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빗나간 증오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빗나간 증오
  • 허화평 전 국회의원
  • 승인 2018.12.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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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자유를 향한 긴 여정 - 유령이 지배하는 사회 (1)

‘소득주도 성장’과 ‘남북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럽고 요란스러웠던 2018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 둘은 국민의 현재 삶과 국가와 민족의 미래 운명과 직결되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들이다.

2018년 4월 1일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강조함으로써 현 정부 출범 이래 논란이 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포기하거나 수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가 운영에서 가치관 충돌이 가장 심한 분야가 안보와 경제 분야다. 안보분야는 쟁점이 분명하지만 경제분야는 복잡해서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치 후진국일수록 정치 지도자들과 관료들이 국민을 오도하거나 선동하고 심지어 국민을 기만하기 쉬운 것이 경제분야이고 국민들이 가장 속기 쉬운 것도 경제정책 분야다. 이 경우 항상 동원되는 것이 대중영합주의(populism)다. 정당, 특히 집권당의 사상적 성향, 즉 그들의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도 경제 정책이다.

대통령 자신이 경제전문가가 아닌 경우 정부 경제정책은 대통령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경제전문가가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5공 경제를 두고 일각에서 ‘김재익 경제’라고 표현하듯이 현 정부 경제정책 설계자는 장하성 교수라고 할 수 있으므로 현 정부 경제를 ‘장하성 경제’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장하성 교수가 비록 최근에 청와대를 떠났으나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장하성 교수가 깔아놓은 궤도 위를 달려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본질을 이해하려면 장하성 교수의 이론을 확인해봐야만 한다.

장하성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학계와 시민단체에 널리 알려진 좌파진영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진보적, 참여 경제학자다. 그는 참여연대 주도 멤버였고 대기업 문제를 비롯해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학자다. 그는 2014년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라는 부제를 붙인 700여 쪽에 달하는 <한국 자본주의>를 출판사 헤이북스를 통하여 출간한 바 있다. 그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추진하고 주장했던 경제정책들이 <한국 자본주의>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두고 좌파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라고 할 때 그의 경제 이론과 논리는 좌파진영을 대표하는 경제 이론이자 논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한국 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한때의 정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치관 충돌, 사상적 격돌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월가 금융위기가 국제적으로 확산되자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로 한국 사회가 ‘1% 대 99%’ 양극화 사회가 되었다”는 유령을 만들어 내면서 경제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우파 지식인들은 방관자가 되고 우파 정치인들은 동조자가 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착각과 오해를 야기했으며 현재까지 그 유령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그러한 유령의 그늘에서 쓰였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는 책에서 “한국은 케인즈주의적 복지 국가 단계가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장만능주의” 또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3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과중한 안보비용을 부담하면서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압축성장을 통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내야만 했던 최빈국 한국으로서 구미 선진국들이 추구했던 사치스러운 케인즈주의적 복지정책을 수용할 여력도 없었고 형편도 되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은 1970년대 구미 국가,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효력을 상실한 이론이다.

역대 정부가 복지정책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정에 맞게 점차적으로 노력해 온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고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진 것은 외환위기가 끝난 2000년 이후이며 지금은 국가 역량을 초과하는 과잉복지 포퓰리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성공한 나라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하면 믿는 사람 숫자가 얼마나 될까?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해 할 것이고 우리 국민 대다수는 의아해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운 바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극소수 학자들만이 학문적 관심을 갖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장하성 교수 역시 신자유주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좌파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시장만능주의 경제라고 날을 세워 비판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정상적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갖춰본 적이 한번도 없는 나라다.

우리는 원조 경제로 출발해서 국가 주도 개발 경제와 산업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심한 관치시장경제체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국가다. 정확히 말하면 비자유시장경제 체제다. 경제권력이 대기업으로 넘어 갔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경제권력은 여전히 정치인과 관료들 손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인들은 전전긍긍해야 하고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언제 호출되어 갈지 몰라 좌불안석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기업인들이다.

이 땅의 좌파 지식인들이 정치, 사회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극단적 신자유주의 체제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라는 ‘유령’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중요하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이 유령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우파 지식인들은 방관자가 되었고 우파 정치인들은 동조자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으며 지금은 이 유령이 실체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기만적인 대중영합주의적 입법이나 정책들이 유령의 힘을 빌려 분출하고 있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하성 교수는 그의 책에서 신자유주의란 “학문적 토론의 산물이 아니고 1970년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Thatcher) 정부와 레이건(Reagan) 정부가 시행한 일련의 정책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엄격한 개념 설정이 사실상 쉽지 않다”면서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고 정부의 경제운용의 역할과 시장개입을 축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표피적이고 단편적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쓴 <한국 자본주의>가 근원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에 한계가 있고,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극단적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천민자본주의라는 독단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그가 말한 것처럼 개념 설정이 되지 않은 대처, 레이건 정부에 의한 한때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1930년대 태동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립된 사상이자 이론이다. 필자는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다>(2014)에서 신자유주의를 언급한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1930년대 후반 자유방임(laissez-faire)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와 국가재정 역할을 확대하고 완전고용, 보편 복지를 내세우는 케인즈(Keynes) 경제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체주의(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체제에 의한 국가통제계획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반대하면서 정부 역할을 재정립하고 시장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 및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생겨난 미래지향적 지적 노력의 산물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작은 정부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임을 확신했던 인물이다.

