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 민주당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20년집권론’이 나왔고, 당원들은 여기에 환호했다.‘20년집권론’의 주인공은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였다. 그는 연설에서 ‘진보의 정책이 뿌리 내리려면 몇 번에 걸쳐 집권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60%대를 기록했다.
이전 최고치에서 약 20%p 정도 하강하는 추세였다. ‘20년집권론’으로 당 대표에 오른 이해찬 의원은 약 한 달 뒤인 9월 16일, 민주당 창당 63주년 기념식에서는 ‘50년집권론’을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한 열 명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이 있기 약 1주일 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지지율은 하락 후, 첫 40%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1주년인 2018년 5월 첫 주까지도 남북정상회담 효과로 83%에 달했다. 하지만 6월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한 지지율은 고용지표 악화,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의 영향으로 50%선이 깨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갤럽의 여론조사에 응했던 응답자들은 부정 평가 이유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41%)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집권 3년차’ 신드롬
여의도 관측통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오만’이 빚은 결과라고도 하지만, 사정에 좀 더 밝은이들은 이해찬 대표가 ‘올 것이 온다’는 마음에서 경고를 한 것이라 해석한다. 즉 2019년에 들어서면 여권은 ‘집권 3년차’라는 증후군에 빠져든다는 것이 그 이유다.‘집권 3년차’는 5년제 단임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지나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당·청간에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지면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간에 갈등이 시작된다. 특히 5년 대통령의 3년차는 이듬해 총선을 남겨두기에 ‘잠룡’들이 고개를 드는 시기다. 따라서 권력형 비리와 같은 것이 터져 나오기 쉽다.
집권 3년차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치적에도, 잇따른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행담도 개발 의혹 등이 터지고 부동산값 폭등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민간인 사찰, ‘영포라인’ 의혹에 휘청대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결정타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비선실세’ 파동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 당청 갈등이 노정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집권 3년차’ 증후군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먼저 내부 고발들이 터져 나왔다.“이명박·박근혜 청와대보다 현재 청와대가 민간 영역 사찰을 더 많이 했다.”(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동연 부총리가 채무비율 39.4%보다 올리라고 지시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이러한 내부 고발로 청와대가 휘청대면서 결국 ‘부통령’이란 별명을 얻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리를 떠나야 했고, 조국 정무수석은 12년 만에 국회에 출석해 야당의원들로부 터 질타를 받은 후, ‘페이스북 활동을 줄이겠다’는 계면쩍은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집권 3년차’ 현상은 권력형 비리로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손혜원·서영교 두 스타 여성의원들이 국회의원의 지위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혐의와 재판 청탁은 박근혜 정권에 대해 ‘적폐세력’이라던 민주당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민생연구소에서 있었던 최근 한 토론에서는 ‘이런 상태라면 내년 총선 승리는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 터져 나왔다. ‘20년집권론’에 이어 ‘50년집권론’을 주장했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런 상황들을 예견했을까.
하지만 민주당이 실제 경계하는 흐름은 이런 자당 의원들의 비리가 아니라, 親文에 대한 反文진영의 분화라 할 수 있다. 즉 민주당내 주류에 대한 비주류들의 반기가 시작되는 점을 이해찬 대표가 우려해 처음부터 ‘집권20년’, ‘집권50년’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민주당 세력 분화의 조건
실제로 최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신한울3ㆍ4호기 건설 재개 검토”를 주장한 데 이어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도 “송영길 의원의 발언을 지지한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비문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4선인 박영선 의원이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민주당 입당 불허 결정을 두고 “친문계의 반대 때문”이라는 말로 비판하며 “민주당은 순혈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인지 개방과 포용을 해야 할 것인지 겸손하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민주당의 또 다른 비문의 얼굴 우상호 의원이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 연출됐다.
