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新문명 전환의 로드맵을 완성했다. 이른바 ‘Society 5.0’이라는 아젠다가 그것이다.독일이 4차 산업혁명을 ‘Industry 4.0’이라는 산업정책으로 수용했다면, 2017년 일본은 여기에 문명적 전환을 덧입혀 4차 산업혁명을 사람들의 Life style과 접목해 사회적 진화로 나아가겠다는 플랜을 세웠다. 우리가 이제까지 이해해 온 ‘아베노믹스’의 문명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일본이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마주한 ‘생존조건’의 문제 때문이다. 일본은 초고령화사회가 절망적으로 진행되어 생산가능 인구의 만성적 부족에 시달린다.
초스마트 사회, Society 5.0이란?
최근 일본의 구인난은 일본 경제가 불황에서 탈출해서라기보다는 워낙 젊은 층 생산인구가 적다보니 약간의 경기회복에도 가파른 임금 상승과 구인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으로서는 생산 인구절벽의 문제를 자동화, 무인화로 돌파하고 노령인구를 현역으로 일할 수 있도록 웨어러블 로봇과 인공지능(AI), 그리고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Society 5.0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이 세계 문명의 진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일본 과학기술정책의 최상위 기구인 내각부 산하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회의는 2016년 1월 제5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최근의 기술적 변화가 촉발할 새로운 사회상을 ‘초스마트사회(Society 5.0)’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다.
초스마트사회(Society5.0)란 수렵사회, 농경사회, 공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 오게 되는 사회다. 20세기 후반 진행된 정보사회와는 구분되는 급격한 변화가 최근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해 이를 초스마트사회(Society 5.0)라고 명명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간한 백서에 의하면 초스마트사회는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 제공하고 사회의 다양한 니즈에 세밀하게 대응하여 모든 사람이 질 높은 서비스를 받아 연령, 성별, 지역, 언어의 차이를 초월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일본의 Society 5.0에서는 경제성장과 사회 문제 해결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즉 초스마트사회의 목표는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것인데, 독일 인더스트리 4.0이 제조업 혁신 개념이라면 초스마트사회는 산업을 포함한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과학기술 혁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은 현재 에너지, 고령화, 지역경제 침체, 자연재해, 안보환경 변화, 지구적 문제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고령화, 재난재해 등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또는 가장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는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문제’가 아닌 ‘과제’로 인식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것이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창출해 거대한 미래산업을 육성하고 시스템 패키지 수출로 해외시장도 개척할 수 있다는 발상이 바로 Society 5.0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자신의 강점 분야를 적극 활용하고, 데이터 기반의 선순환형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로봇, 센서 디바이스, 네트워크 인프라, 현실 데이터, 컴퓨터 개발능력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2014년 기준, 산업용 로봇 출하액은 약 3400억 엔(세계시장 점유율 약 50%)에 달하며, 가동대수는 약 30만 대(세계시장 점유율 약 20%)로 세계 1위다.
여기에 일본 Society 5.0은 사이버 공간(가상사회)과 물리적 공간(현실사회)을 고도로 융합하는 매개체이자 경제성장과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으로 데이터를 강조하고 있다. 보건의료, 이동(모빌리티), 제조·물류·농업, 주택·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창출하기 위해 현실 데이터 플랫폼 구축(사이버)과 인간을 지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로보틱스 활용(물리적)을 결합한다는 전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의 이러한 부흥전략이 다름 아니라 일본이 맞고 있는 절박한 현실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의 고령화(65세 이상)율은 전체 인구의 26.6%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른 일본의 노인부양비율(Old-age dependency ratios)도 46.2%에 달해, OECD 평균(27.9%)의 1.7배 수준에 달한다. 이 증가율은 2050년에는 77.8%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비례해 일본에서 연금 의료 간병 등에 지출되는 사회보장 부담금은 2025년에는 GDP의 24.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마디로 재앙적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아베 정부는 평생 근로에 종사하는 ‘평생현역사회’ 구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이를 통해 생산인구 감소와 사회보장에 대한 정부 부담을 경감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과제의 해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건강수명의 연장’인데 일본은 2016년 기준, 제약시장규모로 세계 3위(한국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25년까지 기술혁신을 활용한 새로운 건강·의료·간병시스템을 확립해 최적의 건강관리를 통해 노인층 자립을 지원한다는 것인데, 국민 건강수명을 2020년까지 1세 이상 연장, 2025년까지 2세 이상 연장의 목표를 세웠다. 이와 함께 노령의 근로자라도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도 전략적으로 채택됐다.일본 신슈대학(信州大學)에서 스핀 오프한 로봇 벤처기업 ‘어시스트모션(Assist Motion)’은 요양시설, 병원, 농업 현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 ‘클라라’ 신제품(5호기)을 올해 여름까지 개발 완료해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다.
