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유가 만든 세계사.... 인간과 젖의 깊은 관계를 문화사적으로 풀었다
[리뷰] 우유가 만든 세계사.... 인간과 젖의 깊은 관계를 문화사적으로 풀었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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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히라타 마사히로는 도호쿠대 농학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교토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토대 동남아시아연구센터 특별연구원을 거쳐 2004년부터 오비히로 축산대 준교수를 맡았고 2018년부터는 교수직을 맡고 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시리아 국제건조지농업연구센터에 청년해외협력대원으로 파견되어 현지 식생 조사와 유목 생활 연구에 종사했다. 이후 꾸준히 목축과 젖 문화를 탐구하며 유라시아 각지에서 답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2012년부터 제이밀크(J-milk) 산하 학술연합에서 활동 중이다. 『유라시아 유문화론』(ユ?ラシア乳文化論), 『유목민의 밥상』(デ?リィマンのご馳走), 『세계의 발효유』(世界の?酵乳, 공저) 등을 썼다.

■ 우리는 어떻게 가축의 젖을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4,500여 종의 포유류 가운데 인간만이 다른 동물(가축)의 젖을 이용한다. 모든 동물이 오로지 제 새끼를 먹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젖을 어쩌다 인간이 가로채게 된 것일까. 약 1만 년 전, 인류는 가축화를 시작했다. 거친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먹이고 관리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단순히 고기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육은 사냥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생산 활동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고된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젖이다. 가축화와 젖 짜기가 건조 지대에서 맨 처음 시작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고기보다 안정적인 식량이 필요했던 서아시아의 유목민들에게 젖은 그야말로 딱 좋은 먹을거리였던 것이다. 

“젖은 가축을 죽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입니다. 인류는 가축이라는 밑천은 그대로 두고 젖이라는 이자를 이용해 살아남는 생존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가축에게서 정기적으로 먹을거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 고기에서 젖으로 가축의 활용 가치를 바꾸면서 먹이(식물)를 통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효율이 네 배 가까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젖을 얻는 전략은 고기를 얻는 것과 가축의 이용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 다니 유타카의 가설을 끌어와 인류가 맨 처음 가축의 젖을 짜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해 자연적인 포유(哺乳)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가축의 모자 사이에 개입해 대신 젖을 짜서 먹이기 시작한다. 이때 남은 젖을 먹을거리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축을 위한 젖 짜기가 인간을 위한 젖 짜기로 변화한 것이다. 
젖은 어린 포유류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니만큼 완전식품에 가깝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류가 의존할 만한 좋은 식량이 되었다. 인류는 가축의 젖을 보다 많이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가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젖을 짜는 다양한 기술들을 발달시켰다. 이로써 인류는 ‘목축’이라는 새로운 생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 최초의 요구르트와 치즈는 ‘맛’이 아니라 ‘보존’을 위해 만든 것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듯 내일도 변함없이 마트 진열대에 말끔히 포장된 우유가 놓여 있을 세상에서 우유가 나오는 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출산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젖은 아무 때고 당연한 듯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서아시아에서 많이 기르는 양과 염소는 계절에 따라 번식하는 특성이 있어 젖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이다. 결국 1년 내내 젖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인류는 이 귀한 식량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른바 ‘유가공’이 시작된 것이다. 유목민은 양가죽 부대 같은 단순한 도구를 이용해 몇 시간씩 팔이 빠져라 흔들고 휘젓고 끓이고 걷어 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젖에서 단백질과 지방을 분리하고 응고시켜 쉽게 상하지 않으면서도 양분은 응축된 먹을거리를 만들어 냈다. 

“바가라 유목민의 치즈는 커드를 곧바로 건조해 만드는 비숙성 치즈입니다. 빈말이라도 차마 맛있다고는 하기 힘들지요. 그렇지만 젖단백질이 꽉 들어찬 비숙성 치즈는 몇 년 동안이나 보존 가능한 뛰어난 유제품입니다. 서아시아의 가혹한 환경에서는 단백질이 풍부한 보존식품을 만드는 일 자체를 미각 추구보다 우선시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서구식 요구르트와 치즈, 버터, 크림 등의 유제품은 ‘맛’을 즐기기 위해 혹은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 보조 식품이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유제품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젖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던 것이다. 

