세계 제3위의 경제강국이자 최고 수준의 기술강국인 일본을 공격하는 경우 이후 일본이 취할 대응들은 북한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고 지적하고 있다.(뉴스인사이트 2019.7.29)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핵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우수한 일본 기술력에 기반한 북한미사일 동향의 탐지 협조를 거부하려는 것은 안보적 자해행위이다. 좌파 정권은 미국의 급소를 노려 일본을 압박하려는 전술을 구사하는데 미국에 통할 수 있는 계략은 아니고 오히려 미국을 더 자극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오히려 북한 미사일 도발을 군사대국화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친일이라면 북한의 김정은이 일등공신이다. 또 만약 한미일 군사동맹을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문 정권은 큰 성공을 한 셈이다.
문 정권의 성공?
반일은 실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좌파의 전가의 보도다. 세칭 친일파만 해도 당시 북한 정권이 더 많았고 김일성의 항일 전쟁도 날조된 것이며 좌우를 막론하고 친일 문제에 자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줄기차게 집중해온 것이 한국 좌파이다.
2017년 9월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 아베의 면전에서 “일본은 우리 동맹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연합뉴스 201711.5) 이어 12월 28일 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2015.12.28)를 사실상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프레시안 2017.12.28).
2018년 11월 21일 문 정권은 일본과의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한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 결정을 발표했다. 즉 “재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일본의 진정한 사과도 없다는 논란 끝에, 설립 2년 4개월 만에 해체 수순으로 들어가게 됐다.”(한겨레 2018.11.20.) 그런데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에 통보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통보의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시사저널 2019.8.3). 한일 양국의 협의로 만든 기관을 통보도 없이 해체한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문 정권은 외교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즉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은 이번 사태가 “미·일 해양세력으로부터 이탈하여 북·중·러 대륙세력권(구공산권)으로 진입하려는 의도된 결과인 것이다. 한·일 간의 무역전쟁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가 선량한 양국 국민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속셈과 의도대로 기획한 그 결과물을 얻어낸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가 진짜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일까? 대한민국의 외교, 경제가 이들의 정치적 제물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대한민국의 기둥은 주저앉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 추락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평은 이 경제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에게 집중될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장성민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 역시 철지난 이순신 타령과 죽창가를 부르며 이 나라 경제를 파탄상태로 내모는 망국 외교를 그만해야 한다. 김정은 눈치나 보는 대북 주사파식 민족주의외교, 반일 종족주의 국익 손실 외교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뉴스인사이트 2019.8.3)
실제로 좌파 정권 수립 후 중국은 한국을 ‘머슴다루기’ 방식으로 좌파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2018년 한 해에만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140차례 침범했고, 군함이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가운데인 ‘서해 중간선’도 100회 이상 침범했다. 또 서해의 한국 해군 군사 요충지와 이어도 인근에 음향정보탐지용으로 보이는 부표를 8개를 설치하여 서해를 중국의 내해로 간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송종환 전 유엔 공사는 “북한이 비핵화를 합의하고도 북한 핵 폐기를 위한 최초 절차인 핵무기, 시설 등의 신고도 하지 않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내세워 북한과 북한의 뒷배경이 되는 중국에 대하여 친북·친중 정책을 추진하면서 반일 프레임과 미국과 떨어지려는 반일·이미(離美)하려는 안보·외교 정책”이 결국은 미국의 문 대통령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초래한 것이라고 했다.(송종환 투데이코리아 2019.7.24)
문 대통령의 ‘막말 잔치’ : 평화경제
8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일을 겪으며 평화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으로,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2019.8.5)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북한뿐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제재로 기업들이 초비상이고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카드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증시는 끝없이 추락하여 이틀간에 시가총액 75조가 증발하고 코스피는 초반에 1990선을 이탈했으며, 외국인은 6000억 원을, 개인은 4400억 원을 매도하는데 이를 기관이 1조 원을 매수하여 겨우 지탱한 상황이다.(채널A 뉴스 2019.8.6) 여기서 만약 미국이 중국에 한 것과 같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게 되면 수출쿼터지정에 따른 수출규제가 강화되어 한국 경제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마치 화재가 나 집 전체가 잿더미가 될 판인데 이제부터 스프링클러를 만들 계획을 해보자는 식이다. 한일 경제전쟁의 본질은 기술의 격차에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내수시장을 운운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4조 9709억으로 세계 3위, 한국은 12위로 1조 6194억 달러인데 북한은 293억 달러로 남북을 합쳐 4분의 1에서 5분의 1수준 밖에 안 된다. 또 1인당 국민총소득도 일본은 4만 1340달러, 한국은 3만 600달러, 북한은 1298달러로 (TV조선 9시뉴스 2019.8.6) 남북을 합친다고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북한은 군사기술을 제외하면 기술도 없고 인적자원도 대부분이 단순 가공에 적합하며 소비 시장도 전혀 기대할 바가 못 되는 세계 최빈국가다. 한국 경제와는 거의 30년 이상 뒤떨어진 경제인데 이런 나라와 경협을 해서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겠다니 일국의 대통령 또는 청와대 참모들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막말에 가까운 말이다. 이 발표가 극심한 파장을 낳자, 노영민 비서실장은 부랴부랴 “남북이 평화경제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시장 규모가 커진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TV조선 9시뉴스 2019.8.6.).
이에 대해 김정은은 연일 미사일 도발로 화답했다. 7월 25일 이후 13일간 김정은은 4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 직후 발표한 외무성 담화에서 “남조선이 그렇게도 안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면 차라리 맞을 짓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고 경고했다(채널A 뉴스 A 2019.8.6). 동네 머슴에게도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데 문 대통령의 끝없는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수출규제에는 국무회의를 생중계까지 하더니 북한 미사일 도발에는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질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남북경협만 되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허황된 주장을 했는데 북한과 무슨 시너지를 내서 일본을 이기겠다는 것인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든 북한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굴종적 자세를 보면 북한을 선거에 이용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와 안보를 모두 무너뜨리더라도 오로지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망국적 발상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제 좌파 정권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회전문 인사’를 중단하고 과감히 글로벌 경제나 국제법, 외교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모아 피해를 최대로 줄이고 경제전쟁이 격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 현실을 직시하고 일본에 대해서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국제적 관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 정권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권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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