민주당내 이러한 흐름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내 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남북관계로 다시 회복되지 않는 한 국내 여건으로 인해 반등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견제를 받고 있다는 점과 2차 미북회담 역시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계속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그리고 군 전력 축소라는 마이웨이를 고집할수록,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해서 그의 대선 득표율 41%가 깨지는 순간에 이를 것이며, 이후 핵심 지지층들의 이탈로 본격적인 레임덕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은 아예 피할 수 없는 공식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문재인 대통령이 결국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민주당은 친문과 비문-반문 연대로 분화될 수 밖에 없다. 다만 반문의 방향이 송영길 의원이나 김경진 의원처럼 ‘탈원전 반대’와 같은 현실적인 방향이라면 한국당에 실망해 있는 20% 가량의 중도 우파와 무당파의 지지를 받는 그룹과 함께 박영선 의원이나 우상호 의원처럼 오히려 좌클릭 성향으로 반문이 이뤄지는 그룹도 있어, 민주당이 정의당과 민주평화당 사이에서 분열될 수 있다는 관측도 유효하다. 다만 어떤 경우가 되든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범여권을 단결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지 않는 한 민주당의 분화는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자유한국당이 다음 대선에서도 정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굳이 호남기반의 정치세력이 영남기반의 문재인 대통령에 종속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호남으로서는 공감할 만한 것이 된다. 호남은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을 더 이상 낼 수 없다는 생각들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탄핵 적폐라는 짐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아 있는 한 국민 앞에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호남 정권에 대한 기대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 바로 민주평화당이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결국 변수
최근 민주평화당은 신재민 사무관의 내부고발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예리한 각을 세웠다. 또 민주평화당의 김경진 의원이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기를 함께 든 것도 향후 민주평화당-민주당 비문간의 연대를 점쳐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한 반문연대를 추진한 주인공 박지원 의원이 민주평화당에 있고, 이 분권형 개헌은 민주당을 제외하고 현재 모든 야당에 적극적 수용의사가 있었던 아젠다였다. 따라서 민주당내 반문·비문 세력과 민주평화당이 호남 정치세력을 기반으로 연대하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관건은 자유한국당을 친박세력들이 다시 장악하느냐는 문제다. 그럴 경우 한국당과 바른당의 반박 세력들은 여권발 정계개편의 흐름에 동참해서 중도신당의 등장도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2019년 올해 쓰나미급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러한 전망에서 이번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탈 문재인, 반문연대에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한국당이 친박 중심으로 당권이 재편될 경우, 민주당의 분화는 더 빨라진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여권발 정계개편을 생각하는 이들로서는 자유한국당이 친박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총선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반면 자유한국당이 이번 전당대회로 탄핵에 찬성한 복당파와 잔류파의 승리로 귀결될 경우 여권발 정계개편의 추동력은 다소 주춤해질 수 있다.
한국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어떻게 탄핵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한국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당을 누가 장악하더라도 당의 분열을 우려해 계파간 통합을 강조하고 문재인 정권의 실정으로 반사이익만을 기대한다면 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이 정체될 것이라는 우려다.
결국 내년 총선을 몇 개월 남겨두고 다시 공천 문제로 당이 내홍을 겪게 되면 여권발 정계개편은 시기를 놓치게 되고 결국 민주당내 친문세력이 반문 진영을 토벌해 내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아울러 친문세력이 내부 결속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나 남북연방제, 통일경제와 같은 아젠다를 총선 이슈로 밀어붙일 경우, 본격적인 선동체제하에서 반문과 비문세력은 질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정계개편의 열쇠는 자유한국당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안 보일수록 여권발 정계개편의 흐름은 빨라질 것이고, 자유한국당이 지지율을 회복하고 총선에서 승리의 고지가 보인다면 문재인 정권 지지율의 하락은 민주당내 갈등만을 폭발시켜 한국당으로서는 과반을 넘어가는 쾌거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어느 한 쪽이 대승하거나 대패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적당히 양당이 엇비슷하게 의석을 점유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것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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