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이하 군사 분야 합의서)는 대부분 과거에 논의되었던 사안들이지만 보다 구체화되고 GP 철수 등 일부 사안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명시되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를 두고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보수진영에서는 합의사항이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보수진영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으며, 보수진영의 우려는 그간 북한이 신뢰를 주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전역 공산화’라는 국가 목표를 포기하고 합의사항대로 진행이 된다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반도 전역 공산화’라는 국가 목표를 포기했다고 믿는 대한민국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6년에 개정된 북한의 노동당 규약 전문에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여 (중략)’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북한 노동당의 최종목적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여 김일성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 공산화의 방법은 ‘무력통일론’에 기반하고 있다.
북한이 무력에 의한 한반도 공산화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적 약점을 증가시키는 어떠한 조치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가 안보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수진영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경우 이번 합의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대북 군사정보업무에 수십 년간 종사하고 전방지역에서 보병연대장을 경험한 전문가 입장에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해 문제점 위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전방 연대의 전시 대비 방어훈련 및 백령·연평도에 배치된 포병 훈련이 제한될 수 있다.
군은 일일 용병을 위해 천일을 양병하는 조직이다(千日養兵 一日用兵). 즉 언제 일어날지, 얼마만큼 기간이 지속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훈련을 반복하는 조직이다. 훈련은 개인훈련으로부터 최상위 제대까지 매년 반복 실시되며, 평가도 받는다. 훈련은 작전계획과 야전예규에 따라 실시하며, GP와 GOP 전투를 위한 훈련도 당연히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합의문 1조②항은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조항에 따르면 연대 전술훈련이나 사단 기동훈련 시 GOP(현재 남방한계선 철책) 방어를 위한 훈련은 실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전쟁이 발발한다면 훈련 한번 해보지 않고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치밀한 계획과 사전 충분한 예행연습 후에 공격한 적과 훈련 한번 해보지 않은 부대가 전투를 한다면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포병의 경우도 훈련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포병은 해상에 표적을 설정하고 사격훈련을 실시한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 따르면 이 지역에 배치된 포병은 사격훈련을 실시하지 못 하거나 김포지역까지 야포를 배로 수송하여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훈련을 하지 않은 포병은 상황발생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없고, 훈련을 위해 육지로 나온다면 이 지역에 전투력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합의를 잘 지킨다면 합의 수역에서 포성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합의를 지킨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반면 적은 포병 사격훈련을 제한 없이 실시할 수 있다. 포 사격 금지구역이 수역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서북도서 전방 적 지역에는 해안포 외에 수백문의 포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포병은 제약 없이 자유로운 사격 훈련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도발 시에도 최초 사격한 부대는 적의 해안포가 아니었다. 수십 km 북쪽에 배치된 적의 사단포병이 야음을 이용, 해안 근처까지 이동해 포격 도발 후 복귀한 것이다. 따라서 양측이 사전 통보 후에 사격훈련을 실시할 수 있게 하거나 내륙에 배치된 적의 사단포병도 사격훈련을 금지하는 추가 협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둘째, 비행금지선 조정은 우리 군의 눈을 가릴 수 있다.
군사정보는 대개 공개(OSINT), 인간(HUMINT), 신호(SIGINT), 영상(IMINT) 등 항상 고도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활동하는 군부대의 특성상 군부대의 활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첩보와 영상첩보가 가장 유용하다. 그러나 인간첩보는 적 지역에 잠입·침투 성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고 성공확률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과 같이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고 모세혈관과 같이 당 조직이 구축되어 있는 지역에서 인간정보 요원의 활동은 대단히 어렵다.
반면, 대한민국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여행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북한은 비교적 인간정보 수집수단 운용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군사비밀이 언론에 공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반면, 북한은 언론을 통제하고 조작하기 때문에 군사비밀 사항이 언론에 공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북한군의 활동 상황을 파악하는 데 영상첩보가 중요한 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공개첩보나 인간첩보를 통해서도 국군에 대한 많은 첩보를 수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군사분야 합의서’ 1조③항의 비행금지구역 조정은 대한민국의 영상첩보 수집에 많은 제약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기에 의해 수집되는 영상첩보는 가시선, 가시거리, 카메라와 피사체의 부각에 의해 영상의 질이 좌우된다. 즉 항공기와 피사체 사이에 고지나 고층건물 등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카메라의 성능이 피사체가 위치한 곳까지 볼 수 있어야 하며, 피사체를 식별할 수 있는 고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양질의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금지선을 10∼30km 후방지역으로 조정함으로써 북고남저(北高南低) 형의 산악지형에서 가시선이 제한되고, 가시거리 신장과 이에 따른 부각이 저하되어 촬영 불가 표적이 대폭 증가하고, 영상의 질도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적의 주요 도발 내지는 공격 수단인 포병에 대한 실시간 감시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 된다면 국가안보상 또는 정책결정 간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적의 도발 징후를 식별하지 못해 사전 경고나 즉각적인 대응사격이 제한되고, 둘째, 적이 남침을 기도한다면 표적 최신화가 지연되어 수도권이 심대한 피해를 입은 뒤에야 대응사격이 가능해질 것이며, 셋째, 비교적 저고도에서 운용되는 무인항공기의 경우는 평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무인항공기가 무용지물이 된다면 전방의 지휘관들은 눈을 감고 전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번 합의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과거와 같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고 또 다시 도발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GP 철수 등 합의사항에 대한 감시수단이 제한되어 확실한 검증이 제한될 것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군축 시 확실한 상호 검증을 위해 오히려 감시수단은 상호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동수의 GP철수는 DMZ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정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km씩 4km의 폭을 비무장지대(DMZ)로 설정,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에 각각 일반전초(GOP)를 설치해 경계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일명 GOP 철책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분계선과 남방·북방한계선 사이에 즉 비무장지대 내에 각각의 경계초소(GP)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다. 