샤프전자는 스마트홈 개념으로 ‘AIoT(물건의 인공지능화)’를 내걸고 ‘집 환경에 따라 신속하게 서비스와 연결하는 가전’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COCORO(마음)+가전’에서 냉장고와 가습 공기청정기, 에어컨 등의 가전에서 음성 통신을 실현하고 있으며, 자신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외부 서비스 제휴를 통해 기기의 부가가치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밀기기 제조업체인 시마즈에서는 의료제품에 내장된 센서에서 발생되는 장치 가동 정보와 유닛의 자기 진단을 통해 진단 정보를 지속 모니터링하고 고장에 대한 사전적인 감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판매하는 분석기기·시험기의 가동 정보, 오류 정보 및 소모품 교체 예상시기 등을 클라우드 서버에 수집해 장비를 가동한다. 자료 수집을 넘어 보다 진화된 연결성(Connectivity)을 통해 연관된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 덴소는 오는 2020년까지 지난 2015년 대비 생산성을 30% 높이는 것이 목표로 전 세계 공장을 네트워크화해 IoT를 이용, 센서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계에 학습시켜 손실 없는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진화의 계기로 삼는다
일본이 당면한 만성적인 생산인력 부족 문제 역시 일본으로 하여금 Society 5.0을 채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단카이(團塊)세대 은퇴 등으로 노동인구는 감소한 반면 기업경기 회복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며 구인난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업종별로는 은행 등을 제외하고는 인력 부족이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이며, 숙박·음식, 운송 등 업종은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제조업은 로봇, 공장자동화, IT기술로 구인난을 일부 해소 가능하지만 서비스업종은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에 경영애로를 토로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도쿄상공리서치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2017년 1~11월 인력 부족 원인으로 도산한 기업 294건에 이른다. 서비스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채산성이 낮은 사업은 포기하는 상황인데, 일본의 대표적 물류기업인 야마토물류는 인건비 인상(아르바이트시급 1500엔→2000엔 33%↑) 등 비용증가로 27년만에 택배비를 인상(5~20%)했고, 출하의 ‘총량억제제’를 도입해야 했다. 외식업체는 심야영업 등 채산성이 낮은 영업을 중지하고, 숙박업은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호텔 등을 확대하는 추세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이러한 일본의 위기를 새로운 문명적 진화의 조건으로 수용한다. 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적으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ociety 5.0 계획은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의 혁신에 방점을 뒀다.
일본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130㎞가량 떨어진 군마현 마에바시시는 일본 최초로 자율주행 버스 상용화 실증 실험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차를 미래 성장전략 산업의 하나로 꼽으며 범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컨설팅업체인 후지키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의 세계 판매 대수는 2040년 4412만 대로, 전체의 33%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아베 일본 총리는 2015년 경제인 간담회에서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선수단과 관광객에게 자율주행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일본이 당면한 문제를 진화의 계기로 삼자는 소사이어티 5.0 설계자는 수나미 아츠시 일본국립정책연구대학원 부총장이다. 그는 일본의 오랜 고민인 저출산ㆍ고령화ㆍ지방소멸 같은 문제를 소사이어티 5.0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저출산ㆍ고령화ㆍ지방소멸 문제가 심각한 일본의 경우 산간 지방에서는 자율주행차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로보틱스를 통해 고령자가 어떻게 육체노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 등에 초점을 두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나미 부총장은 “소사이어티 5.0이 발전하면 지역, 연령, 언어, 성별 격차 등이 사라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나미 부총장은 “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연계하는 커넥티드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본은 현재 사이버 공간과 현실 세계의 커넥티드를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만드는 시작 단계”라고 부연했다. 그는 인공지능(AI), 데이터 과학자 등 관련 분야와 인재를 양성하고 지방 현장 중심의 기술을 적용하는 한편 중소기업들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게 소사이어티 5.0 정책의 성공을 위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신문명 전환 Society 5.0이 성공한다면 일본은 미국에 이어 다음 글로벌 강국이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한국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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