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만나는 최전선의 비즈니스, 리테일(Retail, 소매). 우리의 소비와 관련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 산업이라고 봐도 무관할 리테일 비즈니스에 놀라운 속도로 첨단 기술이 침투하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브랜드 스토어를 비롯하여 온라인·모바일 쇼핑 플랫폼까지 빠르게 파고든 인공지능(AI), 로봇과 챗봇, 빅데이터, 증강ㆍ가상현실(AR/VR), 블록체인 등의 기술 혁신이 ‘뉴리테일 시대’를 열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소비 세력으로 떠오른 밀레니얼과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소비 경험을 원한다. 결국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첨예한 경쟁이 기술 전쟁과 맞물린 셈이다. 과연 2020년 이후 커머스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 책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마케팅 전공 교수이자 리테일 비즈니스 최전방의 연구자로서 급변하는 유통 트렌드를 예민하게 포착해온 황지영 교수가 미국·유럽·아시아 각지에서 유통 혁명을 견인하고 있는 10가지 리테일 테크를 꼽고, 이로 인해 달라질 기업과 브랜드의 생존 전략, 소비와 고용의 미래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시도이다. 2020년 우리 동네 마트에 등장할 로봇과 함께 다가올 미래, 그 놀라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만나보자.
1989년 인터넷으로 상업적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 지난 30년 간 소비자에게 유ㆍ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소비 최접점의 비즈니스인 리테일(Retail)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2017년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70년 역사를 가진 유아용품 리테일 강자 토이저러스가 2017년 9월 파산을 신청했고, 2018년에는 125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2017년에만 미국에서 무려 8053개의 리테일 매장이 철수했고, 50여 개 유명 브랜드가 파산 신고를 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한국에 이르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매출 급감과 연이은 폐점 소식은 ‘오프라인 리테일, 아포칼립스에 도달했는가’라는 서슬 퍼런 진단으로 이어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황지영 교수는 그의 신간 《리테일의 미래》를 통해 이러한 대전환의 원인을 ‘모바일로의 이동, 기술 혁신, 그리고 소비 세대 교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황 교수는 “이러한 오프라인 리테일의 위기는 거침없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세계 최대의 리테일 기업인 아마존을 빼놓고는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간《리테일의 미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소비-라이프스타일 산업인 리테일 비즈니스의, 혁명에 준하는 급격한 변화상과 이를 견인하는 10가지 ‘리테일 테크(retail-tech)’를 포착해 분석한다. 황 교수에 따르면, 여전히 80% 가까운 소비 매출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어나지만 스마트폰 확산과 편의성, 소비 트렌드 변화로 인해 소비자들은 엄청난 속도로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해가는 중이다. 이는 결국 오프라인 리테일 붕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한쪽에선 아마존과 알리바바 같은 혁신적 리테일 기업에 의해 소비-유통 패러다임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 모든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은 인공지능(AI)·로봇·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리테일에 침투한 첨단 기술, 즉 ‘리테일 테크’다. 아마존이 2018년 1월 선보인 무인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는 그들의 머신 러닝과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체다. 중국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盒??生) 역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3킬로미터 이내 30분 배송’을 내세운 유통-소비-물류를 결합한 알리바바 ‘신유통(新零?) 실험’의 최전선이다. 이처럼 리테일 테크는 매장과 재고 관리, 물류 혁신과 쇼핑 경험 등 리테일 비즈니스와 소비자의 쇼핑 경험 전반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황지영 교수는 이러한 일련의 급격한 변화 속에 떠오르고 있는 리테일 비즈니스의 기술적 트렌드를 열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다. 바로 인공지능 비서, 소비 빅데이터, 언택트(Untact) 리테일, 더 섬세한 옴니채널, 가상 리테일, 캐시리스(cashless) 리테일, 챗봇, 초저가 자체 브랜드(PB), 스마트 물류, 블록체인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최근 가장 각광 받는 리테일 테크는 ‘인공지능 쇼핑 비서’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다. 이미 아마존 고객들은 음성비서 알렉사(alexa)가 탑재된 에코를 통해 ‘제로클릭’ 혹은 목소리(voice)로 쇼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람과의 상호작용 없이도 소비가 가능해지고(무인매장), 가구를 가상(VR)의 집에 미리 설치해볼 수도 있으며, 매장 직원이 아닌 챗봇이 더 나은 상품을 제안하는 시대이다. 혹은 알렉사에게 “세탁 세제를 주문해줘”라고 말하면 손쉽게 주문이 되는, 더 나아가 누적된 고객의 소비 빅데이터를 통해 주문을 예측한 아마존이 드론 혹은 로봇 배송으로 이미 현관문 앞에 제품을 가져다놓는 상상 속 현실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현 23~38세)는 2020년 이후 세계 노동인구의 35퍼센트를 차지하고, 소비력 차원에서도 베이비부머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의 부상이 리테일 비즈니스 전반에 중요한 까닭은 막강해질 그들의 구매력, 그리고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소비 특성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청소년기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 게임과 이메일 등을 경험해 자연스럽게 온라인 쇼핑을 선호한다. 그들은 건강과 유기농으로 유명한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보다 독일계 마트 체인인 알디(Aldi)를 좋아한다다. 바로 ‘가격’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밀레니얼보다 더 주목해야 할 소비자 그룹이 ‘Z세대’(1997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그들은 밀레니얼보다 기술 의존도가 훨씬 높고, 사회적 정의와 지속가능성을 더 많이 고려한다.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긴 하지만, 오프라인 상의 경험을 기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첨단 기술이 녹아든 새롭고 놀라운 매장, 즉각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스크린, 셀프 체크아웃, 증강현실 등 다채로운 흥미 요소가 가미된 환경에 ‘열광’한다. 황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나 메이시스, 그리고 일반 쇼핑몰 등 기존 리테일 브랜드들이 고전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새로운 세대의 소비 성향과 취향에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황 교수는 현재 리테일 혁명의 최전선인 미국에서 마케팅 연구자이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글로벌 브랜드의 주요 거점이 미국인 탓에 리테일 비즈니스의 전환을 비교적 빠르게 피부로 느끼며 산다. 그는 “첨예한 경쟁 속에서 스마트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격변하는 리테일 환경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인사이트에 목마른 기업과 개인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집필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기존이 마케팅 및 브랜딩 전략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보이스 쇼핑 시대’의 시작점에 선 국내 리테일 기업과 브랜드들, 또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현직자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황 교수는 책의 3부에서 2020년 기업과 개인이 준비해야할 전략을 여러 측면에서 제시했다. 우선 “브랜드 카테고리 장악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브랜드는 해당 카테고리를 선점하고 소비자에게 ‘1순위’로 인지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졌다. 바로 검색이 아닌 ‘보이스 쇼핑’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리테일 고용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갈수록 리테일의 백엔드와 프런트엔드 양측에서 기술이 사람을 대체해간다. 기술이 의도치 않은 윤리적 이슈들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업은 진화한 기술을 민첩하지만 윤리적으로, 섬세하게 다뤄야할 시대적 의무, 이른바 ‘리테일 리더십’을 고양해야한다는 요구를 받게 됐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리테일을 통해 공급되고 배양된다. 그러므로 리테일 비즈니스의 미래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살펴보는 일이다. 동시에 고용과 생산, 소비와 유통, 커머스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청사진을 만나는 일이다. 숨 막히게 진화하는 기술 혁신 속에서 독자 모두가 독자들이 일과 삶 모두에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기민하게 대처해나가기를 바란다. 그러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는 데 이 책 《리테일의 미래》가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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