고전적 자유방임의 반성에서 태동한 신자유주의

대처와 레이건은 1970년대~1980년대 정치 지도자로서 이론의 수혜자이자 실천가였을 뿐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제국주의와 착취 현상을 유발하고 케인즈주의가 인플레와 경제 침체를 초래하여 자유주의 체제를 약화시켰다면, 전체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시장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자유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였기 때문에 자유주의 체제 보존과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자유주의 모색이 불가피했던 환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신자유주의다. 이 시기는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과 소련제국의 출현,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 붕괴,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 출현, 세계 대공황이 있었던 시대다.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유명해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저술가였던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자신의 저서 <좋은 사회, The Good Society>(1937)에 담긴 주요 견해들을 중심으로 구미 지식인들과 더불어 토론을 갖기 위해 1938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의 루지에(Louis Rougier), 영국의 폴라니(Michael Polanyi), 독일의 러스토우(Alexander Rustow)와 뢰프케(Wilhelm Ropke), 오스트리아의 미제스(Ludwig Heinrich Edler von Mises)와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를 비롯해 25명의 자유주의 지식인(liberal intellectuals)들이 회동하여 의견을 나누고 당면 문제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탄생하였다.

이때 회동이 리프먼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두고 ‘리프먼 토론회(Colloque Walter Lippmann)’라고 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하이에크 등이 주동이 되어 출범한 몽페를랭 협회(The Mont Pelerin Society)의 전례가 된다. 이 회동에 참석한 지식인들은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 반파시즘, 그리고 자유주의 틀 안에서 자유방임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운 자유주의를 모색해 나가기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새로운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가는 계기가 되었다.

라인강 기적을 이끈 오르도 리베랄리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독일학자 러스토우가 고전적 자유주의에 의한 자유방임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개념의 자유주의가 참된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 데서 비롯된 단어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그룹은 독일학파(the Freiburg school), 오스트리아학파(the Austrian school), 미국학파(the Chicago school)이고 오스트리아학파와 미국의 시카고학파는 자매학파로서 이 두 학파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의 사상적, 이론적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독일학파의 경우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러스토우는 시장에서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사회시장경제를 주장했기 때문에 소외되고 뢰프케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들이 정부는 공정한 시장 질서 유지에만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시장 역할을 앞세웠다.

이들이 시장 질서를 중시했기 때문에 독일의 주류 신자유주의를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라고 규정하게 된다. 이들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정부는 경제정책에서 과정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공정한 질서 유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공정하고 건전한 시장 경쟁 유지를 가능케 하는 법치환경 조성과 중앙은행 독립 및 통화안정정책을 중시했으며,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독과점 현상에 대한 경계와 사회 정의를 중시한 점이다. 독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프라이부르크학파(the Freiburg school)로 둥지를 틀면서 라인강 기적의 사상적, 이론적 토양을 제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학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오이켄(Walter Eucken)은 라인강 기적의 주역으로 인정 받는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장관의 자문 역할을 하면서 큰 영향을 미쳤다. 오이켄은 유물사관론자들의 역사주의 무능에 실망하고 집단주의 계획경제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과 인간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고 케인즈의 재정적자, 저금리 및 신용확대에 의한 완전고용정책과 보편 복지정책이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며 불황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정교한 법치 장치와 성공적 작동을 전제로 하는 시장 질서를 강조했다. 그는 경쟁을 수용하면서도 독과점 출현을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사회정의 구현의 방책임을 주장하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학파는 라인강 기적이 이뤄진 후 1960년대 이래 구미 사회에서는 퇴조했다.

글로벌화를 동반하는 신자유주의는 미제스, 하이에크를 주축으로 하는 오스트리아학파와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사이몬스(Henry Simons)를 주축으로 하는 시카고학파가 주류를 이뤘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자유방임을 본질로 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깡그리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자유주의 본래 개념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 질서 유지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학파와 달리 시장 자체에 의한 자율규제를 중시함으로써 정부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사상과 이론은 영국과 미국, 중남미(특히 칠레)에 큰 영향을 주면서 글로벌화의 지적 자양분으로 작용해 왔다.