■ 자연환경과 식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한 젖 문화 

서아시아 유목민들은 젖을 발효유(요구르트)로 만들고, 요구르트를 흔들어 버터를 얻고, 버터를 가열해 버터기름을, 버터를 만들고 남은 버터밀크를 끓이고 말려 딱딱한 치즈를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유가공을 ‘서아시아형 발효유 계열군’이라고 부르며 전 세계 젖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인류사의 근원적인 유가공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가공 기술이 남아시아, 북아시아, 유럽에 이르기까지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그곳의 기후와 토양, 생활양식, 식성과 기호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세계적으로 다양한 유제품이 발달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버터와 치즈는 서구의 영향을 받아 발달했지요. 하지만 이는 세계의 다양한 유제품 중 아주 일부일 뿐입니다. 몽골의 유목민은 가축의 젖으로 술을 만듭니다. 시리아의 유목민은 잘게 씹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게 말린 비숙성 치즈를 만듭니다. 인도 사람들은 시큼하지 않은 요구르트를 카레에 섞어 먹습니다.” 

저자는 현지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서아시아에 이어 세계 곳곳의 젖 문화를 차례차례 살펴본다.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도에서는 과일즙을 이용해 응고시킨 치즈나 농축유, 각종 유차와 달콤한 유과 등 독자적이고 다양한 유제품들이 탄생했다. 남아시아에서는 열대 습윤 기후, 목축문화와 농경문화의 복합성, 계절을 타지 않는 젖 짜기 등의 특성을 활용하는 풍성한 젖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반대로 쌀쌀한 북방의 몽골에서는 추위를 이용해 크림을 분리하는 유가공이 발달했으며, 여름에도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말젖으로 술을 빚는 문화가 생겨났다. 유럽 젖 문화의 핵심은 ‘숙성’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여름에는 산악 지대로, 겨울에는 저지대로 가축의 방목지를 옮겨 다니는 이목(移牧) 생활을 바탕으로 가축의 젖을 식생활에 다각도로 이용해 왔다. 이들이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시레네’라는 부드러운 숙성 치즈와 켈트인에게서 유래한 단단한 숙성 치즈인 ‘산의 치즈’가 유럽 특유의 ‘숙성’ 문화를 발달시켰다. 유럽에서는 서늘한 날씨와 높은 습도를 적절히 이용하고 관리하며 ‘곰팡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존성’에 ‘풍미’까지 더한 갖가지 숙성 치즈를 탄생시킨 것이다. 

■ 장래의 현장 연구자들을 매료할 흥미진진한 답사 이야기 

“시리아 현장에서의 만남 이후 나는 젖 문화를 평생의 연구 주제로 정했습니다. 그 뒤로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유목민의 젖 짜기와 가공, 가축 관리 등의 기술을 조사했습니다. 학술 연구의 핵심은 ‘재미’에 있습니다. 재미를 느껴야만 조사 연구에 뛰어들 힘이 샘솟습니다. 그래야 전 세계에서 나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독창성 넘치는 나만의 연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현장 답사(필드워크)에는 새로운 발상과 발견이라는 보물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은 탄탄한 이론적 토대 위에 젖 문화 현장에서의 연구 결과들을 안정적으로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책에 담긴 온갖 지식과 정보는 저자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검토한 것이기에 좀 더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무엇보다 현장의 생생함을 독자가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다. 특히 몽골 유목민의 젖 문화를 다룬 5장에서는 저자가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촐롱 씨 가족 이야기를 상당히 일상적인 톤으로 전하면서 그 안에 몽골의 젖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 내어 독자가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든 현장 연구자로서 저자가 가진 자부심과 활기가 느껴져 장래에 저자와 비슷한 일을 하고자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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