경계초소의 주 임무는 적 활동 관측, 적 침투 조기경고 등이며, 관측이 용이한 지점에 경계초소를 설치하다 보니 지형에 따라 500여 미터밖에 이격되지 않은 곳도 있다. 500여 미터는 소총의 유효사거리로 항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으며,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근접한 경계초소의 설치는 우발적 충돌 방지 차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 분야 합의서’ 2조①항의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 하기로 합의하고 ‘1km 이내로 이격된 각각 11개의 초소는 2018년 12월 31까지 완전히 철수’하기로 합의하였다. 합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이 합의는 북한을 100% 신뢰하고 북한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합의 내용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가정 하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나 ‘10.4공동선언’에서도 현 군사분계선 인정, 상호 불가침 등을 합의하였지만 북한의 도발은 지속되어 왔다.
특히 2015년 8월의 지뢰도발 사건을 고려해 보면 경계초소 철수가 비무장지대의 불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만일 경계초소가 철수하고, 북한이 과거와 같은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면 비무장지대는 적들의 놀이터이며, 훈련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이 보였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도 김정일은 똑같이 말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은 김정일이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2차례의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수많은 도발이 자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을 100% 신뢰하지 않고 있다. 정책결정자들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2018년 12월 31일까지 철수하기로 합의한 경계초소가 각각 11개씩 동일하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약 60여개, 북한은 160여개의 경계초소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종적으로 전 GP를 철거한다고 합의하였지만 전부 철수에 대한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은 지속적으로 동수 철거를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GP가 모두 철거된 이후 나머지 북한 GP 철수는 예산, 장비, 인력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계속 지연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현재 일반전초(GOP)의 위치와 관련된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GOP는 대체로 정전협정 규정을 준수하여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를 연하여 설치되어 있고 GP는 GOP와 군사분계선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남쪽으로 1km 내외를 추진하여 적 GP(민경초소)는 북방한계선과 동일 선상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양측의 모든 GP가 철거될 경우 북한은 실제 1km 이상 전진하여 아군지역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고려하여 전 GP철거 후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한강 하구 공동이용 시 서울 서측방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한강 하구의 공동이용은 각종 자원획득이나 어민의 소득증대 등을 위해 매우 좋은 합의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한강 하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수역으로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건축용 골재의 보고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수역은 남북한 어느 쪽도 출입이 불가하기 때문에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빈번하게 자행되는 지역이다. 또한 양질의 골재는 남북한 관계 개선 후 북한 기간산업 건설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고 남침위협이 완전히 해소되었을 경우의 이야기다.
북한은 군단별로 100여대 이상의 도하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백여 대의 수륙양용 장갑차와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하여 한강하구로 도하 후 김포반도를 통하여 공격한다면 수도 서울의 서측방이 위협을 받을 수 있고 포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강 하구에는 많은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한강하구를 공동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종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지연시키고 남침위협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강하구의 장애물 제거는 자칫 우리 스스로 적에게 수도 서울을 포위할 수 있는 기동로를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이다. 따라서 한강하구의 공동이용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 나가되 김포반도 장애물 제거는 최종 단계이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사분야 합의’ 후속조치는 견고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2018년 9월 남북한 간의 ‘군사분야 합의’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김일성 주석과 같이 또 약속을 어긴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영원히 북한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남침 위협의 완전한 해소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만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 지원과 설득에 반드시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첫째, 남북한 간 합의한 사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유엔사와 협조를 해야 하며, 유엔군사령관을 한미연합사령관이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와 공동경비구역, 한강하구 등은 모두 유엔사 관할 지역이다. 물론 군사적 합의 이전에 유엔사와 충분한 토의를 했을 것이다.
만일 유엔사와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보지 않고 북한과 합의를 한 것이라면 후속 조치에 차질일 빚을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유엔사 또는 미국이 GP 철거를 원치 않는다면 철거 인원 조차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수 없다. 남북한이 합의한 사안 중 어느 하나라도 미국이 반대한다면 북한은 지금까지 해온 바와 같이 합의문을 근거로 모든 합의 파기를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대한민국은 합의사항 후속 조치를 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반면, 북한은 의도적으로 지연시킴으로써 안보 취약성이 노정되었을 경우이다. 이 경우 미국의 억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의 억제력은 견고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견고한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고 신뢰는 후속조치 과정에서 긴밀한 협조를 통해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정순
국제정치학 박사, (예)육군대령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