하이에크

작은 정부와 법치를 강조한 하이에크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하이에크를 연상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친 하이에크(Hayek)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데이빗 흄(David Hume) 같은 영국의 실용적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작은 정부, 인간 본성과 열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정서주의와 경험과 전통을 중시하면서 자유를 지향하는 데 반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와 루소(Jean Jacques Rousseau) 같은 관념적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큰 정부와 인간 이성을 중시하는 급진적 합리주의가 경험과 전통을 도외시하면서 평등을 지향함을 구분하였으며, 전자를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이 미국 혁명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프랑스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전자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자유방임 자본주의(laissez-faire capitalism)를 반대하면서도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자들(economic libertarians)의 시장만능주의도 경계했으며, 특히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파시스트들을 위험시 하고 반대했다. 그는 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학파 학자들이 과도한 규제를 내세운다는 이유로 이들에 의한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 영향력 확대 및 복지정책 확대와 노조 권력 강화가 개인과 시장의 자유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결정적 요소라고 강조했고, 기업 독점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 법치가 존중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 중심 사회에서만이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보와 개인의 무지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면서 각별히 유의할 것을 강조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편파적 이익을 목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통계 및 정보 조작과 왜곡이 가능해지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제한된 지식과 정보 밖에 없는 시민의 무지가 자유를 박탈당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므로 권력 분립에 따른 감시 및 견제와 법치가 지극히 중요하고 과거 경험과 전통의 힘을 빌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사회 현실이기도 하다.

하이에크의 사상과 이론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그가 주동이 되어 생겨난 몽페를랭 협회 역할 때문이다. 그는 1947년 스위스 몽페를랭(Mont Pelerin)에서 구미 주요 경제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정치학자 등 36명이 회동하여 몽페를랭 협회(Mont Pelerin Society) 출범을 주도했다.

이들 참여 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집단주의(collectivism, 국가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폭압적이고 자의적인 정치권력이 팽배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본질로 하는 서구 문명 가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국가 역할과 자유주의를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 활동 중점을 결정했다.

· 현 위기 분석과 정부 기능 재정립

· 법치 확립 방안과 시장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

· 자유를 위협하는 역사 왜곡과 남용 대항

· 국제적 경제 관계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평화와 자유 추구(글로벌화를 촉발하는 기본 사상으로 작용)

출범 당시 50여 명이던 협회는 현재 40여 개국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매년 회원국을 순회하면서 1주일간 그간의 활동 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중점을 결정한다.

자유시장경제가 번영의 세계화를 촉진하다

미국의 시카고학파는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사이몬스(Henry Simons) 등이 주축을 이룬다. 오스트리아학파의 미제스, 하이에크가 미국에서 이들과 함께 활동했으므로 시카고학파를 오스트리아학파의 자매 학파라고 부르게 된다. 이들의 기본 입장은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을 위한 정부 규제를 제외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어떠한 개입이나 간섭을 반대하고 통화주의(monetar ism), 규제완화(deregulation), 시장중심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시장만능주의에 대해서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의 주역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가장 큰 이유는 프리드먼이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감세와 규제 완화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지만 레이건은 정치인이 되기 훨씬 이전 할리우드(Holly wood) 노조 활동 당시부터 작은 정부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임을 확신했고 루스벨트의 큰 정부에 의한 과도한 증세와 사회복지 정책에 대해 적대감을 보였으며, 이러한 배경이 그로 하여금 민주당원에서 공화당원으로 변신케 한 결정적 이유였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신자유주의 전사가 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상의 뼈대가 되는 재산권 보호와 관련하여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을 중시함으로써 지식산업(know ledge industry)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리아학파, 미국의 시카고학파,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학파가 보여주고 있는 공통점은 집단주의(collectivism), 큰 정부(big government), 관료주의(bureaucratism)를 반대하고 개인주의(individualism),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 자유시장경제(free-market economy), 법치주의(rules of law)를 옹호하며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free and fair trade)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하는 최선의 길임을 확신하고 강조하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 탄생과 세기적 흐름을 바꿔가는 과정은 하나의 사상과 이론을 창조하고 실현함에 있어서 참고가 되는 고전적 모델이다.

1938년 파리에서 회동한 리프먼 토론회(Colloque Walter Lippmann)가 계기가 되고 1947년 스위스에서 출범한 몽페를랭 협회(the Mont Pelerin Society)가 본격적 활동을 하면서 신자유주의 사상과 이론이 정립되고 전파되어 나갔고, 냉전 종식과 더불어 교역과 번영, 자유와 평화라는 물결을 일으키면서 글로벌화를 촉진시켜 갔다. 1974년 하이에크를 시작으로 1976년 프리드먼에 이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8명이나 된다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당대를 주도하는 주류 사상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일차적 동력은 이론 정립에서 나왔다.

· The Good Society(Lippmann, 1937)

· The Bureaucracy(Mises, 1944)

· The Road to Serfdom(Hayek, 1944)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Popper, 1945)

· Economic Policy for a Free Society(Simons, 1946)

· Neo-liberalism and It's Prospects(Friedman, 1951)

· Capitalism and Freedom(Friedman, 1962)

이상과 같은 이론서들이 그들의 대표적 지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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